메뉴 건너뛰기

close

▲ 청도역 입구. 아담한 역사와 뒤로 보이는 푸른 산이 잘 어울린다.
ⓒ 이나영
예로부터 산과 물이 푸르고 맑으며, 인심 또한 순후하기로 유명하여 '삼청(三淸)의 고장'이라 이름 붙은 '청도(淸道)'. 그 이름과 너무나 어울리는 '맑음'을 간직한 고장 청도. 그곳으로 들어서는 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청도역(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위치)이다. 청도역에서 나는 잊은 줄 알았던 추억과 마주했다.

#1. 추억

어머니의 고향이 청도였다. 가난한 형편에 그럴듯한 가족휴가를 한 번도 간 적 없던 우리 가족이 1년에 한 번 여름 휴가철마다 들른 곳이 바로 청도에 있는 외가였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운문사와 가까운 곳에 외가가 있었기에, 유명 휴양지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친구들에게도 운문사에 다녀왔노라고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매년 빼먹지 않고 외가로 우리를 데려가신 어머니도 이러한 사정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에 한 번 기차를 타는 것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기차에 오르면 우선 어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빠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개 어머니는 2살 어린 내 편을 들어주셨고, 어머니 옆자리를 내게 빼앗기고 울먹이는 오빠를 위해서는 기차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소시지'를 사주시곤 하셨다.

매년 반복되던 이 여행에서 어느 날 오빠가 의젓한 웃음과 함께(싸움 없이도!) 어머니의 옆자리를 나에게 양보해 주었을 때, 나는 무언가 조금 서운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같다.

#2. 청도역

▲ 청도역 내 대합실. 창문에 낀 뿌연 먼지와 나무로 된 창틀이 정겹다.
ⓒ 이나영
대도시의 광장과 같은 역사(驛舍)를 거쳐 기차에 올랐다가, 장난을 치고 졸기도 하다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기차에서 내리면, 탈 때 보았던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조그마하고 한적한 청도역을 만날 수 있었다.

기차에서 청도역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오래된 역 대합실이다.

햇볕을 막을 그늘 하나 없는 이 역에서 대합실은 기차를 기다리는 많은 이들에게 유용한 공간일 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물론 장난을 치기에 유용한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대합실 창문에 뽀얗게 낀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청도에서의 첫 번째 놀이였다. 창문에 내 손가락이 훑었던 자국이 남는 것과 동시에 내 손에도 까맣게 그 흔적이 남는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보통 이 놀이는 어머니의 불호령과 함께 끝이 나곤 했었다.

계단을 거쳐 청도 역사(驛舍)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청도역만이 가진 멋진 공간이 있다.

▲ 지역민들로부터 수집하여 청도역에서 전시 중인 '전통 민속자료'.
ⓒ 이나영
청도역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전통 민속자료'를 전시해 둔 공간이 바로 그것인데,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현대화에 열을 올리다가 서로 비슷해져 버린 요즘의 역들을 생각하면 그 공간의 소중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 청도의 도입이라 여겨지는 곳에 있는 전통자료들은 청도라는 고장을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기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 매년 들를 때마다 조금씩 그 수가 늘어가는 민속자료들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어머니는 오빠와 내 손을 꼭 붙잡고는, 하나씩 짚어가며 그 물건들의 쓰임과 함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곤 하셨다. 그런데 아쉽게도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오래된 사진처럼 어머니의 표정이 아련히 떠오를 뿐이다.

#3. 홀로 찾은 청도역

최근 거의 10년 만에 청도역에 내렸다. 동행 없이 홀로 이 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단 한 번 외가에 들르고는 발길을 끊었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쏙 빼닮았다며 유난히 나를 예뻐해 주시던 외할머니가, 늘 웃어주셨던 그 할머니가 나를 보며 서럽게 우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 힘이 들었던 까닭이다. 미안하다고만 말씀하시는, 그 서러운 울음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청도역 주변 풍경. 늘어선 단층 건물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정겹다.
ⓒ 이나영
며칠 전, 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망설이다 기차에 올랐다. 내가 가지 않은 그동안 청도는 소싸움 등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기에 많이 변했으리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너무나 많았고, 잊은 줄 알았던 많은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오래된 대합실에 기대어 서서 한참을 울었다. 병든 노모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돌아가신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고, 나 자신의 아픔밖에 볼 수 없었던 내 지난날의 이기심을 반성했다. 또한 그 아련한 시간들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이 못내 서러웠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직 너무 어린 나를 두고 무책임하게 떠나신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효도 한 번 할 수 없게 서둘러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죄책감도 느꼈다.

이번에 홀로 청도로 오는 기차 안에서는, 내가 좀 더 자리 잡고 성공하기 전에 할머니가 떠나실까 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어머니께 못다 한 효도까지 할머니께 다 하겠노라는 어설픈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한참을 울고 나서 문득 깨달았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그때까지 모든 것을 미뤄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 했던가. '나중'이 아니라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함을 새롭게 깨달으며,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는 힘겹게 청도역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