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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월요일(6월 4일) 2교시, 출석부를 챙겨들고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월요일은 1교시가 비어 있어서 저로서는 2교시 수업이 한 주의 첫 시작인 셈입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그 첫 시작이 참 좋았습니다. 다른 반에 비해 수업 분위기도 좋았고, 아이들도 저를 잘 따르는 편이었으니까요. 특히 귀엽고 발랄하고 통솔력마저 돋보이는 반장아이 덕분에 2%가 부족한 아이들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6월이 되면서부터 모든 양상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득하게 참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몇몇 아이들이 문제였습니다. 거기에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인 반장아이는 무더운 날씨 탓인지 반 통솔은 고사하고 마치 탄성을 잃어버린 물체처럼 무기력에 빠져 자신의 감정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교사의 마음이 평화롭고 확고하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여 왔고, 그것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교사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문제는 제 마음에 찾아온 불안함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다가 한 순간 마음의 평정을 잃기라도 하는 날이면 애써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리라는 불길한 생각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감이었습니다. 저는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백'이라는 한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공포감의 실체를, 그 공포감을 제공한 가해자(?)인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털어놓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러 오는데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불안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을 만나기가 겁이 나고 여러분과 좋았던 관계가 깨어질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너무 예의 없이 굴거나 말을 함부로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매를 대거나 공포감을 조성해서 여러분을 잡고 싶지는 않아요. 좀 힘들어도 끝까지 여러분을 믿고 사랑으로 대하고 싶어요. 그래야 여러분의 인격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 도와줄 거죠?"
"예."

고백을 잘 했다 싶게 그 말에 가장 능동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반장아이었습니다. 표정도 사뭇 밝아져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을 자주 내곤 하던 두 아이도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에게 화답의 미소를 던지면서 아슬아슬한 살얼음 위에서의 '고백의 지혜'를 일깨워준 미국의 교육지도자이며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에게 감사드렸습니다.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한문화) 제 2장 '공포의 문화'에는 어느 고등학교 공작(工作) 교사와 교장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공작교사는 키도 훤칠하고 근육질의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교장은 그에게 기술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하면서 공작 커리큘럼을 현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공작교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보수교육센터에서 가르치는 기술보다는 학생들이 자재와 연장을 가지고 직접 손으로 연습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합니다. 그로 인해 공작교사와 교장은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되고 끝내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공작 교사가 워크숍 미팅에 다녀온 뒤에 행동이 달라집니다. 다시 한번 그를 불러 기술보수교육에 참가하라고 요구하는 교장에게 공작교사는 전통적인 공작교육의 장점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센터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 분야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미 교사로서 한 물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두렵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잠시 후 교장이 입을 엽니다.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요. 그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센터에 등록합시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이 등록하고 우정을 회복하여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됩니다. 공작 교사는 자신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교장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돌파구를 찾은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의문이라기보다는 질의나 가정(假定)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공작교사가 교장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했을 때 교장의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봄직도 합니다. 가령, 공작교사의 고백을 나약하고 겁이 많은 교사의 변명쯤으로 낮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이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제가 어린 학생들에게 저의 진심을 고백한 것도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개선보다는 자칫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교장선생님이 공작교사의 진심을 받아드렸듯이 아이들 또한 진실한 소통을 원하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저나 공작교사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진실에 반응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 아마도 교육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아슬아슬한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책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지만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한문화)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교육#소통#파커 J.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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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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