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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곳 캐나다에서 살려니 어느 때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피난처인가?'

툭하면 어느 사건에 연루된 국내 인사가 출국금지 조치를 하기 며칠 전에 해외로 달아난 기사를 봅니다.

세계 만방으로 튀어 가겠지만 캐나다로 도망치는 일도 있습니다. 이번 모재벌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된 조직 폭력배의 우두머리도 캐나다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밴쿠버에 사는 교민에겐 좀 미안하지만, 다행히 (제가 사는) 토론토 쪽이 아닌 밴쿠버로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뉴스를 들으면 마치 내가 죄를 지어 달아나서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좀스런 죄의식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출소 후 신앙에 귀의한 어느 조폭의 우두머리가 이곳 교회의 목사 초청으로 토론토에 왔는데 이곳 경찰에서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왜들 그렇게 출소만 하면 신앙에 열심인지요.

그리고 믿고 회개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조용하게 뉘우치면 될 것을 무슨 벼슬한 모양으로 간증하네 무어네 교회를 순회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의인을 부르려고 주님이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부르려 온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죄인의 회개를 교회부흥에 또 한번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캐나다는 현대판 소도?

그 옛날 고교 시절 배운 국사가 생각납니다. 삼한시대에 무당이 관할한 '소도(蘇塗)'란 지역에 도망온 죄인은 누가 다시 잡아가지 못한다는 그런 역사적 사실말입니다.

이곳 북미대륙이 현대판 소도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툭하면 달아나서 숨어 버리면 찾지 못하고 찾아내어 인터폴에 연락해도 시일이 걸리니 도망자에게는 넓디 넓은 땅이 안성마춤인 모양입니다.

이민 와서 얼마 되지 않아 들은 한국뉴스가 생각납니다. 한국은행 집계로 해외이주로 인한 부실채권의 금액이 막대하다는 뉴스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주여권을 받아둔 채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않고 내뺀 이민자들이 많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듣고는 많은 한인이 모인 신앙모임에서 난 또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많이 모였네. 이중에서도 돈 떼어 먹고 이민온 사람도 있을 거야...'

나만의 엉뚱한 생각일까요? 해외이주로 인한 회수 불가능한 채권으로 골머리 앓는 한국은행의 관계자는 알 것입니다.

그러니 국내에서 이곳 북미대륙에 사는 재외동포를 보는 눈도 곱지 않습니다. 피난처 아니면 병역 문제 아니면 떼어 먹고 달아난 곳으로 볼 수도 있죠. 이곳이 진정 현대판 '소도'로서 다시 잡아가지 못하는 안전지대 혹은 성역인지 아니면 피신처인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이곳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마주치는 한국사람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모릅니다.

이민 오기 전에는 모두 부자였다?

마치 저가 어릴 적에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북한에서 한살림 떵떵거리게 다들 잘 살았다고 했듯이,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다들 잘 살았다는 말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만 한국에서 잘못 살고 이곳으로 이민왔나 하는 위축감이 듭니다. 어쨌든 한때 '조용한 아침의 나라'란 우리 고국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심심한 천국'이라는 이민지에서 '재미난 지옥'이라는 고국의 현란한 현상을 봅니다. 마침 나랏님의 말 한마디로 시끄럽습니다. 저리도 재미있게 정치가 진행되니 아침마다 인터넷으로 한국정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이곳에 왔으면 이곳 정치도 참여하고 배우라고 합니다만 시민권 신청절차에서 영국 여왕의 신민이 되는 서약을 했지만 이곳 정치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캐나다 관련 한국 뉴스가 뜨면 얼른 눈이 가지만 이번과 같은 누가 도피했다더라 하는 뉴스는 별 반갑지 않습니다. 별별 뉴스가 진행되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되찾게 되겠지요.

덧붙이는 글 | 캐나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단상입니다.


#이민#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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