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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했죠. 이걸 어떻게 파나. 친척들한테는 이미 했고 친구들한테 했는데 쉽나요, 어디…, 생각하기도 싫고."

작년에 경력직으로 LG그룹의 한 계열사로 옮긴 김아무개씨.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 만난 그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파워콤 강제할당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올초 과장급인 그에게 파워콤 신규가입자 10명 모집이 떨어졌다. 조건은 회사 지원금 10만원에 파워콤쪽 보조 3만원, 모두 13만원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인터넷상에 15만원부터 18만원·20만원·23만원까지 주겠다는 글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부 직원은 자기 돈을 들여서 할당량을 채우기도 했다"면서 "20만원을 넘게 주는 것까지 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매일 실적체크... 업무는 뒷전?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인 LG파워콤의 강제할당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신규 가입자를 모집하면서 그룹 계열사와 협력회사 직원까지 동원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까지 받았다.

LG파워콤의 강제할당은 지난해 말 공정위 조사와 정보통신부의 시장정화 노력 등으로 잠시 사라진 듯 했다. 하지만 올 3월 들면서 그룹 계열사와 일부 협력회사를 중심으로 다시 강제할당이 시작됐다.

LG전자의 경우 1인당 10명 가입자 유치를 할당하고, 거의 매일 직원별로 유치 실적으로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번 특별판매 행사에는 작년 할당 마케팅때 참여하지 않았거나, 실적을 채우지 못한 직원들이 대상이었다. 다른 계열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회사 이아무개 과장은 "3월께 임직원을 상대로 파워콤 가입 할당이 내려왔다"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인당 10개씩 떨어졌는데 회의 때마다 실적 체크하는 것에 부담이 참 컸다"고 전했다.

특히 4월 들어 인터넷 각종 동호회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파워콤 신규 가입자 모집이 집중됐다. 한 유력 취업동호회 게시판에는 아예 '임시 파워콤 전용 게시판'이 생겼다.

운영자는 "이 곳 이외에 파워콤 유치관련 게시물을 올려선 안 된다"면서 "이를 어길경우에 사이트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어 안타깝다"라고 적었다.

4월까지 일부 23만원 제공... 대리점서 반발도

작년 9월에도 LG직원들에 대한 가입자 강제할당 논란이 빚어졌다. 모 인터넷 게시판에서 '파워콤'으로 검색한 화면. 모두 현금을 준다는 내용이며, LG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작년 9월에도 LG직원들에 대한 가입자 강제할당 논란이 빚어졌다. 모 인터넷 게시판에서 '파워콤'으로 검색한 화면. 모두 현금을 준다는 내용이며, LG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 신종철
이 게시판엔 '임직원 추천 가입 23만원', '파워콤 광랜 신청받습니다, 26만원', '22만원, 3명 남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수십여꼭지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 LG 직원 사원증까지 나와 있다.

자신을 LG 계열사 직원이라고 밝힌 A씨는 "글을 올린 것은 맞지만 자세한 내용을 말하긴 어렵다"고 "4월말까지 행사를 했었고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게시판은 지난달 중순께 전격적으로 폐쇄됐다. 이유는 임직원들의 과도한 마케팅에 대해 기존 파워콤 영업점에서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

실제로 지난 4월말께 'Nann'이라는 이름의 한 누리꾼은 "본사에서 15만원이상 고객에게 지원하면 영업정지 또는 센터 폐쇄조치하겠다고 했다"면서 "LG 계열사 양반들은 맘껏 23만원·25만원 영업하면서 우리를 15만원으로 묶어놓고, 한 마디로 뒷통수 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우리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23만원에 (파워콤을) 판매하겠다"면서 "정말 이제는 지겨워서 못하겠다"고 적었다.

이처럼 게시판을 통해 온라인 마케팅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누리꾼 사이에 논란이 일자 해당 게시판은 패쇄됐다. 운영자는 "특정업체 임직원 사칭하는 사기가 발생하고, 지나친 과열경쟁이 나타나 게시판 사용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파워콤 "일부 캠페인은 있지만 강제할당은 없다" 되풀이

이같은 과열 마케팅 논란과 함께 지난 4월 LG파워콤의 신규 가입자는 크게 증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 지난 1월 가입자수는 3만8514명, 2월에는 3만7378명이었다. 이같은 수치 작년 하반기 평균 6만~7만명 수준보다 크게 못미쳤다.

하지만 본격적인 계열사 직원들의 할당 마케팅이 다시 시작된 3월부턴 가입자가 급증했다. 3월 들어 가입자는 4만9444명 증가하더니, 지난 4월말엔 무려 7만95명까지 늘었다.

경쟁사인 하나로텔레콤의 경우 2월 9647명을 비롯해, 3970명(3월), 5877명(4월) 늘어난 정도였다. KT의 경우도 3월 3만6334명에서 4월 4만2592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LG파워콤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서 "회사 차원의 시장 안정화 조치와 유통대리점 재정비 등으로 연초 가입자 증가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4월 들어 가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영업망이 본격적으로 가동됐으며, 지난해에도 매달 6~7만 정도의 가입자 증가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계열사를 통한 강제할당 여부에 대해서는 "일부 영업 촉진을 위한 캠페인은 있지만 계열사 임직원을 상대로 한 강제할당은 없다"고 반박했다. 특정 목표를 두고, 그에 따른 어떤 인사상 불이익도 없는 상황에서 '할당'이라는 표현 자체도 맞지 않다는 것.

파워콤 관계자는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캠페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는 있다"면서도 "회사 차원에서 강제로 판매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강제할당 여부 재조사... 다음달까지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4일 소회의를 갖고, LG파워콤의 불공정 거래 행위 위반에 대해 심의를 했으나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위원회는 계열사나 협력회사 임직원들을 통한 거래행위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원판매 과정에서 강제성을 입증하기 위한 폭넓은 조사가 진행중이며 다음달까지는 심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고속인터넷#LG파워콤#강제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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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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