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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케가이 카시마 갯벌을 나는 짱뚱어.
아리아케가이 카시마 갯벌을 나는 짱뚱어. ⓒ 김준
짱뚱어는 하늘을 날고, 게들은 개흙을 입안으로 퍼 넣느라 정신이 없다. 질펀한 갯벌 위는 짱뚱어와 게판이다.

평화롭게 짝을 찾아 한껏 맵시를 부리던 짱뚱어들이 일사분란하게 작은 구멍으로 몸을 숨긴다. 급한 놈들은 게 구멍에 몸을 박기도 하고, 한 구멍에 짱뚱어와 게들이 같이 들어가기도 한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날쌔게 내려와 한 녀석을 낚아 채간다. 갈매기였다.

한참 후 큰 눈을 이러 저리 굴리며 짱뚱어가 구멍에서 머리를 드러내고, 눈자루를 높이 올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가 발을 내민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얼굴까지 갯벌을 묻혀가며 작은 고둥을 줍는다. 옆에는 아빠가 작은 카메라로 아이의 모습을 담는다. 뭍에서 20m 남짓 거리에 대나무가 줄지어 꽂혀 있다. 여기까지가 갯벌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공간이다.

아이들이 노니는 체험장 건너편엔 10여 명의 선수들이 갯벌에 얼굴을 닿을 듯 긴 나무판자(갯벌스키)에 납작 엎드려 두 팔로 수용하듯 갯벌을 박차며 경주를 하고 있다.

가탈림픽, 주민들이 만든 작은 축제

출발이다. 갯벌스키 25m 경주.
출발이다. 갯벌스키 25m 경주. ⓒ 김준
제 23회 가탈림픽 메인스타디움(갯벌).
제 23회 가탈림픽 메인스타디움(갯벌). ⓒ 김준
23회를 맞는 가탈림픽. 가탈림픽은 갯벌의 일본어 '카다'와 '올림픽'의 합성어다. 갯벌에서 진행되는 올림픽이다. 2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때에 맞춰 성화가 봉송되어 점화되면서 가탈림픽이 시작되었다. 경기장이라고 해야 폭 50m에 길이 300m 남짓이지만 선수나 관객들이나 모두 즐거워한다.

갯벌올림픽이 개최되는 카시마는 일본 큐슈의 사가현에 있는 작은 어촌이다. 이 지역은 1984년 사가현의 종합개발계획에서 신간센은 물론 고속도로마저 연결되지 않는 오지 어촌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정부의 개발계획으로부터 배제되고 김 양식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어민들은 크게 낙담하였다.

그 즈음에 낙후되어가는 지역을 주민들 손으로 활성화시켜보자는 목적으로 '카시마포럼'이 만들어졌다. 몇 차례의 포럼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것이 '가탈림픽'이었다.

포럼은 어민·공무원·기업가·각종 단체 등 현재 8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산업-지역-민관 사이의 벽을 허물고 협력을 바탕으로 ▲향토애 고취 ▲지역 자긍심을 갖는 인재 육성 ▲활력과 지속을 테마로 지역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6회부터는 가탈림픽을 통해 갯벌상품을 일본은 물론 외국에 홍보하기 위해 '지역 팬' '전국 팬' '도시어린이 팬' '외국인 팬'을 확보하기 위한 '4F 전략'을 수립하였다. 초기에는 주민들 중심의 작은 운동회 정도로 논의되었지만 어차피 시작할 것 올림픽을 꿈꿔보자며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다.

19개국서 15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

카시마시의 김 양식(1955년)
카시마시의 김 양식(1955년) ⓒ 카시마시
카시마는 카라츠처럼 푸른 소나무에 하얀 백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끼나와처럼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김 양식을 하고 짱뚱어와 숭어 그리고 새우를 잡는 갯벌이 전부였다. 이렇다 할 관광자원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포럼은 '간만의 차이가 일본에서 제일', '갯벌을 팔아보자'는 발상을 하기에 이른다.

물이 빠진 아리아케가이에 바다는 간만의 차이가 6m에 이르며 넓게 펼쳐진 갯벌이 우리의 서해안을 보는 듯 하다. 게다가 게·짱뚱어·바지락·김 양식 등 생업도 흡사하다. 일본 갯벌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아리아케가이 갯벌. 그 중 사가현 카시마시 갯벌이 가장 넓고 어민들의 갯벌어업도 활발하다.

굵은 대나무엔 카시마의 상징인 짱뚱어와 23회 행사를 알리는 큰 글씨가 걸려 있다. 이번 23회 갯벌올림픽은 5월 27일 19개국에서 15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갯벌스키25m경주·갯벌철인경기·갯벌줄다리기·보물찾기·자전거 타기 등 10개 종목을 즐겼다.

행사 초기 6000여명에 불과했던 관람객도 3만5000여 명으로 늘었다.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1500여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조석간만의 차이와 무한정 확대할 수 없는 갯벌행사장의 특성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의 참가자들이 늘면서 예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당일 행사를 위한 스태프만 8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게다가 실행위원장 등 핵심 스태프를 매년 교체해 많은 주민들이 행사를 추진하고 경험을 쌓도록 배려하고 있다.

22회까지 가탈림픽에 참여한 사람만 100만 명에 이르며, 부모의 손을 잡고 참여했던 아이들이 이제 자원봉사자나 핵심스태프로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카시마의 희망 '갯벌'

이번 갯벌올림픽에 19개국에서 외국인들이 참가했다.
이번 갯벌올림픽에 19개국에서 외국인들이 참가했다. ⓒ 김준
이번 가탈림픽에는 3만5천명의 관중과 1500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이번 가탈림픽에는 3만5천명의 관중과 1500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 김준
가탈림픽에는 우리 축제에서 흔히 보는 가수초청 노래자랑, 국적을 알 수 없는 프로그램과 음식, 눈살을 찌푸리는 상흔은 없었다. 넓은 갯벌 중 극히 한정된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탈림픽은 행사준비요원들에 의해서 일사분란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된다.

오전 11시 무렵에 시작된 행사는 갯벌스키 결승전을 끝으로 오후 3시경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시설물도 동시에 철거되고 다시 어제와 똑 같은 갯벌과 바다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행사기간은 단 하루다.

올해의 경우 총 행사비는 5000만 원 정도에 이르며, 이중 일부는 카시마시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1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었지만 지금은 자원봉사활동이 체계화되고, 대부분의 행사소품들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예산을 대폭 절감하고 있다.

카시마에는 행사를 주관하는 카시마포럼 외에 갯벌체험 관광을 통한 경제적 수익창출을 고민하는 나나우라지구진흥회가 있다.

특산품 판매관에는 수산물은 물론 카시마시의 농산물도 함께 판매된다.
특산품 판매관에는 수산물은 물론 카시마시의 농산물도 함께 판매된다. ⓒ 김준
가탈림픽이 이루어지는 나나우라지구는 봄부터 가을까지 지역주민의 안내를 받아 갯벌스키를 타는 것은 물론 상시적으로 갯벌체험을 할 수도 있다. 연간 체험객만 해도 1만5000여 명을 넘어 2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30인 이상 갯벌체험을 원할 경우 '미니가탈림픽'을 열기도 하며, 상시적으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가탈림픽과 갯벌체험이 이루어지는 나나우라지구에는 갯벌체험장·갯벌특산품판매장·전망관·식당·지역농수산물판매소·온수샤워장·주차장·공중전화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을 '카시마 도로역'이라고 부른다.

특히 특산품관에는 망둥어·짱뚱어·김·굴·바지락 등 각종해산물은 물론 인근 산촌과 농촌에서 나온 양파·고구마·귤·토마토·계란 등 농산물이 판매되고 있다. 이 모든 운영은 부녀회 등 주민조직이 담당하며, 가탈림픽처럼 특별한 행사가 기획될 경우 다수의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나나우라지구 진흥회에서는 체험활동·기념품 판매·농수산물 판매 등으로 연 16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카시마시는 갯벌올림픽을 통해 일본은 물론 국외에도 '갯벌'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각인시켰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다양한 생산물을 연계해 판매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교류와 연계시키고 있다.

카시마의 갯벌과 바다 지키기 노력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타기. 골인은 자전거를 탄 채로 갯벌로 곤두박질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타기. 골인은 자전거를 탄 채로 갯벌로 곤두박질이다. ⓒ 김준
유치원생들의 '갯벌속 보물찾기' 게임이다.
유치원생들의 '갯벌속 보물찾기' 게임이다. ⓒ 김준
카시마 지역주민은 이제 희망의 계기가 된 '갯벌'을 지속시켜야 할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한편으로는 갯벌의 특징을 짱뚱어로 상징화하여 도시이미지도 형상화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사하야만의 간척은 물론 다양한 오염원들이 늘 갯벌과 바다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미 아리아케가이를 둘러싼 구마모토·후쿠오카·사가·이사하야 등 4개 현과 48개 시 등이 환경보전을 위한 '연락협의회'를 구성해 구마모토현 다마시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카시마시는 아리아케가이의 보전을 위해 생활오폐수 정화시설 설치 지원, 지역주민대상 교육 및 홍보교육, 갯벌 염습지 보호구역 지정, 국제적인 철새보호 네트워크 활동, 해양환경 교육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카시마시는 2002년부터 소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1주에 3시간 이상 환경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교육프로그램에는 하천오염·쓰레기 문제·재활용·갯벌과 바다오염 등 학교주변의 자연환경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영광의 수상자.
영광의 수상자. ⓒ 김준
시 교육위원회는 학교 환경교육을 위한 전문가를 파견하고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아리아케가이의 갯벌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사하야간척에 대해서 논의 자체를 막고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주민들이 찾아낸 카시마의 희망 '갯벌'. 아마 행정이 중심이 되었다면 23년째 고집스럽게 작지만 알차게 가탈림픽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의 5대 갯벌이라 자랑하고 일본인들이 부러워하는 갯벌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갯벌을 자원으로 다양한 이벤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수십만을 넘어 백만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자랑하지만 남는 것은 망가지는 갯벌과 무너지는 지역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목포MBC 기획특집 <갯벌>(가제)취재팀과 동행하여 취재한 기사임을 밝힙니다.


#카시마#갯벌#가탈림픽#아리아케가이#갯벌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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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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