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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의 산책로. 2007년 5월 20일
ⓒ 서미애
제가 사는 중랑구 신내동은 서울의 동북부의 끄트머리. 봉화산을 끼고 있습니다. 봉화산 정상에는 아차산 봉수대지가 있는데 <대동여지도> 등 옛 문헌에는 봉화산이 아차산으로 적혀 있다고 합니다.

아차산 봉수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 양주 한이산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1993년 11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면서 봉수대터에 봉수대 모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무형문화제 34호인 봉화산 도당 굿을 여는데 도당 굿은 400년 동안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여 대동의식을 고취시켜 온 서울의 마을 굿입니다.

이렇듯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봉화산은 주민들의 좋은 쉼터가 됩니다. 아침마다 잘 만들어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며 운동을 하고, 봉화산을 낀 근린공원은 저처럼 다리가 아파 산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쉼터를 제공합니다.

작년 봄, 우리 아파트 옆으로 또 하나의 공원이 생겼습니다. 이름하여 봉수대 공원. 공원에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각종 운동기구와 넓은 잔디밭, 옛 전통놀이를 체험 할 수 있는 널과 그네가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운동시설도 따로 있고, 노인 분들의 건강생활을 위한 게이트볼장도 있습니다. 자연학습장을 만들어 평소에 잘 알지 못하던 꽃이름과 허리에 매단 이름표로 나무이름도 많이 알게 하는 곳입니다.

본래 태릉 먹골배가 유명한 동네라 주위에는 배 밭이 많이 있는데 봄이면 팝콘처럼 터지는 하얀 배꽃과 긴 아파트 담장을 수놓는 철쭉꽃으로, 올해 걷고 싶은 서울의 꽃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오월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아카시아 꽃이 온 사방으로 꽃향기를 풍겨대고, 지금은 패랭이꽃과 애기똥풀꽃,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오늘 저녁엔 그 공원에서 주민을 위한 멋진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공연이라면 우리들이 공연장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중랑구에서 그 고정관념을 깨고 <찾아가는 우리 동네 예술무대>라는 것을 개최한 것이었지요.

▲ 2007년 6월2일 <찾아가는 우리동네 예술무대> 사회자 송해씨 (사진 서미애)
ⓒ 서미애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실시한다는 공연에 사회는 일요일의남자 송해씨가 맡았고, 흘러간 가요와 민요, 만담과 봉산탈춤, 프로그램을 보니 딱 우리 시어머님이 좋아하실 공연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리시에 살고 계시는 어머님도 모셔 왔습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해 먹고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공연 1시간 30분 전에 돗자리와 혹 밤 기온이 떨어지면 어머님이 추우실까 무릎 담요와 겉옷까지 하나 챙겨 공원에 올랐습니다.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먼저와 자리를 잡고 계셨고, 저처럼 젊은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든 무대 제일 앞쪽에 돗자리를 펴고 어머님이 잘 보일 수 있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 둘, 함께 구경하기로 한 지인들이 도착하고, 우리는 모두 아홉 명의 인원이 한 무리가 되었습니다. 무릇 공연이란 혼자 덩그마니 보는 것보다 무리끼리 어울려 함께 박수를 치고 노래도 따라 부르며 보는 것이 제 맛이거든요.

▲ 공연을 하였던 공원 잔디밭 2007년 5월 20일
ⓒ 서미애
“영감! 우리 영감 어딨어?” 하며 탈을 쓰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등장하는 봉산탈춤의 미얄할미전을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짤랑짤랑 방울을 흔들며 뒤뚱뒤뚱 걸음으로 영감을 애타게 찾는 미얄할범, 본래는 삼각관계로 인해 미얄할멈이 영감에게 맞아 죽지만 배우가 두 사람 밖에 나오지 않아 살짝 각색을 시킨 할미전은 두 사람이 만나 덩실덩실 춤을 추다 영감이 할미를 업고 나가는 해피엔딩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엉거주춤 몸동작에 한 바탕을 웃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명창들의 경기 민요한마당과 김용만씨의 흘러간 옛 가요에 흥겨워 힘껏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습니다.

회전의자. 남원의애수, 청춘의봄, 대동강편지, 울고 넘는 박달제등 오래된 옛 가요지만 저는 노래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예전에 다 배운 노래라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따라 불렀습니다. 역시 한국인의 정서에는 흘러간 옛 가요나 트로트가 최고였습니다.

카 센터를 운영하면서 우연히 발견하였다는, 못이 박힌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접목시킨 타이어 송은 참 별 것을 다 개발했다는 느낌으로 신기하게 보았고, 재즈 음악이 나올 때는 흥미가 없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인기가 많은 사람이나 흥겨운 노래는 당연히 박수를 많이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노래나 인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큰 박수로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저의 지론인데, 사람들은 자기의 흥미가 아닌 것에는 금방 열정이 식어 버립니다.

▲ 지압코스. 보이는 능선이 봉화산. 2007년 5월 20일
ⓒ 서미애
마지막 순서인 김영운, 장소희씨의 만담에는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장소팔, 고춘자씨의 만담이 우리 엄마가 최고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 엄마 덕분에 그 당시에도 이름을 많이 들었던 김영운씨가 아직도 만담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연세가 아주 높으실 텐데도 쟁쟁한 목소리와 총명한 기억력을 가지셨고 사람은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면 늙지도 않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고, 지난주에는 그린 콘서트라는 숲속음악회도 바로 이 공원에서 열렸는데 이토록 주민들의 삶의 질을 위하여 문화행사에 많은 기여를 하는 중랑구에게 감사했습니다.

예전 새댁 시절에 아이를 업고 십리나 되는 밤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온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사기가 고장 나 못 보고 왔다는 어머님도 저 만큼이나 공연을 좋아하시는데 돈 주고 하는 공연보다 더 재미있었다며 입가에 환한 웃음을 띠십니다. 그런 어머님의 얼굴 위로 고요한 달빛이 내려앉았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시어머님과 또 지팡이를 짚은 며느리의 뒤뚱거리는 두 개의 그림자에도 고요한 달빛이 내려앉은 밤이었습니다. 유월의 푸른 숲과 신선한 공기와 바람. 온갖 야생화들이 손 흔들어 반겨주는 중랑구청 뒤편 봉수대 공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놀러 오세요.

덧붙이는 글 | 방송에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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