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베네수엘라의 RCTV가 폐쇄되었다는 보도에 요즘 일부 언론이 부쩍 관심이다. 독재고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 같으면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베네수엘라에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요즘 기자실 통폐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허가를 연장해 주지 않아 문을 닫았다는 보도를 보며, 얼마나 편파적인 보도를 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측은지심과 함께, 그렇다고 해서 폐쇄까지 가는 것이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실 통폐합은 언론 길들이기인가

최근 기자실 통폐합을 두고 언론과 정부가 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에 대한 감시자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언론들이 이번 조치에 반발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수구고 진보고 한통속이 되어 언론카르텔을 만들어 청와대에 덤벼든다고 하지만, 브리핑룸 통폐합은 언론에는 당연히 민감한 문제다.

그간 한 언론에서 답안지를 만들어 놓고 나머지 언론은 그냥 베꼈든, 혹은 과거에는 거들먹거리며 대충 쑤시고 다녀도 나오던 것을 이젠 죽어라 하고 공무원을 쫓아다녀야 하는 게 귀찮아서 그렇든 언론의 반발이 그대로 예상되는 문제를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은 왜 그런가.

조기숙 교수가 반론이라고 하며 이야기했듯 언론에 무덤덤하게 일관해 오던 노무현 대통령인데 지금 왜 그러는가. 막판에 기자실 통폐합을 통해 언론을 길들이려 한다는 의도로 본다면 무리일까.

시험장에서 학생들이 답안을 베껴 쓴다고 해서 교실을 통째로 없앤다는 것이 말이 될까. 공무원 사회의 속성을 잘 알지 않는가. 스스로 퇴출대상을 만들어 3%니 어쩌니 하며 숙정을 하는 것이 바로 공무원이다. 아직도 많은 공무원이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틈틈이 보도된다. 이런 공무원들이 무엇이 아쉬워 언론의 취재에 응하겠는가. 잘 되었다고 손뼉칠 일이다.

기자의 속성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일이라 해도 기자실 통폐합과 같이 '원천적인 봉쇄'를 해서는 취재 소스 자체가 막혀버린다. 정보를 캐지 못하게 되면 더욱 소설 같은 기사를 써야 하고, 정부는 그걸 해명하느라 통합된 브리핑 룸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쩔쩔맬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아울러 공식적인 취재 소스가 막히면 내부고발자 등 편법의 취재원을 동원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며, 공개적이 아니면 음성적으로 정보를 알아내야 하므로 그 정보가 보편적인지 혹은 정보제공자의 주관이 섞여 내보내고자 하는 정보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부가 공개하겠다는 자료도 자의적이 될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욕 얻어먹을 일을 스스로 나서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하겠는가. 숨기고 싶은 일과 나타내고 싶은 일을 분류하는 일이 잦아지고, 브리핑 룸에 가지고 가도 되는 건지 아닌지 조직 계통에서의 사전검열이 강화되지 않겠는가.

이런 방식의 견제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언론이 제4의 권력기관이라면, 그걸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투명성이 확보되면 꿀릴 것이 없다. 견제를 하려면 내 집안 단속부터 잘하고 남의 집을 살펴야 한다. 똑같은 정보라고 하더라도 아전인수 격으로 갖다 붙이고, 앞뒤 다 빼고 엉뚱한 보도를 일삼은 언론을 두둔하고자 함이 아니다. 아무리 그런 언론이 영향력이 높다고 해도 적어도 누군가는 편파성을 알아본다.

그렇다고 브리핑룸 통폐합을 통해 편협한 보도행태나 기사 쓰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의적이고 소설 같은 기사를 쓰지 않을까 우려된다. '너희가 막아놓았으니 우리는 할 말 많다.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뭐라고 궁색하게 변명할 것인가. 정부와 언론의 싸움질은 더 격화되지 않겠는가.

언론에 대한 견제는 언론도 스스로 할 여지가 많다. 모든 언론이 다 한통속이라고 보는 것은 피해의식이다. 언론사들끼리 싸우고, 각을 세우고 대립할 수 있다. 언론사마다 시각차가 있으며, 그것이 잘 된 시각인지 편협한 시각인지는 국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부가 나서지 말고, 언론과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부도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고 싸울 수 있다. 왜 안 되겠는가. 그나마 공정한 보도를 하겠다는 언론의 취재 소스마저 불편부당하게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성숙해가는 시민의식을 인정한다면 이런 식으로 언론을 견제해서는 안 된다. 견제가 아무리 필연적이라 해도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은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