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5월 11일 오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회동해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의사를 타진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5월 11일 오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회동해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의사를 타진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요즘 정치권에서 통합이란 말이 대세다. 소통합이니 대통합이니 제3지대 통합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통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통합이란 말이 정치판에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 작금의 통합은 야합을 포장했을 뿐이다. 왜 통합이 아닌 야합인가? 당장 눈앞의 정치적 이득만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의도로 합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도 없고 정체성도 없이 어떡하든지 대선에서 이겨보겠다는 발버둥과 다르지 않다.

이 '범여권 통합'이란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은 예전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말이 좋아 통합이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에 합쳐달라고 애걸하는 형태나 마찬가지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빼고 골라서 받겠다는 것이고, 열린우리당은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빼고 있다.

107석이 13석에 통합 애걸? 덩치가 아깝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열린우리당에서 의원들이 많이 탈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회의원 의석이 107석이나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인제 의원까지 다시 돌아와서도 겨우 13석이다. 밖에 나가서 통합을 촉진하겠다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만든 통합신당도 의석이 20석이나 된다. 덩치가 아깝고, 그 후안무치가 가상하다.

덩치 큰 사람들이 왜 덩치 조그만 민주당을 향한 구애에 이토록 열심인가? 자신들 스스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살아나니까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싶어서인 것 같다. 물론 시너지 효과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참기름과 식용유를 섞으면 엄마한테 혼날 뿐이다. 덩칫값도 못하는데다가 최소한의 자존심도, 남아있는 의욕도 없다.

'범여권 통합'이라는 말로 불리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민주당은 범여권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정당이다. 열린우리당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과 더 어울리던 정당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 내에서 정당 개혁이 불가능하다며 깨고 나와 만든 정당이다. 벌써 잊었나? 이들이 다시 손잡는 것은 오로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으로 통합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야합이라 할 만하다.

좋다. 이들이 다시 대선을 위해 손을 잡고 야합이든 통합이든 이뤄내서, 정말 기적적으로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바뀌고 뭐가 좋아지는가? 대통령 탄핵으로 열린우리당도 의석만 잔뜩 늘었지, 4년 내내 한나라당에 끌려 다니며 한 게 없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탄핵 상황 없이, 소수 정당일지라도 자력으로 정체성을 지키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나가는 것이 옳았다.

만약 통합인지 뭔지에 성공해서 이제 '열린우리당 플러스 민주당'이 또 여당이 되었다 치더라도 도무지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잡탕 정당'에 '정체성 오리무중 정권'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4년의 되풀이가 눈에 훤히 보인다.

정체성도 자존심도 없는 패거리 정치

지금 이른바 범여권이라는 정치인들에게서 보이는 것은 오로지 패거리 정치뿐이다. 정체성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그러니 염치도 없다. 열린우리당은 다수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을 이 이상 실망시킬 수가 없다. 국민의 외면을 받아 실패했는데도,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뼈저리게 반성하고 다시 태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난파선에서 탈출하려는 쥐들처럼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며 미니정당인 민주당에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두 번의 대선 패배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은 지역 구도에 힘입은 바 크지만, 어찌됐건 스스로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탄핵 역풍의 위기에서도 한나라당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쳤지, 한나라당에서 탈출해서 다른 당과 통합하겠다고 나선 이는 없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선거에서 패할수록 패배의식에 젖어 스스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대선 승리가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잡탕 정당으로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마침내는 현재의 열린우리당 꼴이 될 뿐이다. 이제 아마도 정치용어로 '열린우리당 효과'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이 정치 용어는 의회에서 의석이 과반수가 되어도 제 할 일 못하고 남 눈치나 보다가 끝내는 공중 분해되는 어처구니없는 정당을 일컫게 될 것이다. 또는 괜히 제 할 일 못하고 상생이니 실용이니 하다가 정체성을 잃고 망하는 경우도 가리키는 용어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눈앞의 정치적 이합집산에 열중하기보다는 길게 보고 명분과 원칙이 있는 정치를 하는 한편 스스로 정체성을 세우고 지키는 정당을 만들어 궁극적인 정치적 승리를 얻길 바란다.
#열린우리당#민주당#범여권 통합#야합#패거리 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