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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탁소와 달리 이곳 북미의 세탁소는 규모는 다양하지만 그래도 '플랜트'라고 불리듯 많은 장비들로 구성됩니다. 압축공기와 스팀, 그리고 진공으로 스팀을 빨아내는 배큠으로 세탁장비들이 작동되어 모두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압의 압축공기와 스팀은 수시로 새기 마련이라 어떨 때는 세탁장이인지 수리공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국내서 사무직 일을 해온 저로서는 처음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밀려드는 빨래감을 빨고 다리려면 장비가 순조롭게 돌아가야 하는데 종종 그렇지 못합니다. 그럴 땐 정말 '세탁장이 못해먹겠다'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도 노련한 미케닉(수리공) '테드' 영감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시간당 75불을 주어야 하는 고비용이지만 장비가 고장났을 땐 마치 구세주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조바심을 냅니다.

가게 초창기에 서로간의 신용을 쌓은 덕분에, 우리 가게 고장 연락에는 신속하게 달려오는 테드. 본명은 '에드워드 프랜시스(Edward Francis)'로, 케네디언입니다. 진짜 나이는 서로가 물어보지 않는 서구인의 예의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70세를 넘은 것은 확실합니다.

5년 전 가게를 처음 할 적에 경력 45년의 세탁장비 수리공이라고 소개했으니 올해로 50년 경력의 미케닉입니다. 영감은 여느 수리공답지 않게 무척 유머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게에 오면 세탁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더라도 만사를 제치고 장비수선 과정을 지켜보게 하여 수리 과정을 배우게 합니다.

특유의 유머를 섞어가며 공구 다루는 법도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그래야 다음에는 세탁소 주인이 작은 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덕분에 공구 일습도 갖추고 어깨 너머로 배운 덕에 제법 작은 수리는 직접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영감은 약관의 나이에 세탁장비 수리업에 뛰어들어 이제 몇 남지 않은 베테랑인데 후배를 양성하지 못한다고 푸념을 하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이 험한 일을 하려 해?"

3번 결혼에 3번 이혼 경력이 있는 영감은 아직도 걸프랜드가 자기를 만나자고 조른다고 익살까지 떱니다.

"테드, 부인 셋 중 누가 제일 맘에 들었소?"
"그야, 마지막 셋째가 제일 좋았지. 음식도 잘 만들었고."

마지막 부인과는 사별을 했다고 하니 2번의 이혼을 한 셈입니다.

"왜 그렇게 많이 결혼하고 헤어지고 그랬소?"
"장비 수리한답시고 새벽에 나가서 밤 10시까지 일만 했으니 누가 좋아 하겠어?"

그래서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금요일 오후 2시면 자신의 휴식처인 토론토에서 3시간 걸리는 미들랜드로 향한다고 합니다. 시간당 단가가 워낙 비싼 노임으로 돈도 많이 벌었겠지만, 3번의 이별로 많이도 날린 영감은 그래도 언제나 활발합니다.

50년의 수리일로 무릎 수술을 3번씩 하고도 휴일이면 죠지안 베이에서 스쿠버 다이빙과 낚시를 즐기는 노익장입니다. 젊었을 적엔 오토바이에 미쳐 가게까지 운영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아픈 무릎으로 구부리고 일을 할 적이면 노인 특유의 느릿한 몸짓을 보이기도 하고 또 뻑뻑한 나사를 조일 때면 입을 오물거려 영락없는 '호호 할아버지'입니다. 그럴 때면 안쓰러워 제가 한 마디 합니다.

"헤이, 테드 이제 은퇴하고 쉬지?"

이 말에는 어김없이 버럭 화를 냅니다.

"노웃! 은퇴란 없어!"

이런 테드에게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45세의 아들이 있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일솜씨가 뛰어난 사람인데다 마음까지 좋아서 테드보다 일삯이 쌉니다. 그런데 이 '브래드(브래들리의 약칭)'란 아들은 신용이 없습니다.

"테드, 아들 브래드 있잖아. 수리 가게를 물려주지?"

"갠 안돼! 오늘도 쎌폰으로 15번 연락해도 응답이 없어? 접땐 돈 2천불 빌려달래더니…."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합니다. 브래드도 이혼을 하고 20살 되는 아들과 단 둘이 사는데 최근에 만난 애인이 아이를 낳는다고 테드 영감이 장탄식을 합니다.

"그 녀석 나이 45살에 아이를 낳겠다니. 단 두 식구에 5베드룸 하우스를 사질 않나?"

당최 자기를 닮지 않고 두 번째 부인을 닮았다고 불평하는 걸 보니 두 번째 부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시 첫째 부인과 혼인 관계가 아닌 그냥 함께 살고 있는 테드 영감은 오늘도 엄청나게 큰 렌치를 들고 서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세탁소 뒷문을 들어섭니다.

함께 땀 흘려 기계를 고치고 배웅을 할 적이면 정년없는 삶을 사는 그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런 반면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이곳에서 어슬렁거리는 한국의 아저씨들이 보입니다. 기업이민이니 투자이민이니 돈푼깨나 들고와서는 그냥 시간을 보내다가 종종 한국 나들이를 하는 부류죠. 주로 아들 둘만 둔 가정이 많더군요.

'조로(早老)현상'이라고 말을 하지만 저도 가끔 국내 친구들에게 국제통화라도 할 적이면 되려 힘을 받아야 할 제가 기를 빼앗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중늙은이 친구들에 비하면 45세에 이곳에 와서 이민생활을 하는 저는 한국을 떠날 적의 나이를 영원히 가지고 삽니다. 왜냐면 이민올 적의 한국시간이 그대로 동결되니까요.

테드가 와서 와장창 기계를 고치고 간 날이면 우리 마음까지도 왕창 분해되어 새로 조립된 느낌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토론토에서 세탁업을 하고 있는 재외동포입니다.


#토론토#수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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