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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말,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 환경미화원이 처음 나왔다 해서 한 때 떠들썩했다. 환경미화원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직업임에는 틀림없고 석사가 환경미화원이라 해서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전혀 종류가 다른 생물인데도 청소를 해주고 그 대가로 살아가는 놈이 있다. 우선 그 중에서도 악어와 악어새는 잘 알려진 공생관계이다. 육식성인 악어의 이빨 사이에 남겨진 찌꺼기를 먹어치우는 동시에 칫솔질을 못하는 악어의 입안 청소를 대행하기 때문에 악어새는 악어의 구강청소 대행업자이다. 조류와 파충류의 기이한 공생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런 공생관계는 물고기의 세계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 대표적인 물고기가 바로 바다의 청소놀래기라는 놈이다. 놀래기인데 청소하는 일 즉, 청소(掃除)가 본업이어서 청소놀래기가 된 것이다. 일생을 청소부로 살아가는 셈인데, 큰 물고기들은 이놈의 하는 짓은 용케도 알아 모시기 때문에 잡아먹는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살생면죄부를 받아 쥐고 살아가는 것이다.

청소놀래기는 기껏해야 2~3cm 이상 6~7cm에 불과한 작은 물고기이다. 이놈은 능성어나 자바리의 등이나 입 안에 기생하는 기생충을 잡아먹고 산다. 청소놀래기의 입장에서 보면 큰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능성어나 자바리는 포악하며 탐식성이 무지막지한 데다 몸집이 큰 거구이고 입안은 마치 터널이나 큰 굴뚝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커도 청소놀래기는 이들 물고기를 전혀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등에 붙어서 가렵고 아픈 통증만 안기는 벌레를 대신 잡아먹으며 입안의 골치 아픈 곳을 말끔히 청소해주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자바리나 능성어는 청소놀래기를 잡아먹지 않고 환영한다.

청소놀래기는 혼자 헤엄치고 놀다가도 자바리나 능성어가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등을 타고 오르내리며 등짝에 붙은 벌레를 떼어먹는다. 제 손으로 귀찮은 것들을 떼어내지 못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환영해야 할 놈들이다.

이들의 공생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가 아직 나와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청소놀래기가 청소를 하면서 입에서 내는 분비물에 몸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거나 잡아먹지 못하게 하는 어떤 물질을 분비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의 공생관계는 참으로 신기하다.

이 청소놀래기는 청백색의 흰 바탕색에 머리로부터 꼬리쪽으로 검은띠가 걸쳐 있다. 일명 기생놀래기로도 불린다. 소제놀래기라고도 한다. 기생처럼 덩치 큰 물고기의 구강청소며 기생충을 잡아주고 그 대가로 먹고 살아가는 물고기니까. 이와 같은 습성을 갖고 있어서 이 청소놀래기는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알려져 왔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4년에야 춘계 어류학회에서 국내 미기록종으로 처음 보고되었다.

탐욕스런 주인에게 기대어 사는 처량한 부하직원으로 제 수족처럼 충성하는 사람에게조차 박정하게 대하는 부도덕한, 쓰레기 같은 인간보다는 차라리 자바리가 듬직해 보인다. 월급은 따로 없어도 평생직장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물속 나라의 환경미화원. 물속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물고기나라’의 일원임에 틀림 없다.

이 외에 양놀래기도 물속 나라의 청소부이다. 이놈은 주로 이빨청소를 하며 이 외에 동갈방어는 무시무시한 매가오리를 청소해 준다. 열대어인 앤젤피시(Angel fish)도 물고기 청소부이며 멕시코 연안에서는 이놈들을 가리켜 이발사라고 부른다. 베도라치의 종류 중에는 청소부를 가장하여 접근한 다음, 먹어치우는 교활하고 간사한 무리도 있다. 거북복을 청소해주는 놈으로는 흑놀래기가 있다. 이 흑놀래기가 다가와서 자기 상처를 치료해 주면 독을 발산하지 않고 잡아먹지도 않는다. 제 아픈 곳을 치료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물속 나라에도 약삭 빠른 놈도 살고, 헌신적으로 남을 위해 살아가는 놈도 있다. 사기꾼처럼 교활한 놈이 있는 것도 우리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고, 믿음직한 물고기도 있다. 생물체가 살아가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물고기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물고기들은 분명 물속 나라의 환경보호자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coe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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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및 중국 고대사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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