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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현충사 입구 은행나무 가로수길
아산시 현충사 입구 은행나무 가로수길 ⓒ 김동율
석가탄신일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 흥분했다. 건설현장에 근무하는 나 같은 사람은 보통 주 중간에 낀 휴일은 무시해 버린다. 이날도 당연히 출근하지만 비가 오면 현장 근로자들이 작업을 못하니 사무실에 있어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아침부터 꽤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던 그 아침에 햇볕이 쨍하고 나는 상쾌한 날씨를 맞이하고 보니 예보가 빗나가서 기상청 사람들은 우울하겠지만 내 기분은 상쾌하다. 오후가 되니 그제야 일기예보가 기억난 듯이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어디론가 달아나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냥 달려간다. 은행나무 가로수 터널 속으로. 자동차 세차기가 유리창의 물방울을 불어내듯이 빗방울이 차창에 잠시라도 머물지 못하도록 바람을 마주치며 시계추 같은 일상에서 벗어난다. 쾌속탈주!

단풍나무 씨앗1
단풍나무 씨앗1 ⓒ 김동율
단풍나무 씨앗2
단풍나무 씨앗2 ⓒ 김동율
은행나무의 바람개비 같은 씨가 가을날 단풍처럼 빨간색으로 익어간다.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배꼽을 자르면 바람을 타고 훨훨 자유롭게 자신의 뿌리를 내릴 새로운 땅으로 찾아갈 희망이 영글어 가고 있다.

매일 매일 '이 놈의 집구석을 언제나 벗어나나' 조바심을 내지만 떨어져 나간 후에는 금세 엄마 가지에 붙어있던 시절이 그리워지게 될 줄은 나는 이미 알고 있지.

낙엽송과 소나무
낙엽송과 소나무 ⓒ 김동율
낙엽송이 하늘만 쳐다보고 자리기엔 너무나 외로웠을까? 수평으로 가지를 뻗어 옆에 있는 소나무를 얼싸 안고 있고, 발 아래의 담쟁이는 낙엽송의 몸을 더듬는다. 담쟁이는 낙엽송을 사랑하고 낙엽송은 소나무를 사랑한다. 소나무만 담쟁이를 사랑하면 완전한 사랑의 삼각굴레가 이루어질텐데. 인간들이나 나무들이나 지 마음먹은 대로 되어가는 세상은 아닌가 보다

서해안의 아산시 인주사거리에 다달았다. 멀리서 공세리 성당이라는 안내판이 보여 마을로 들어섰다.

아산시 인주사거리의 공세리 성당
아산시 인주사거리의 공세리 성당 ⓒ 김동율
옛날에 전라도, 충청도 곡창지대에서 나라에 바치는 공물을 배로 싣고 삽교천으로 들어와 공세리의 창고에 보관한 동네라고 이름이 '공세리' 란다. 수 백년된 듯한 나무숲에 쌓인 고딕양식의 공세리 성당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다녔던 시골의 공소만한 작은 성당이다. 아름답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냉담 교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예수님을 대신하여 인간이 뉘우치는 죄를 사죄하여 주는 신부님에게도 고해를 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내 죄를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설사 예수님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내 죄를 침묵하고 차라리 지옥의 길을 택하여 가리라. 그렇게 해서 나는 아직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세리 성당의 화초
공세리 성당의 화초 ⓒ 김동율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매끄러운 마루의 감촉을 느끼며 앞자리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변한 건 마루바닥만 있던 것이 긴 의자가 놓여있고, 기름으로 밝히던 남포불에서 전등으로 바뀐 것 뿐이다. 내가 다녔던 시골공소인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져 가출한 소년이 아무도 없는 고향집에 몰래 들어와 그리움의 허기를 채우듯 성당 안을 돌아보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서 들어가는 남녀와 마주쳤다. 성당 안에 있을 때 마주치지 않고 때 맞추어 나오기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비는 내린다.

교회 귀퉁이에 일년생 꽃들이 성직자의 미사복처럼 하얀색과 보라색으로 피어 비를 맞고 있다. 백년이 넘은 교회와 수백년이 된 나무들과 해마다 싹이 트는 일년생 꽃들과 세상도 그렇게 잘 조화되어 살아간다.

공세리 성당의 고목
공세리 성당의 고목 ⓒ 김동율
나무뿌리는 나무 만큼 나이 먹은 문어같이 굵고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숙이 박고 수십미터의 상체를 지탱하며 수백년 동안 바다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에도 끄떡없이 서 있다.

저만큼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은 죄많은 인간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나무는 위용을 자랑하며 성모 마리아를 지켜주는 듯하다. 죄 많은 인간 중 한 사람인 내가 이 나무를 사랑하게 된다면 완벽한 사랑의 삼각굴레가 형성되려나.
#일상탈출#공세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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