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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으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에너지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배출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광주전남녹색연합'은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 대학생 및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를 맞는 이번 순례에서는 총 40여 명의 청년들이 총 300km 구간에 걸쳐 광주 도심, 지리산 자락, 섬진강 줄기, 19번 국도, 진주의 자전거 도로 정책, 세계적인 습지인 '우포늪' 등 기후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현장을 찾고, 깊은 만남을 통해 맑은 지구를 향한 희망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필자 주>


출발할 수 있을까?

일기예보에 따르면 제2회 청년에너지 자전거 순례가 시작되는 24일은 강수확률 100%에 집중호우, 강풍과 번개까지 예상된다고 했다. 지난 6개월간 순례를 준비해 온 순례기획팀에게 마지막 결단이 요구되는 시간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출발할 것인가, 지금껏 준비해 온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순례 기획팀은 고심 끝에 순례 강행을 결단했다. 악천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온난화에 시달리는 지구를 살리는 강력한 대안인 자전거가 나아가야 할 길도 험한 길이겠고 자전거를 타다 보면 햇빛 찬란한 봄 거리만을 달릴 수만도 없을 테니 말이다. 순례 기획팀은 23일 밤, 하늘의 변덕이나 기상청의 오보를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들었다.

▲ 조선대학교 태양에너지실증연구단지에서 찍은 하늘이다. 어제의 기상청예보에 따르면 흐린 하늘이 맞다. 하지만 지금은 푸른 하늘이다.
ⓒ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촬영팀
자전거로 만나 한 팀이 된다는 것

24일 아침, 조선대학교 태양에너지 실증 연구 단지에 35명의 순례단원이 모였다. 18세부터 51세까지의 남녀, 대학생, 회사원, 자원 활동가 등 다채로운 사람들, 모두가 제2회 청년에너지 자전거 순례를 위해 3박 4일간 한마음으로 페달을 굴릴 사람들이었다.

태양열 에너지와 발전 설비의 견학과 질의를 마치고 힘찬 구호와 함께 70개의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첫날은 광주에서 곡성을 거쳐 구례의 문수리까지 달리는 90Km. 다행히 오전에는 햇살이 비쳤다. 바람도 뒷바람이어서 쭉쭉 페달을 밟는 힘에 탄력이 붙었다.

단체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출발해서 오전까지가 가장 힘이 든다. 서로 개성도 다르고, 자전거 경력도 다르고, 체력도 틀린 사람들이어서 일정하게 대열을 짓고 단체 속의 한 부분으로 자기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 색다르고 쉽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처음 출발했을 때는 쨍쨍한 햇살이 반갑기만 했지만 바람 속에 스며있는 축축한 습기가 불쾌지수를 높게 했고, 오후에 쏟아질 비의 확실한 예고가 되어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자전거 행렬 뒤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에서도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는 주행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을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옷을 입고 곡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자 펼쳐지는 시원스런 내리막길, 곡성읍내까지 6km를 단숨에 달려 섬진강가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비는 안개비로 모양을 바꿨고, 눈을 깜빡이며 빗길을 달리는 우리에게 곁눈질로 훔쳐볼 수밖에 없는 섬진강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 섬진강을 향해가는 순례단은 힘들다. 잦은 언덕과 거대한 트럭에 점심 이후부터는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처음부터 쉽지 않다.
ⓒ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촬영팀
섬진강에 꽂힌 기둥

빗물에 물이 불어 풍성해진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산처럼 높은 기둥들이 강을 가로질러 줄지어 있다. 바로 남원 광양간 고속국도 건설현장이었다. 아름다운 강 중에서도 손꼽히는 섬진강에 무자비하게 꽂혀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을 보며 달리는 마음이 갑작스레 무거워졌다.

누구는 자전거로 달리고 누구는 자동차를 탄다. 누구는 되도록 길을 덜 만들려 하고 누구는 거대자본의 후원을 받아 더 큰 길, 더 빨리 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지키려는 자와 부수려는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가 얻는 자고 누가 잃는 자일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전거 한 대는 저 거대한 다리를 향한 얼마만큼의 울음일까?

▲ 섬진강이다. 곡성 가정마을에 기타 차 도로 되어 있는 차도를 이용하기 위해서 섬진강 마을 다리를 건너고 있다.
ⓒ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촬영팀
▲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섬진강에 다리를 심고, 여기저기 산은 파헤쳐지고 있다
ⓒ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촬영팀
누군가 내 옆에 있다

구례구역을 오른쪽에 두고 좌회전하여 지리산을 향하는 순례단, 빗방울이 조금씩 커지더니 제법 줄기차게 쏟아졌다. 악천후를 뚫고 80여km를 달려온 순례단원 중에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씩 둘씩 뒤로 처져 결국은 네 명이 뒤에 남았다.

점점 멀어지는 순례단 본 행렬이 야속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번 처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지치고 마음이 지치자 몸이 아예 포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 세상살이 다 그런 것, 자전거를 타고나면 눈물 나게 실감할 수 있다. 이럴 때 누군가 손 한 번 잡아준다면, 누군가 나타나 터벅터벅 걷는 내 곁에서 말없이 같이 걸어준다면.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 낙오자들을 돕기 위해 강철다리들로 구성된 안전팀 요원들이 되돌아온 것이다. 안전팀들은 낙오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등을 밀며 달렸다. 혼자 달리기도 힘든 길을 사람 하나 밀어가며 묵묵히 달리는 안전팀, 안전팀의 지원은 낙오자가 본대에 합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촬영팀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

지리산 남서쪽 모퉁이를 돌아 문수사로 올라가는 길에 접어들자 지금껏 순례단을 보호해준 경찰차들이 돌아갔다. 말은 안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처음부터 경찰의 호위가 있었다.

오늘의 숙소는 지리산 산간 학교, 500m 높이로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오늘처럼 비 오고 지친 저녁 무렵에 자전거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뿔뿔이 흩어지는 순례단, 달려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가다가다 주저앉은 사람까지 나왔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해질녘 지리산 골짜기, 그나마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만이 위로가 되었고 마지막 힘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청년 에너지 순례의 첫날밤을 지리산 골짜기 문수리 산간학교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광주에서 구례 문수리까지 안내해주신 전남지방경찰청과 담양, 곡성, 구례경찰서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자전거#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팀#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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