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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력 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옛 기억, 그러니까 저 밑바닥의 기억이 느닷없이 스멀스멀 목덜미까지 올라올 때가 있다. 그 기억의 꼬리를 더듬어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입가엔 어느새 그리움의 미소가 매달려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10년 전에나 그럴 듯했지, 지금은 눈 뜨면 강산이 변하는 것을 누구라도 실감할 것이다.

지난 일요일(20일)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나는 큰 맘을 먹고 40여 년 전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았다. 가는 동안 줄곧 가슴은 두근거렸고, 학교가 없어졌다는 고향 친구들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설마' 하던 미련한 마음을 학교가 있던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접어야만 했다.

누렇던 황톳길은 윤기 반들반들한 아스팔트가 덮여 있고 길가에 정겹던 초가지붕은 형형색색의 최신 소재의 지붕들로 바뀌어 있었다. 렌터카를 빌려 혼자 운전을 하며 길을 찾던 나는 적이 당황했다.

이 길인가 하면 저 길 같고, 한참을 헤매던 끝에 나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허물어져가는 학교의 본관을 발견했고,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고무줄놀이에 열심인 열한 살의 단발머리 계집아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날도 그 계집아이는 맨발에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끈은 정미소의 피대 줄로 만든 '게다'(그 시절의 우리 동네 사람들은 여름에는 거의 그런 신을 신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게다'라고 했는데, 그건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나막신 혹은 왜나막신 정도가 알맞을 지금의 '슬리퍼의 일종'이다)를 신고 동네 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바쁜 척하며 뛰어가면서도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집아이의 작은 가슴을 가득 채운 걱정.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동장이 질척거려서 고무줄을 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계집아이는 가는 도중에 동무도 서넛 불러내어 짝을 맞추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나올지도 걱정이다. 아이들이 적어도 세 명은 되어야 두 명은 양쪽 끝에서 고무줄을 잡아주고 한 명은 고무줄을 할 수 있다. 아주 아쉬울 때는 나무에 고무줄을 묶어놓고 할 수는 있으나 그래도 사람 손으로 잡고 입으로는 노래를 합창을 해야 흥이 난다. 계집아이의 운이 좋았는지 동무도 서넛은 되고 운동장도 제법 말라 있었다.

비가 그친 후의 텅 빈 학교 운동장은 아름답고 깨끗하기까지 했다. 한여름의 무성한 나뭇잎들은 검푸른 빛을 발하고 바위에 매달린 빗방울은 보석처럼 빛났다. 계집아이의 엄마가 묻히신 개울 건너의 산기슭엔 영롱한 무지개가 서려 있고 운동장의 모래는 한없이 부드러워서 개구쟁이 머스마들이 고무줄을 끊겠다고 으름장만 놓지 않는다면 고무줄 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다.

계집아이는 '게다'를 가지런히 벗어 놓고 맨발로 고무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되는 탓에 몇 번밖에 뛰지 않았는데도 발바닥은 엉망이 되고 발이 무거워지니 고무줄도 자꾸 밟게 되고, 이쯤 되니 며칠 전 장날에 할머니께서 새로 사 주신 검정 고무신 생각이 간절했다.

'그놈을 신고 뛰면 고무줄도 잘 되고 아이들한테 뽐낼 수도 있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계집아이는 주저 없이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계집아이의 집은 정미소를 운영하는 그 동네 제일의 부잣집이었으나,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검소하신지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주시면서 매번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중학교 드갈 때까지 신어야 한다. 중학교 드가면 운동화 사 주꾸마."

그 시절의 아이들이 모두 그랬을 것이다. 특별한 놀이 기구나 장난감이 없어서 온몸으로 나대며 놀다 보면 검정 고무신 한 켤레쯤은 일 년 정도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쏙 나오고 만다. 그런 줄 뻔히 아시는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얼마든지 애껴 신을 수 있는데 지지바가 벨나게 나대니 신이 금방 떨어지지. 학교 갈 때만 고무신 신고 그냥 다닐 때는 '게다'를 신어라. 고무줄할 때는 '게다' 신고하면 발목 다치니까 벗어 놓고 하고."

그날 다행히도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무사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나올 수 있었으나 학교와 정미소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지라 혹시나 할아버지께 들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가슴은 동기당동기당 두 방망이질을 했다.

계집아이가 신나게 '최영장군'과 '무찌르자 오랑캐'를 목청껏 뽑아대며 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옥자야 집에 가자"라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간이 콩알만해져서 고개를 발랑 젖히고 쳐다보니 얼굴에 미소를 띠긴 했으나, 눈길은 고무신에 가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산처럼 크게 보였다. 계집아이는 순순히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갔다. 그 후 열흘 동안은 비가 오는 날도 '게다'를 신고 학교에 가야만 했다. 아껴야 하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고무줄을 한 죄의 대가로.

그때의 단발머리 계집아이는 나이 쉰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이제는 폐교가 되어 버린 빈 운동장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은 지금쯤 다들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고무줄을 끊던 짓궂은 머스마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그시 감은 눈앞에 지난 추억 세워 놓고 휑하니 빈 운동장에서 혼자 빈발로 고무줄을 해 본다.

#검정고무신#할아버지#고무줄#운동장#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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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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