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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겉표지
<잔학기>겉표지 ⓒ 황금가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불편하다. 폭력적인 장면을 여과없이 묘사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주제 의식은 사회의 치부를 헤집어놓고 있다. 그녀의 이름을 국내에 알리는데 일조했던 <아임 소리 마마>만 해도 버림받은 뒤 창녀촌에서 길러진 아이가 잔혹한 살인마가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이번에 소개된 <잔학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어린 나이에 발표한 소설로 화제를 모았던 30대 여류 소설가의 실종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게이코.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원고인 '잔학기'를 남겨두고 사라진다.

원고는 여류 소설가 게이코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내용을 담고 있다. 게이코는 아버지를 찾아 이웃 마을에 가던 도중 겐지라는 노동자에게 납치를 당한다. 당시, 게이코의 나이는 10살이었다. 겐지는 10살 된 여자 아이를 납치해서 무슨 짓을 하는가?

겐지는 낮에 폭력적이다. 게이코가 말을 듣지 않으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 주먹을 휘두른다. 그런데 일이 끝난 저녁 시간에는 돌변하다. 초등학생처럼 변해서 게이코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려 한다.

때로는 게이코보다 더 어린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정신상태가 이상하다. 게이코는 겐지가 이상하다는 것을 곧 눈치 채고 그 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화를 내지 않도록 겐지를 조종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지만, 생존본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동시에 탈출을 계획하기도 한다. 옆집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리를 지르거나 문 밖으로 쪽지를 보내거나 하는 수법을 사용하려 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옆집에서는 반응이 없다. 그 사이 납치된 지 1년이 지나고 게이코는 집에 들어온 사장 부인 때문에 탈출할 수 있게 된다.

게이코가 남긴 마지막 원고의 제목이 '잔학기'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가 1년 동안 감금당하면서 당한 일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겉포장에 불과하다.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는 '탈출 이후'부터 시작한다.

탈출 이후, 게이코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은 잔혹했다. 어린 소녀가 감금됐다는 사실만 갖고 사람들은 '상상'을 했다. 상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최악에 최악이 더해진 불온하고 폭력적인 상상이었다.

사람들의 상상은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찰은 그녀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말해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위로하는 척 하며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녀가 겪은 '잔학'이라는 단어는 이상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1년 동안 그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서 밝혔듯, 겐지의 기이한 성격은, <아임 소리 마마>의 아이코의 출생과 비슷하게 버림받았다는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다.

정에 굶주렸던 겐지는 정을 준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바친다. 그 사람이 반사회적인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버림받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한다.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옆집에 있던 사람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게이코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겐지를 통해서 확인한다. 그런데 옆집에 있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는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고 할지라도, 옆집에서 1년 동안 아이가 감금돼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 몰랐던 것일까? 혹시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게이코 또한 이상한 점이 있다. 감금됐던 그 시간 동안 게이코 또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저녁 시간에 초등학생 흉내를 내려는 겐지와 진짜 친구처럼 지낸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왜 그랬던 것일까? 생존본능 이상의 무언가가 발동했기 때문은 아닐까?

소녀가 감금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잔학기'라는 원고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한데 엉킨 <잔학기>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그것들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사이사이에서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답기에 보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잔학기>, 이제껏 봐왔던 추리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잔학기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2007)


#기리노 나쓰오#잔학기#아임 소리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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