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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극장에 가다

▲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이곳 안 오페라극장에서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오페라 <리날도>가 공연되었다.
ⓒ 박태신
시인 김용택 님에게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분의 책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를 본뜬 기사 제목을 달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났는데 다시 생각해도 적절한 제목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서울 출신이고 이제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서울 촌놈'인 것은 분명하거든요. 이런 제목을 단 또 다른 연유는 제가 오페라극장이라고 하는 '사치'의 자리에 생전 처음 들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김용택 님은 영화를 아주 사랑하고 즐겨 극장을 찾는 분이라는 점이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시겠지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첫경험'을 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책을 통해서, 기사를 통해서 오페라의 세계를 넘겨다보기는 했습니다만, 유럽의 수많은 극장과 무대에서 매년 수많은 오페라가 그것도 반복해서 올려지는 연유를 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여름의 바캉스 시즌에 열리는 유럽의 수많은 페스티벌의 공연 프로그램에는 오페라가 단연 우위를 차지합니다. 수많은 오페라 팬들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무대를 찾아갑니다.

성악과 연기의 겸비 능력, 무대 장치와 의상의 조화, 오케스트라와의 일치, 스토리와 가사의 호소력 등이 오페라의 매력인 것을 오페라 한 번 구경하고서 알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분명 제가 들어가기 힘든 딴 세상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서울예술의 전당이야 전시회 때문에 또 가끔 연주회 관람을 위해 들르곤 했습니다. 한가람미술관이나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음악당 심지어 옥외광장과 서예 박물관까지 가보았으나 예술의전당 중앙에 자리잡은 오페라하우스는 가볼 연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5월 15일 이곳에서 오페라 <리날도>를 관람하게 되면서 드디어 서울 촌놈은 서울의 명소를 완전 '점령'했습니다.

꿈을 꾸러 가다

▲ 건축가 출신의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 <리날도>에서 호화롭고 풍성한 무대의상, 색채, 조명, 불꽃 등 바로크 시대의 화려함을 재현하였다.
ⓒ 한국오페라단
<리날도> 공연은 사실 우연하게 한 신문기사를 통해 알았습니다. 한국에서의 <리날도> 공연을 연출한 이탈리아의 유명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를 인터뷰한 기사인데, 그이의 답변이 제 눈을 이끌었습니다.

"극장은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꿈을 꾸러 가는 곳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실적 연출을 싫어합니다. 오페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삶을 풍부하게 하고, 꿈을 꾸게 해야 합니다."(동아일보 07. 5. 2일자)

저를 유혹하기에 더없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겐 책이 그런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상상은 책에서 묘사한 것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이 나래를 펼 자유를 덤으로 준다는 특성을 지닙니다. 물론 주의 깊게 읽고서 상상의 내용을 숙지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오독(誤讀)을 통해서도 상상이 피어납니다.

보도블럭 틈 사이로 씨앗이 기어들어가 꽃을 피우는 민들레, 왕성한 가지 위에서가 아니라 줄기 한 곳에 잎을 돋우고야 마는 은행나무 잎 같은 것이 오독의 상상력 같은 것은 아닐지. 상상은, 상상력은 무한한 생명력과 자유로움 그리고 무공간성을 지닙니다. 그런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설마 기사를 읽은 것이 단초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제게 23만원이나 하는 S석 티켓이 생겼습니다. 한 모임에서 지금 예술의전당에서 진행중인 <오르세 미술관전>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그 티켓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는 후배에게서 받은 그 티켓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연주회나 전시회 티켓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티켓인데요. 개찰을 거친 이 티켓은 아직도 제 지갑에 모셔져 있습니다.

▲ 리날도와 알미레나. 둘은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 사이. 푸른색 의상으로 이들을 표현했다.
ⓒ 한국오페라단
오페라 <리날도>는 헨델의 작품입니다. 동시대 사람이고 같은 독일인인 바흐가 조용히 교회 음악가로 종교음악에 평생 몰두했다면, 헨델은 두문불출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더 잘 배웠고, 영국 런던이 좋아 평생을 그곳에서 산 사람입니다. <리날도>는 잠시 휴가차 영국 런던에 들렀을 때 만든 작품입니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번 공연 <리날도>는 2005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연출된 프로덕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때의 연출방식을 그대로 도입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성악가들도 유럽에서 활동중인 이들을 섭외해 데리고 왔습니다.

객석에 들다

당일 날 공연장으로 가서 알았지만 이렇게 오페라 팬들이 많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시간이 임박하자 줄줄이 들어서는 사람들이 오페라하우스 로비를 채웁니다. 5층 높이 정도의 천장까지 중앙이 둥그렇게 텅 빈 형태를 하고 있는 로비가 눈길을 끕니다. 원형 공간 한쪽에 자리잡은 두 대의 반투명 엘리베이터가 사람들을 실어 나릅니다.

공연장에 가서야 제 좌석을 알기 위해 티켓을 자세히 봅니다. 그런데 3층입니다. S석이 3층이라니! 저는 당연히 1층 그것도 앞자리쯤일 거라 여기고 있었거든요. 이런!

극장 안은 관객들이 자리를 잡느라 부산했습니다. 'auditorium(객석)'이라는 멋진 표현을 써보지요. 객석은 보통 무대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자리잡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으로부터 시작된 원형극장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지붕을 씌운 건축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층이 있는 객석이 들어섭니다.

무대는 대형 커튼이 쳐져 있고, 그 무대 앞 쑥 들어간 자리에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주를 맡은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바로크 음악을 전공하거나 공부한 연주자들이 모인, 우리나라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단체입니다. 그러고 보니, 악기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원전악기가 사용되어서 현대 오케스트라의 연주음과 다른 소리를 냈습니다.

무대 양 옆으로는 튀어나온 난간에 서너 자리씩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는 '박스석'이 층마다 있습니다.

위노라 라이더가 나오는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면, 조 마치(위노라 라이더 분)와 그의 벗 프리드리히 베이어(가브리엘 번 분)가, 격식을 차려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런 무대 옆 구석진 자리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프리드리히는 조용히 극의 진행사항을 조에게 설명해줍니다. 그곳에서 둘의 사랑이 깊어가고요.

▲ 마술궁전으로 가는 도중의 리날도. 그 리날도를 유혹하고 있는 인어들. 앞의 흔들리는 천으로 바다 위를 연출했다.
ⓒ 한국오페라단
현대에 들어와서 생긴 오페라 극장의 또다른 면모, 바로 자막이 비쳐지는 화면이 무대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점입니다. 관객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배역의 이름과 그 배역의 번역된 대사가 비쳐지는 화면을 무대와 번갈아 가며 쳐다봅니다.

오페라는 영화와 달리 스토리를 알고 가면 더 좋습니다. 그 같은 스토리를 어떤 무대 배경과 연출과 성량으로 표현하는가를 골수팬들은 비교할 것입니다.

객석이 가득 채워지고, 조명도 어두워집니다.

오페라를 알다

드디어 서곡이 연주됩니다. 물론 독립된 형식의 연주회용 서곡도 있지만, 무대의 커튼이 올려지기 전에 나오는 음악이 서곡임을 알게 됩니다. 지휘자의 왕성한 몸놀림을 자주 내려다봅니다. 은밀한 조명의 도움을 받으며 오케스트라는 시기적절한 배경음을 내보냅니다.

오페라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압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거의 쉴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연기자가 노래를 합니다. 연출자는 무대 뒤에 숨어 있고, 지휘자가 진행을 총괄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문득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양쪽 다 노래와 연기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뮤지컬을 오페라의 현대판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의 기원이라 불리는 오페라 <거지들의 오페라>는 헨델의 오페라를 풍자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오페라의 성공 이후 헨델의 오페라는 좋은 시절을 마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둘다 종합예술이지만 오페라는 음악으로 취급되고, 뮤지컬은 연극 쪽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5월 말에 같은 장소에서 뮤지컬 <대장금>이 공연됩니다. 한 무대가 오페라 무대로, 뮤지컬 무대로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리날도>에서는 마이크 설치 없이 성악과 연주가 이루어졌는데, 뮤지컬에서는 개인용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시시한' 발견입니다.

"오페라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예술 중에서 음악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오페라를 음악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오페라에서 음악은 그 어떤 다른 예술보다도 '극의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페라에서는 '대사'를 노래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페라에서의 음악은 그보다 좀더 근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 사건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까지 알려줍니다… 말하자면, 극 진행의 '의미'를 음악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작품의 의미, 그 작품이 바로 그 작품이게 하는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음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 됩니다."
-<청바지 입은 오페라> 중에서.


<청바지 입은 오페라>를 쓰신 오페라 연출가 고 문호근 님은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을 맡아 오페라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등 오페라 활성화에 헌신하다 2001년에 세상을 뜨신 분입니다. 제가 처음 들르는 이곳 오페라하우스가 이분의 일터였던 것입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오페라 문외한들을 위해 정말 자상하게 '초보자들의 물음표'를 마음껏 대신 던져주면서 오페라 세계의 문을 열어줍니다.

1997년이 오페라 탄생 400주년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탄생 410주년이 되는 해군요. 그는 또 이럽니다. "오페라는 옛 작품을 오늘의 가수들이 오늘의 극장에서 재현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을 통해 만나는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그 가수, 그 지휘자가 옛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까! 그 감동을 어떻게 전해줄까?" 그러니까 과거를 다시 만나고,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이군요.

또다른 책이 문외한을 위로합니다.

"오페라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온갖 사연들이 다 들어있다.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삶의 단편들을 발견해내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카타르시스다. 시대가 변해도 인생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서 공연되는 오페라가 전달하고자 하는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 느껴진다면 어려운 용어와 대가들의 이름은 몰라도 된다."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중에서.


위 두 저자 다 연극을 하다가 오페라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 깊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오페라가 그렇게 유혹적인가요?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사진은 <리날도> 공연을 주최한 '한국오페라단'의 허락을 받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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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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