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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게브 키부츠 풍경
ⓒ 이승철
"저 언덕 보이시죠? 바로 그 유명한 골란고원입니다. 오늘 밤 혹시 대포알이 날아오지 않을지 몰러?"

이날 밤 묵을 숙소인 엔게브 키부츠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고 있는 초저녁이었다. 키부츠 본관 앞마당에 도착하니 검게 우뚝 솟은 뒷산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가까운 곳에 검은 모습으로 길게 들어 누워 있는 산언덕이 바로 골란고원이라는 것이었다. 골란고원은 바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전략적 요충지로 서로 이해가 엇갈려 아직도 반환문제가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한 번 보세요? 저 위에서 이쪽으로 대포를 쏘아 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저 골란고원을 시리아에 돌려주면 40억 달러를 주겠다고 하는 데도 이스라엘은 요지부동이라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정말 그럴 것도 같았다. 지난 1967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상당한 희생을 치르며 어렵게 골란고원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생명줄인 갈릴리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골란고원은 이스라엘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점령지들은 대부분 돌려주었지만 골란고원만큼은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 엔게브 키부츠 근처의 갈대꽃과 푸른 풀밭이 보이는 풍경
ⓒ 이승철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주무셔도 됩니다. 지금은 저 언덕 위에 이스라엘의 진지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쪽으로 포탄이 날아올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가이드 서 선생은 농담으로 한 말 때문에 혹시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설칠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웃으면서 안심을 시켰다. 우선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배정된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입구 쪽에 2층짜리 커다란 건물이 있어서 숙소가 그쪽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숙소로 배정된 것은 작은 오두막집들이었다. 모두 여행용 가방을 끌고 넓은 키부츠 통로를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산책로를 겸한 통로 주변은 고운 잔디가 깔려 있었으며 오두막집 주변에는 빨간 이스라엘 무궁화 꽃도 피어 있었다. 우뚝우뚝 커다랗게 서 있는 나무들은 야자수 나무들이었다.

하나둘씩 지정된 숙소로 찾아 들어가다 보니 우리 둘만 남는다. 우리들의 숙소가 맨 끝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숙소도 역시 방갈로 형태의 오두막집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는 응접실 겸 부엌이다. 부엌에는 간단한 취사도구가 갖춰져 있었다.

▲ 엔게브 키부츠 본관 건물
ⓒ 이승철
우선 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판 위에 올려놓고 잠자리를 보기로 했다. 부엌 겸 응접실은 작은 식탁이 놓여 있고 응접용 장의자와 작은 의자 두 개가 고작이었지만 아담하고 정갈한 모습이었다.

그 옆의 큰 방에는 2인용 침대 두 개가 역시 정갈하고 가지런하게 놓여 있고, 출입문 옆에는 화장실 겸 샤워실이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방에는 구석에 어린이용 2층 침대와 함께 1인용 침대가 또 하나 놓여 있었다. 일가족 다섯 명이 함께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였다.

"자! 이쪽으로 모이세요. 오늘밤 임시 반상회가 있겠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일행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밖으로 나가니 가까운 곳에 있는 오두막집을 숙소로 사용할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모처럼 정감 있는 호숫가의 방갈로에 들었으니 커피나 한 잔씩 같이 하자고 일행들을 부른 것이다.

숙소의 주방에는 몇 가지의 차 종류가 갖춰져 있었지만 커피는 없었다. 마침 집에서 가지고 간 커피가 많았던 일행이 커피를 한 잔씩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 커피도 우리 것이 제일 맛이 좋구먼."

우리 커피가 어디 있겠는가. 모두 수입품인 걸, 가공만 우리가 했을 뿐인데도 1인분씩 담긴 l회용 커피에 입맛이 길들여진 때문인지 그 커피가 제일 맛이 좋은 것이다.

▲ 키부츠 옆 호숫가 풍경
ⓒ 이승철
모인 사람들이 십여 명이 넘자 방안이 비좁고 답답해진다.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밤공기도 춥지 않고 시원하던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모두 커피 컵을 하나씩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가로등 불빛이 밝혀져 있고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비치는 불빛 때문에 바깥도 어둡지가 않았다.

누군가 앞장을 서자 하나 둘 발걸음을 옮겨 간곳은 호숫가였다. 키부츠 오두막집 안쪽 바로 옆이 갈릴리 호수였던 것이다. 호숫가로 나서자 검은 물빛이 역시 구름이 낀 검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역시 검은 선으로 드리운 호수변의 풍경도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저기 저 호수 건너편 불빛이 밝은 곳은 어디죠?"

정말 어두운 검은 물빛의 호수 건너편에 밝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저곳이 아마 티베리아일 것입니다. 낮에 우리들이 놀잇배를 탔던 작은 도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낮에 놀잇배를 타고 내린 뒤에 몇 개의 교회를 관광한 후 호수를 반 바퀴나 돌아 반대편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호수가 참 크긴 크네요. 그래서 성경에는 바다라고 표기된 곳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엔 이렇게 큰 호수가 없잖아요?"

▲ 키부츠 관리동 앞 풍경
ⓒ 이승철
정말 바다처럼 크고 넓은 호수다. 이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가장 초기에 사용된 이름은 긴네렛이다. 긴네렛이라는 말은 악기 중의 하나인 하프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 호수의 북서쪽 해안에 있는 텔 엘 오레이메(Tel el Oreimeh) 지역의 모양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긴네렛이라는 명칭은 성읍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후에 호수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다가 마카베오와 신약시대에 이 호수는 게네사렛이라고 불리었다. 이 당시 긴네렛 성읍과 평야가 게네사렛으로 불린 것으로 봐서 호수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세기에는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은 헤롯안티파스가 세운 도시인 디베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디베랴 바다라는 이름은 지금도 아랍 이름 속에 남아 있어서 그들은 지금도 이 호수를 타바리예(Tabatiyeh)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호수의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역시 갈릴리인데 이 갈릴리라는 말은 이 호수 서쪽에 있는 지방의 옛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갈릴리라는 말은 '원' 또는 '주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의미는 갈릴리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오두막집 같은 키부츠 숙소 풍경
ⓒ 이승철
갈릴리 호수는 갈릴리 지역 사람들의 삶과 활동의 중심지였다. 갈릴리 지역의 가장 많은 도로들이 갈릴리 호수를 향해서 뻗어 있거나 갈릴리 호수 주변으로 통해 있었다. 갈릴리 호수 동편에는 절벽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거의 통행하지 않았고, 동쪽으로부터 오는 여행자들은 갈릴리 호수 위쪽이나 아래쪽에 있는 요단 계곡을 건너서 이 호수의 북쪽과 서쪽 해안으로 갔다.

이 갈릴리 호수를 수십 년간 탐사한 한 고고학자는 이 호수 주변에 무려 16개의 항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호수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왕래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는 그 삶의 원천이 되는 것은 물이다. 그런데 사막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크고 넓고 깊은 이 갈릴리 호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리라.

"날씨가 맑았더라면 밤하늘의 별빛이 정말 끝내줬을 텐데…."

누군가 아쉬운 듯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어두운 밤하늘에 한 떼의 물새들이 나타났다. 길게 꼬리를 끌며 나르던 물새 떼들은 어느 순간 호수 한 가운데로 내려앉았다. 하늘이 점점 더 짙은 구름에 휩싸이며 호수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 저 뒤에 보이는 언덕이 골란고원으로 이어져 있다.
ⓒ 이승철
일행들이 하나 둘 흩어져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각방을 쓰기로 합시다. 방이 두 개나 되는데 별거 한 번 해보죠 뭐."

나보다 세 살이 많은 룸메이트와는 여행기간 내내 한 방에서 옆 침대를 쓰며 지내왔었다. 화장실이나 욕실을 이용할 때도 항상 겸손하게 양보를 하는. 한 마디로 매너가 좋은 사람이다.

며칠 동안 한 방에서 기거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정도 많이 든 일행이다. 그러나 이곳 키부츠의 오두막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방이 두 개나 있는데 굳이 한 방을 쓰는 것보다 각자의 방에서 자는 것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 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창문 밖의 가로등 불빛이 방안까지 비춰들고 있어서 커튼을 내렸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깨었다. 창문과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 때문이었다.

세차게 퍼붓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또 다시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또 다시 잠이 깨었다. 이번에는 요란한 바람소리와 철썩이는 파도소리 때문이었다. 커튼사이로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 갈대꽃이 피어 있는 키부츠 옆 호숫가 풍경
ⓒ 이승철
신발을 찾아 신고 문밖으로 나섰다.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교교하다. 호숫가로 나서자 달빛을 받아 하얀 포말을 일으켜 반짝이며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이 꿈결인양 아련하다. 모래톱을 할퀴며 부서지는 파도가 쉴 사이 없이 이어지는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으스스 한기를 느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웠지만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골란고원 위에서 혹시 대포알이 날아 올까봐 잠을 못 이룬 것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에서 불어보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벌써 아침이다. 호숫가에는 일찍 잠이 깬 일행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밝은 아침에 보는 키부츠 형 휴양소는 조용한 정적에 싸여 있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키부츠는 집단농장인 줄 알았는데 이건 호텔인지 휴양소인지 이런 것도 다 있네요?"

정말 그랬다. 원래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공동경영체인 집단농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에 농업뿐만 아니라 식품가공이나 기계부품제조 등의 경공업을 포함하는 키부츠도 많이 생겼다.

주로 대추야자 같은 과일농장을 위주로 하는 집단농장도 기존농지의 집단화가 아니라 사막을 개발한 계획적인 입식사업(入植事業)인 점과 철저한 자치조직에 기초를 둔 생활공동체이기도 한 점이 이스라엘 키부츠의 특색이었다.

▲ 어둠이 내리는 키부츠 풍경
ⓒ 이승철
키부츠는 1909년 유대인들의 정신적 중심 사상인 시오니즘운동 중에 최초의 집단농장인 키부츠가 탄생했다. 그 후 성공적인 운영으로 약 230개가 넘는 키부츠가 생겨 그 구성원만 8만 명을 넘어선 적도 있었다. 키부츠 집단농장은 한때 전체 농업인구의 약 17%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1개의 키부츠 구성원은 60∼2000명으로 일정하지 않다.

키부츠 구성원은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토지는 국유이고 생산 및 생활용품은 공동소유다. 구성원의 모든 수입은 키부츠에 귀속된다. 키부츠의 재정에 의해서 부부 단위로 생활공간이 할당되는데, 식사도 공동식당에서 조리하고 제공된다. 의류는 계획적인 공동구입과 평등한 배포 등의 관리로 이루어지는 사회주의 생활체제다.

아이들도 18세까지 부모와는 별개의 집단생활을 하며 자라게 되는데 자치적으로 결정된 방침에 따라서 집단 교육을 받는다. 항상 주변의 아랍제국과의 긴장관계 때문에 민병대적인 군사적 체제를 갖춘 것도 이들만이 갖는 특이한 형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 많은 키부츠들이 사유화되고 있어서 초기 공동생산과 판매, 그리고 공유재산의 형태는 겨우 일부 키부츠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시오니즘으로 뭉쳤던 이스라엘의 사회주의적인 생활형태도 인간의 기본욕구인 사유재산재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이 엔게브 키부츠는 아주 특별한 공동체네요?"

그런 셈이었다. 농업이나 제조업 중심의 일반적인 키부츠가 아닌 철저한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휴양소와 호텔 방갈로 형 키브츠로서 이 엔게브 키부츠는 아주 성공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한다.

▲ 파도가 밀려오는 호숫가 풍경, 저 파도소리에 잠을 설쳤다.
ⓒ 이승철
성수기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 키부츠의 입지적 조건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수준이나 운영도 매우 잘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늘 아침은 아마 맛있고 달콤한 과일이 푸짐하게 나올 것입니다."

전에 한 번 왔었다는 일행이 자신 있게 말했다. 모두들 모처럼 이곳 특유의 당도 높은 과일을 기대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침 식탁의 과일은 겨우 포도 알 몇 개와 바나나와 오렌지 몇 쪽의 아주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엔게브 키부츠, #골란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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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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