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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청소년축제-차가 없는 거리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
순천청소년축제-차가 없는 거리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벽돌 한 장을 뛰어 넘는 일이 쉽지 않은 듯 몇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여 하늘을 날고 있는 아이.
순천청소년축제-벽돌 한 장을 뛰어 넘는 일이 쉽지 않은 듯 몇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여 하늘을 날고 있는 아이. ⓒ 안준철
고등학교 시절, 나는 되지도 않은 문학나부랭이를 한다고 밤거리를 자주 배회하곤 했었다. 시상이 떠오르거나 떠오르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로 말이다. 그때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나는 그 노래의 첫 소절만을 반복해서 불러대곤 했었다. 이유는? 그 노래가 영어로 된 노래였고, 첫 소절밖에는 가사를 알지 못한 탓이었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젊음이란 무엇인가? 한 순간의 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곡 '캐퓰렛가의 축제' 첫 소절이다. 당시 나와 동갑내기인 로미오는 첫눈에 반해버린 로잘린이라는 한 여성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원수 집안의 잔치에 잠입해 들어갔다가 줄리엣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가면을 쓰고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대사를 읊어대며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한 미소년이 무대로 나와 이 노래를 부른다.

순천청소년축제-차가 다니던 거리에 농구대가 세워지다니!
순천청소년축제-차가 다니던 거리에 농구대가 세워지다니!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청소년들이 거리를 접수하다
순천청소년축제-청소년들이 거리를 접수하다 ⓒ 안준철
지난 토요일(19일) 오후, 나는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순천 청소년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와 동천을 거닐면서 오랜만에 그 노래를 읊조려 보았다. 고교 시절에는 가사의 뜻도 모르고 첫 소절만을 반복해서 불렀지만 지금은 영어교사가 된 덕에 가사의 뜻을 음미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아, 젊음이란 무엇인가? 한 순간의 불이지.

집에서 축제가 열리는 도심까지는 걸어서 40여분이 걸렸다. 평소에도 아내와 함께 자주 거닐던 동천을 지나 시내로 접어들자 이미 잔치가 시작된 듯 멀리서 구성진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몸이 반응하자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10분이 채 못 되어 청소년들이 접수한 차 없는 도심의 거리에 닿았다.

순천청소년축제-길 양편에 설치된 동아리 부스와 시민들
순천청소년축제-길 양편에 설치된 동아리 부스와 시민들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어른에게 풀잎공예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
순천청소년축제-어른에게 풀잎공예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 ⓒ 안준철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농구대였다. 차가 다니던 거리에 농구대가 세워지다니! 내 눈에 그것은 하나의 작은 혁명이었다. 세 쌍의 농구대가 설치된 도심의 거리는 한 순간의 불이 아닌, 영원한 젊음으로 물결쳤다. 젊은이들을 밀실이나 거리의 뒷골목이 아닌 광장으로 나와 뛰놀게 한 것은 얼마나 잘 한 일인가.

두 줄의 노란 선이 그려진 차도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줄넘기의 한쪽은 어른이 잡고 한쪽은 아이가 잡고 있다.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애를 쓰며 줄을 돌리기 시작하자 줄 안으로 들어온 여남은 명의 아이들도 서로 호흡을 맞추어 두 발을 폴짝 걷어 올린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한 번, 두 번, 세 번.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신나게 노는 것은 아이들인데 왜 내 가슴이 이리도 뛰는 걸까?

순천청소년축제-축제 도우미 학생들의 아름다운 봉사
순천청소년축제-축제 도우미 학생들의 아름다운 봉사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무대에서 끼를 발산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관객들
순천청소년축제-무대에서 끼를 발산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관객들 ⓒ 안준철
지난 1999년부터 순천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해 온 순천청소년축제가 올해로 9회 째를 맞이하고 있다. '도시 동화 - 바람 기대 그리고 마주이야기'란 슬로건을 내건 2007년 청소년들의 잔치에는 여느 해와는 달리 어른들도 많이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도시 동화라니? 도시를 동화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말일까? 그곳에서 만난 축제 관계자의 말로는 그런 뜻 외에도 거리 축제를 통해 세대간, 계층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문화가 넘치는 정겨운 순천을 만드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동화되어 가자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주이야기'란 또 무엇일까?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과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거는 기대, 그 둘을 조화시키려면 마주해서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야 하리라 봅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한 곳을 함께 보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될 때 도시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바뀔 수 있겠지요. 순천청소년축제에서 그 동화를 읽어주고 함께 듣는 소중한 경험들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순천청소년축제 홈페이지(http://www.teenfestival.com)에 접속하면 이런 문구와 함께 2007년 한 해 동안 진행될 자세한 축제 일정을 알 수 있다.

순천청소년축제-'도시 동화 - 바람 기대, 그리고 마주이야기
순천청소년축제-'도시 동화 - 바람 기대, 그리고 마주이야기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어른과 아이, 시민과 학생, 내국인과 외국인이 축제로 하나가 되었다.
순천청소년축제-어른과 아이, 시민과 학생, 내국인과 외국인이 축제로 하나가 되었다. ⓒ 안준철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순천청소년축제는 하룻밤의 잔치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어른들이 깔아놓은 멍석에서 춤을 추며 노는 수동적이고 소비적인 놀이문화는 더욱 아니다. 축제의 기획과 진행과 평가의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청소년들의 올곧은 마음과 손길로 빚어진다.

그런 까닭에 청소년들만의 순수한 잔치에 어른들이 끼어들어 혹여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까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청소년들과 기성세대가 마주보며 삶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일일 터이다. 순천청소년축제가 더욱 발전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순천청소년축제#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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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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