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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어버이 날, 시어머니에게도, 친정엄마에게도,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1년에 단 하루 있는 어버이 날마저도 선물 하나, 용돈 한 푼, 드리지 못한 아픈 마음이란 자갈 밭에 넘어져 깨져버린 무릎팍 같았습니다.

둘이서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해도 늘 허덕거리는 살림살이인데 나의 부업일마저 뚝 끊어져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들어오니 매달 생활비는 큰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구멍난 생활비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 벌써 몇 달 째입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생활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두 아이의 학원을 끊기로 했습니다. 한창 뒷바라지가 필요한 중3과 고2의 두 딸인데, 학원마저 끊어버렸으니 앞으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지요.

삶이 힘겨워지니 의욕도 점점 없어지고 집안 청소도 등한시 되고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기억은 깜빡거리는 신호등처럼 자꾸만 깜빡 깜빡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어버이날도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적당히 전화 인사로 얼버무린 터였습니다.

그 이틀 후인 아버지 제사에도 조기 한마리 살 돈조차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왜 그리도 마음이 불편하고 죄스러운지…. 그러던 며칠 후, 외출을 나갔는데 백화점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화장품을 싸게 팔고 있었습니다. 12만원에 팔던 여성용 기초화장품 3종 세트를 한정판매로 10개만 만원에 판다고, 집는 사람이 임자라며 테이블 위에 우르르 내려놓는데 결사적으로 밀치고 들어가 한 세트를 사수해 만원에 샀습니다.

그리고 옆에서는 옷을 팔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입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윗저고리를 세일가로 만원에 판다고 했습니다. 옷을 꼼꼼히 살펴보니 원단도 좋고 모서리 부분에 덧단을 댄 바느질도 꼼꼼하고 디자인도 나염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옆에서 입어보는 할머니들의 맵시가 한결 같이 예뻐서 시어머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원해 보이는 파르스름한 빛깔로 하나 샀습니다. 화장품은 친정 엄마에게 드리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과 아이들이 정말 좋은 제품을 싸게 잘 샀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남편의 비번 날, 제가 미처 하지 못한 집안 일을 도와주는 남편에게 은행 심부름과 함께 곱게 포장한 화장품을 우체국에 가서 친정 엄마에게 보내고, 옷과 미리 사놓은 일회용 커피 한 박스는 시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후 시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얘! 돈도 없는데 이런 거는 뭣 하러 샀니? 안 보내도 괜찮은디…."
"어머니 옷은 몸에 맞으세요?"
"옷이야 몸에 꼭 맞고 좋다 색깔도 곱고…. 어디서 이렇게 좋은 것을 샀니? 늙은이는 이렇게 환한 색(색깔)을 입어야 햐. 안 사도 되는디…. 커피도 노인정에 가져 가서 잘 먹겄다. 안 그래도 내가 하나 사 갈라고 했는디. 고맙다."

돈도 없는데 뭣하러 샀냐고 하시는 어머님은 옷이 퍽 마음에 드셨는지 목소리에서는 이미 꽃향기가 나고 있었습니다. 이러면 되는 것을. 이렇게 작은 돈으로도 어머님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데, 무슨 거창한 선물을 하지 못해 며칠을 끙끙 앓았는지….

나와 내 남편에게 피와 살을 나눠주신 어머니인데 개도 안 물어 갈 그깟 돈 몇 푼으로 갈등했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 몇 만원 때문에 나아질 내 형편도 아닌데….

부모님은 결코 큰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하시고 내 아들이, 내딸이, 또한 내 며느리가, 내 사위가 이런 것을 해 왔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어깨를 활짝 펼 수 있는데….

그제서야 어머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버이날 노인정에 나오는 어떤 할머니의 아들이 노인정에 계시는 분들을 모두 모시고 가 냉면을 사 드렸다고. 내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꼭 얇은 봉투라도 쥐어드리고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내일쯤 화장품을 받은 친정엄마도 분명 사과꽃 같은 향기로 전화를 하실 겁니다. 겨우 만원짜리 화장품을 받아 들고서….

덧붙이는 글 | 라디오에도 보낼 생각입니다.


#어버이날#마이너스 통장#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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