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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두 번째 시집 '그리운 사랑의 변주'
아버지의 두 번째 시집 '그리운 사랑의 변주' ⓒ 구은희
'황진이 애인'은 아버지의 고등학교 은사님의 그 시절 별명이었다고 한다. 국어를 가르치셨던 은사님께서는 국어책에 나온 황진이의 시조를 아주 좋아하셔서 학생들로 하여금 모두 외우게 하셨고, 황진이와의 사랑에 빠진 모습이셔서 학생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하셨다.

다른 전문직을 갖고 계시면서도 환갑이 다 되어서까지도 시인의 꿈을 버리지 못 하시고 결국에는 등단도 하시고 두 권의 시집도 내 시인이 되신 데에는 아마도 그 은사님의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학창 시절에도 유난히 선생님을 따르셨던 아버지께서10여 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회를 통해서 다시 그 은사님을 뵙게 되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부자 간보다도 살갑게 지내신다. 누가 들으면 애인하고 통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버지와 은사님 간의 통화는 다정하다. 거의 매일 하루를 거르지 않으시고 아침, 저녁 문안 전화를 드리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5시간의 운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뵙곤 하신다.

10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나셔서 필자가 어릴 때 아버님을 여의신 탓인지 유난히 어르신들 공경하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버지신지라 동네 경로당 어르신들이나 교회 어르신들을 섬기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곤 한다.

사실, 당신도 이제 노인이신데, 매년 어버이날 행해지는 효도관광에서는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 드리시는 엔터테이너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 덕분에 나라에서 주는 '국민상'을 받기도 하셨고 서울시에서 수여하는 '선한 시민상'을 받기도 하셨다.

그러한 아버지 성격 상 어쩌면 친아버지 같은 선생님을 따르고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두 분은 성까지 같으셔서 정말 부자 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아버지는 1년에 한 번은 꼭 은사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시곤 하시는데, 한 번은 제주도에 두 분이 가셨을 때 관광버스에 나란히 앉아계신 두 분을 보시고 관광안내원이 "두 분은 부자간에 참 좋아보이시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씀이 좋으셨던지 돌아오셔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의 스승님에 대한 사랑은 때로는 어머니나 자식인 우리들까지도 섭섭하게 할 지경이다. 몇 년 전 막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는데, 아버지는 은사님께서 멀리서 오셔서 우리 집에서 묵으셔야 하므로 우리더러 호텔에 가서 자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타국에 살던 딸이 친정집에 갔는데 집에서 자지 말고 호텔에 가라고 하시는 말씀에 은사님이 우리보다 더 대단하시냐고 묻고 싶었다.

아버지의 순수하신 모습
아버지의 순수하신 모습 ⓒ 구은희
그러한 아버님의 은사님 모시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친정집에는 옥상 정원으로 통하는 작은 다락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시상도 떠올리시고, 음악도 들으시면서 때로는 노래방 기계를 이용해서 맘껏 노래도 부르시는 그런 아버지만의 공간이다. 그 방에 가면 온통 시를 쓰시기 위한 메모들과 은사님과 아버지께서 찍으신 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아버지는 은사님과 여행을 떠나신다고 하신다. 95세 은사님께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존경받는 스승님으로 함께 계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스승님을 만난 아버지는 행복한 분임이 틀림없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스승님이 있어서 내년이 칠순이신 아버지께서도 항상 제자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응모글.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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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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