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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사면을 절개한 도로가 30여km 이어지고, 이 길은 MTB 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경사면을 절개한 도로가 30여km 이어지고, 이 길은 MTB 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 이덕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로 구룡령이 높다 하나, 고도 1천m를 넘나들며 달리는 임간도로가 있다. 그것도 30km 정도를….

지도에서 정선군 신동, 사북, 고한을 잇는 38번도로 아랫쪽을 보면, 함백에서 질운산(1172), 두위봉(1466), 화절령, 백운산(1426), 강원랜드의 남쪽 사면(斜面)으로 노란색 비포장도로가 꼬불꼬불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함백, 백운, 사북, 인동, 대유 등 탄광에서 석탄을 나르던 산업도로인데 탄광이 폐쇄되고는 임도로 변한 곳이다.

지도를 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점이 찍혀 있는 부분.
지도를 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점이 찍혀 있는 부분. ⓒ 이덕은
'거기 뭐 하러 가요?'라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산속 도로를 가보았자 수풀에 가려 간간이 내려다보이는 경치밖에 더 있겠는가? 더군다나 일기가 불순하여 비라도 만나면 그야말로 신경이 곤두서는 곳인데…

분주령으로 간다는 후배 가족과 신동읍 예미리에서 아침으로 곤드레밥을 먹고 헤어져 함백쪽으로 들어가다 엽기소나무 팻말이 서있는 곳에서 거의 역방향으로 꼬불어져 산쪽으로 오른다. 얼마 올라오지 않은 듯싶은 데도 벌써 저 아래로 꼬불꼬불 기찻길과 오밀조밀 마을이 그림지도처럼 보인다. 길섶에는 아직도 벚꽃이 피어있고 간간이 진달래가 자리하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소나무. 이렇게 채소밭에 한두 그루 남겨두어 쉴 때 그늘을 이용한다.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소나무. 이렇게 채소밭에 한두 그루 남겨두어 쉴 때 그늘을 이용한다. ⓒ 이덕은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펼쳐지는 채소밭. 지난 봄풍경과 어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눈덮였던 황량한 분지는 트랙터로 갈아지고 비닐로 덮여서 기하학적 무늬를 연출하고, 그 무늬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같은 건너편 산과 산 아래 마을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모종을 심고 있다.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흙은 온통 푸른 작물로 가득 채워져 또 다른 장관을 보여줄 것이다.

분지는 온통 농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두위봉이나 화절령으로 가는 길을 쉽게 알 수 없다. 내 앞으로 포클레인에 주유하기 위해 올라가던 기름차 기사에게 물었더니 여기서 말로 해서 알 수 없다며 초입까지 가리켜 줄 테니 따라오라 한다.

기사가 가리켜 준 대로 안테나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니 길은 또 갈림길이다. 경운기를 몰고 오는 노인장께 물으니 화절령은 알지 못하고 사북을 물으니 그제야 자세히 가르쳐 주는데, 여유가 없는 바쁜 삶으로 관심사가 자기 주변으로 한정되는 것은 서울사람이나 이곳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제부터 분지는 없어지고 경사면을 따라 조성된 산길을 따라간다. 한쪽은 산기슭이고 다른 한쪽은 벼랑이지만 탄광도로로 사용하던 길이라 다행히 노폭과 도로면이 너무나 양호해서 주행에 불편은 없으나 비포장 타는 재미가 줄어들어 섭섭하다.

비록 800에서 1천m 남짓한 고도를 오르내리는 산길이라고는 하나, 길에서는 산봉우리 모습을 보기 어렵고 간혹 보인다 하더라도 도봉산이나 북한산처럼 수락석출(水落石出)한 지형이 아니라 빼어난 경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만한 길에 인적이 없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며 넓게 펼쳐진 산아래 경치와 건너편 산, 구름을 감상하는 느긋한 기분은 이곳이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길섶 경치는 그리 오밀조밀하지 않지만 이렇게 건너보면서 이 도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길섶 경치는 그리 오밀조밀하지 않지만 이렇게 건너보면서 이 도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 이덕은
이곳에 오며 폐광이라도 하나 만나 옛 흔적을 한번 더듬어 보고 싶었으나 지도에 나타나 있는 탄광들은 어디로 숨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임도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 대개 하나로 계속 나있거나 사잇길이 있어도 길폭이나 차량흔적을 보면 목적하는 곳으로 대개 갈 수 있지만, 여러 곳에 산재한 탄광에서 탄을 운반할 목적으로 만든 이 도로는 갈림길이 많아 다소 헤맬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길폭이 넓으니 잘못 들어가도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걱정이 없고, 정 길을 못 찾겠으면 오른쪽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오면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를 거쳐 31번 도로와 만나게 되어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산속에는 세워놓은 지프차들이 가끔 보이는데 길을 보수하기 위해 인부 몇 명과 함께 올라온 차이거나 나물, 혹은 등산을 하기 위해 올라온 차들인 것 같다. 한번은 왼쪽 길로 접어들고 보니 단곡이나 자미원쪽으로 내려가는 길 같아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부부가 탄 지프차와 만난다.

행선지와 현재 위치를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고 그냥 나물을 뜯으러 올라간다 한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가지 얘기를 주고받고 헤어지지만 부부만 차를 몰고 올라오기엔 상당히 높이 올라온 것 같은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1/10만 지도를 팽개치고 가다가 길이 아니면 되돌아 나오지 하는 '아니면 말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완벽하게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완벽하게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 이덕은
경치 좋은 곳에 차를 잠시 세우고 길가에 앉아 공기(空氣)감으로 푸르스름해진 산과 골짜기 산길을 바라본다. 바람 흘러가는 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만 적막을 깨고 맑게 들려올 뿐 어디서 이렇게 완벽하게 자연 속으로 파묻힐 수 있을까? 비록 도시생활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잠시 무색무취무념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큰 붓으로 거침없이 행서(行書) 획을 그어 내려가듯 남성다운 굵직한 풍경을 보여주는 드라이브 코스는 이제 끝이 나려는지 곰배령 분지가 연상되는 4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에 '크리스탈밸리 4KM'라는 조그마한 화살표 팻말만 하나 있을 뿐 아무런 표지가 없다.

전방 산등성이로 리프트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강원랜드가 저 언덕 너머 있는 것 같은데 지도상으로도 만항재는 직진이다. 마침 내려오는 지프차 하나 있어 만항재 가는 길을 물어보니 자기도 넘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길이 맞을 것이라 한다.

곰배령이 연상되는 4거리 갈림길. 만항재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곰배령이 연상되는 4거리 갈림길. 만항재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 이덕은
모퉁이를 도니 아래쪽에 못이 보인다. 내려가 보니 탄광폐수 정화조인데 못으로 갱도에 고인 폐수가 흘러들게 하여 정화(淨化)식물들에 의해 깨끗해진 물을 흘려 내보내는 구조인데 식물 양을 볼 때 도무지 정화될 것 같지 않다.

길은 강원랜드 옆으로 내려간다. 휴식을 위한 공간임에도 하나는 인간의 손길이 묻지 않은 곳이고 다른 하나는 첨단 시설과 편의시설이 집약된 곳이 이렇게 붙어있다. 속마음을 내주지 않는 미인이 있어도 남 주기는 아깝다는 것처럼 곁에 꼭 붙잡고 앉아 있다. 그러는 나도 아쉽지만 미인을 남겨두고 세상 속으로 돌아온다.

폐광에 이렇게 제방을 쌓고 그 위에 정화지(못)을 만들어 폐광 침출수를 정화하고 산림을 복구하고 있다.
폐광에 이렇게 제방을 쌓고 그 위에 정화지(못)을 만들어 폐광 침출수를 정화하고 산림을 복구하고 있다. ⓒ 이덕은

더 많은 사진보기
http://yonseidc.com/2007/doowe_01.html

덧붙이는 글 | 저의 홈피 닥다리즈 포토갤러리(http://yonseidc.com/index_2007.htm)에도 실렸습니다.

5월 5일 촬영 사진입니다.


#두위봉#질운산#백운산#오프로드#임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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