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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방송통신대 학생입니다. 그래서 서울 대학로에 있는 본교에 자주 갑니다. 이곳의 중앙도서관 옥상은 쉼터 같은 곳입니다. 4층 전체의 3분의 2 정도는 열람실이고 3분의 1은 노천 옥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4층 높이밖에 안되지만, 그 키에 버금가는 느티나무가 건물 바로 앞에서 지금 잎을 왕성하게 내고 있고, 노을이 질 때는 지는 해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당연히 금연 건물이지만 이곳 옥상에서만큼은 공부하고 나서의 여독을 애꿎은 담배로 푸는 자유가 허락됩니다.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여러 연령대의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스트레칭도 합니다.

저는 담배를 피워 보았지만 멀리 한 지 오래되어서 이런 모습이 싫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다만 외로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요즘 흡연자들의 억울한(?) 인상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자주 이곳에 올라와 건물 앞의 느티나무를 유심히 살펴보고 가끔 키 재기도 합니다. 그리고 뒤쪽의 낙산의 산동네를 봅니다. 그런데 이 낙산 아래 또 하나의 4층짜리 흰색 건물이 있습니다. 옥상에서 100여 미터 저 너머에 있는 이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전에 소개한 '정미소' 건물입니다(제 기사 '폐허 속에 꽃씨를 심고' 참고).

가끔 저녁에 이곳을 보게 되면 3층 창으로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곤 합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월간 <객석>을 만들어내는 편집부가 있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식사를 하고 가끔 이 '정미소' 건물까지 산책하기도 합니다. 건물 밖에는, 이 건물 안에 있는 1층 공연장 '정미소'와 2층 갤러리 '정미소'의 현황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바뀌어 있곤 합니다. 이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1층의 돋을새김 대형 창문 앞에 있는 파라솔도 카페의 연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 3층은 제가 가볼 수 없는, 가볼 연유가 없는 곳입니다. 사실 잡지를 만들어내는 곳의 모습이 궁금하지만요.

그 대신 매달 집으로 배달되는 완성품으로서의 모습 <객석>을 받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간 이 3층에서 무슨 수상한(?)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4월에는 이 건물에서 와인파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3월에는 창간 23주년 기념 선물 대잔치 엽서 추천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은 이곳 기자들처럼 발로 뛰는 기자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공연장이 그들이 출장지가 되지요.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관람하고 돌아와서 피곤하지만 즐거운 글쓰기를 하겠지요. 객석의 보통 관람객들이 돈이 아까워서라도 집중해서 음악을, 공연을 느끼려 할 테고 그건 그대로 그들 양식의 거름이 되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 시간에도 '쓸거리'를 만들기 위해 연방 메모를 하겠지요.

미술관 관람을 하고 글을 써본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때 관람할 때의 느낌이나, 현장에서 적은 화가와의 인터뷰 한두 마디가 그렇게 큰 자양분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먼저 느낌 글을 쓰고 그 다음에야 자료를 참고하곤 합니다. 자료를 먼저 참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제 방식이 아닙니다. 상상력은 '무자료'에서 더 큰 열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기자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대부분 악기를 다뤘다든지 하는 음악 관련 공부를 했고, 관련 일을 오래 했고, 그런저런 이력으로 이곳에 몸담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지식을, 지식의 파장을 공연장에서 생생히 확인하며 살 테니까요. 물론 주된 업무 중의 하나인 음악가와의 인터뷰에서도 만남의 긴장을 즐길 것입니다.

그런데 은밀한 일도 일어납니다. 외국 유명 연주자나 음악가와 전화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은 이곳에서 흔한 일입니다. 올해 3월호에는 첼리스트 장한나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시차를 생각해서 전화 거는 시간도 배려하겠지요. '정미소' 건물 3층이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이유에 그 이유도 들어갈 수 있을 듯.

ⓒ 돌꽃컴퍼니
그러나 외국의 공연인 경우 현지 특파원과 통신원의 힘을 빌립니다. 물론 한 달이라는 너른 간격이 있지만 생생한 소식을 담아 음악의 모든 장르가 전 세계 공통언어임을 증명하려 애씁니다.

이곳의 편집장 대우의 위치에 있는 류태형 기자는 개인적으로 KBS 제1 FM의 프로그램 <출발 FM과 함께>에서 '류태형의 출발퀴즈'를 통해 익히 그 낭랑한 목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무척 젊어 보이는군요.

기자가 아니면서 기자보다 더 음악에 몰두하고 풍부한 감성의 글도 이 잡지에 보태는 이도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클래식 매장 '풍월당'의 주인인 박종호 님이 그분입니다. 유럽의 페스티벌을 직접 보고 소개한 그분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제 기사 '철새들도 음악을 듣는지…' 참고).

예전부터 이 잡지를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맛난 기사만 복사하는 '도둑질'을 가끔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사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잡지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 연유는 작년 한 신문의 인터뷰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잡지의 발행인이 연극인 윤석화님인 것은 아시는지.

"사실 힘들었어요. 제가 객석을 인수한 것은 발행인의 꿈이 아니라 이 책이 없어지면 안된다는 예술적 책임감이었어요. 우리나라 유일의 공연예술잡지인데 그냥 없어지게 할 수는 없었거든요. 꼭 5년만 하자, 힘들어도 5년, 좋아도 5년만 하고 떠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2년을 더 하고 있네요. 5년이 지난 다음 그만 하려고 했는데 제가 손 떼면 그냥 없어지겠더라구요. 그래서 2년을 더했는데 한계에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보다 더 객석을 사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했습니다." (<문화일보> 2006년 12월 16일자)

윤석화 님은 매년 3억원씩을 <객석>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쓴 기자의 말대로 '예술잡지는 산업적으로 분명 적자'입니다. 포기하려 한 거죠. 그러다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제일 피곤한 게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황 아니에요? 그러다가 문득 제가 과연 객석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객석에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게 내 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과연 제가 연극에 매달리듯이 객석에 매달렸나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연극 하듯이 목숨을 걸고 운영할 겁니다. 제가 연극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어요. 이제 7년이니 앞으로 3년 목숨 걸고 하면 객석이 분명히 자립할 것입니다." (같은 기사)

▲ auditorium <객석> 2007년 4월호 표지
ⓒ 돌꽃컴퍼니
작년 연말, 그동안 <오마이뉴스> 기사 쓰고서 적립해 둔 원고료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이 잡지를 구독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꼭 있어야 할 잡지라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제 글쓰기에 음악적 감성을 배울 수 있는 공부가 되도록 하자는 또 다른 이유도 컸고요.

그렇게 매달 객석이 집에 배달되어 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로 잘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객석> 읽기를 공부로 여겨서 그런지… 괜히 구독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후회를 단박에 씻어버린 경험을 지난달 했습니다. <객석> 4월호에 실린 한 장의 사진과 편지글 때문입니다.

사진가 조세현이 찍은 윤석화님과 그의 둘째아이의 사진입니다. 둘째아이라고요? 최근에 윤석화 님은 둘째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힘들겠지만 예술이 이 사회에서 나란히 갈 수 있도록 귀한 독자 여러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가겠습니다.", "갓난아이를 다시 품에 안으면서… <객석>의 의미도 더 각별해졌습니다. 예술을 통로로 세상의 경이로움을 탐구하는 삶! 그리하여 긴장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 최선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객석>은 제게 좀 더 의미가 있어졌습니다.

<객석> 표지를 보면 '객석' 밑에, 오히려 이 잡지의 제목으로 자리 잡을 것 같은 'auditorium'이라는 글자가 덧붙여 있습니다. 같은 뜻이지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 된 단어는 아닌 듯싶은 이 영명을 앞세운 것은 음악의 세계성을 고려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잡지 내용의 상당 부분이 외국에서의 공연과 연주자에 대한 기사이니까요.

<객석>은 음악만이 아니라 객석이 있는 곳의 문화를 다 다룹니다. 오페라, 콘서트, 뮤지컬, 연극, 발레, 기행문, 신보 소식 등.

▲ auditorium <객석> 2007년 5월호 표지
ⓒ 돌꽃컴퍼니
이번 5월호에는 타계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제 눈에 도드라지네요. 1989년 12월에 있었던, 독일 통일 기념 음악회 소식을 회상하는 글입니다. 그때 "공연에는 동서독과 분단 책임국인 미국-소련-영국, 프랑스 4개국의 예술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했습니다.

저는 이해 12월 25일에 있었던 연주회 중 4악장 '환희의 송가'('자유'의 송가로 개명하여 불렀음)를 이듬해 12월 25일에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것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듣는데 들을 때마다 흥분합니다. 간혹 다른 이가 지휘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을 듣게 되더라도 이 공연 실황만큼 감흥을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날이 와야 할 텐데요.

이렇게, 처음으로 잡지를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사실 <객석>에 힘을 보태고, 다른 분들도 그래 주시면 하는 소망에서입니다. 물론 여러 후원자나 광고주의 도움을 받고 있겠지만, 매달 나가는 잡지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힘 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문화가 있는데 정착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유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개개인이 '문화를 살' 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돈이 되는 것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책이 간접 경험으로 장려할 일이라면 잡지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도 공연에서만큼은 문화를 잘 살지 못해서 공연장 가는 일이 드물지만, 우선 간접 경험으로부터 직접적인 뉘앙스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매달 배달되는 <객석>을 조금 더 정성껏 읽는 것부터 말입니다. 지금도 '정미소' 3층에서는 다음달을 위해 수상한(?), 많기도 많은 5월 공연을 따라가랴 분주한 작업들을 하고 있겠지요?

덧붙이는 글 | <객석> www.gaeksuk.com


객석 2019.3

객석 편집부 지음, 객석컴퍼니(잡지)(2019)


#객석#윤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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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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