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익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정·관계 로비와 횡령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전 집행부의 회계에서도 로비나 횡령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실회계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의협 회계자료 중 입법정책활동비 명목으로 청구된 비용이 유흥주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 전 회장 재임시 요정과 유흥주점에서 입법정책활동비 등의 예산이 집행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 2005년, 수백만원대 '룸살롱' 지출
문제의 카드전표 3장은 2005년 1~2월 사이에 발행된 것으로 각각 406만원, 285만원, 137만8000원짜리이며 결제 금액 중 봉사료가 각각 200만원, 210만원, 85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업소들은 일반적으로 '룸살롱'이라고 불리는, 여성 종업원이 술시중을 드는 유흥주점인 것으로 확인됐다.
카드로 결제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 의혹이 제기되는 증빙도 발견됐다.
지난해 2월 의협 사무처의 한 부서가 카드결제비용을 청구한 4건의 문서는 '민간보험도입관련 업무협의비'(55만1000원),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업무협의비'(52만원), '단체계약제도 관련 업무협의비'(54만원), '건강보험제도 개선 업무협의비'(54만원) 등 각각 다른 항목으로 청구돼 있다.
이 문서에 증빙으로 첨부된 4개의 카드 영수증은 서울 남대문의 한 문구점이어서 업무에 필요한 문구류 구매 등에 정당하게 쓰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영수증들은 같은 날 각각 1분의 간격을 두고 발행됐다. 사실상 215만1000원을 4번에 나눠 결제한 것.
이런 방법은 '카드깡'에 널리 쓰이는 수법으로 200여만원의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카드깡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검찰, '73억 비자금설'로 의협 수사 확대
2003~2005년도 의협 외부 회계감사 의혹 유형별 분류 | | (단위: 천원) 구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합계 | 간이영수증 | 146,223 | 113,004 | 83,315 | 342,542 | 현금영수증 | 7,865 | 140,025 | 54,791 | 202,681 | 의협영수증 | 473,240 | 302,105 | 270,221 | 1,045,566 | 송금영수증 | 85,779 | 144,770 | 1,089,682 | 1,320,231 | 지출결의서 | 34,306 | - | 280,866 | 315,172 | 법인카드(골프 외) | 75,773 | 184,270 | 162,705 | 422,748 | 법인카드(휴일사용) | 1,786 | 2,703 | 24,405 | 28,894 | 법인카드(유흥) | 60,346 | 164,598 | 243,373 | 468,317 | 개인카드 | 12,430 | 14,855 | 65,081 | 92,366 | 개인카드(휴일사용) | 4,080 | - | 3,265 | 7,345 | 증빙불충분 | 166,459 | 435,155 | 247,188 | 848,802 | 증빙없음 | 300,036 | 431,767 | 526,711 | 1,258,514 | 확인요망(상품권 외) | 85,053 | 297,378 | 500,738 | 883,169 | 거 마 비 | 6,600 | 47,388 | 40,071 | 94,059 | 합계 | 1,459,976 | 2,278,018 | 3,592,412 | 7,330,406 |
| ⓒ 의협 외부회계감사보고서(20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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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장 전 회장의 로비와 횡령 의혹과 더불어 장 전 회장 이전인 2003~2005년에 의협의 회계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했다. 바로 '73억 비자금설'.
'73억 비자금설'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장동익 전 회장의 의뢰로 H회계법인이 2003~2005년도 의사협회 회계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회계가 부실한 73억3040만원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이 감사보고서는 해당기간 동안의 의사협회의 일반적인 회계행태에 대해 "회계상의 정당성에 대한 의혹을 자아내기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각종 증빙자료가 부실로 인해 회계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보고서는 3년간의 의사협회 회계자료 증빙을 검토해 부실회계로 분류되는 건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이 중 지출 증빙이 아예 첨부되지 않은 금액이 12억5814억원, 증빙은 첨부돼 있으나 증거력이 약한 경우로 분류된 것이 8억 4880만원에 이르렀다.
예산을 집행했다고 회계처리는 했으나, 집행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금액이 21억원이 넘는 셈.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때, 주로 소액의 식사비나 물품 구매비 등의 증빙으로 효력을 가지는 현금영수증이나 간이영수증이 고액으로 발행된 건도 다수 발견돼, 이 부분만 5억4522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수증 아예 없거나 부실한 것만 21억
의협 스스로 발행한 영수증이 증빙으로 첨부되기도 했다. 회장이나 임원의 활동비, 국내외 출장여비, 행사지원금 등을 수령자의 사인만 받아 증빙으로 첨부한 금액이 10억4556만원에 달한다.
정상적인 회계처리라면 예산 수령자가 실제로 집행한 영수증을 증빙으로 제출해야하는 부분을 의협관계자인 수령자의 날인만 받고 증빙으로 첨부한 것이다.
송금영수증만으로 증빙을 마친 금액도 13억2023억원에 이른다. 거래한 곳에 현금을 송금했다는 은행 송금증서만 첨부돼 있고, 거래처의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가 빠져 있는 것.
또 의협이 각종 의료 관련 단체 등에 주는 지원금의 경우 지원받은 단체의 영수증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지출결의서만 있고 영수증이 없는 경우가 3억5172억원에 달했다.
영수증 조작이 비교적 어려운 카드 영수증에서도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됐다. 감사보고서에서는 한 백화점에서 지출한 총 2765만원 4장의 카드 영수증이 카드 전표 발행기계가 아닌 손으로 쓰여진 것이 대표적 사례로 지적됐다.
골프장·유흥주점에서 쓴 예산 8억9000
이런 식으로 증빙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 외에도 카드영수증 증빙은 제대로 돼 있으나 사용 목적 때문에 의혹 건으로 분류된 부분이 있다. 바로 골프장 이용과 룸살롱 등 유흥에 사용되거나 휴일날 사용된 법인카드 지출건이다.
골프장 이용에 법인카드가 사용된 것은 4억2274만원으로 집계됐고, 룸살롱 등에서 지출된 부분이 4억6831만원.
의협의 예산이 유흥목적으로 사용됐다는 것도 예산 집행의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부분. 그러나 골프장과 유흥주점에서 각종 로비성 접대가 이뤄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부분이다.
감사보고서는 회계가 부실하게 이뤄진 내용을 지적하고 있지만, 회계 부실을 통해 횡령이나 비자금 형성이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간이영수증, 현금영수증, 의협 자체 영수증으로 고액을 증빙처리하고 각종 지출에 영수증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수십억대에 달한다면 비자금설 혹은 횡령의혹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
"의협 회계, 언제든지 대규모 횡령 터질 수 있어"
이 감사보고서를 검토한 윤종훈 회계사는 "간이영수증, 현금영수증, 자체 영수증 등으로 거액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가짜영수증을 통한 공금 횡령이 가능함을 의미한다"며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의협 회계는 총체적인 관리부실 부분 때문에 대규모 횡령 사건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의협 측은 '일단 검찰의 조사를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원보 의협 감사는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한 감사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도 "검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으니 수사결과를 보고 얘길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