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이 좋아한다고 만들어 얼린 후 곱게 싸 오신 가래떡. 이 다음, 한참 후에라도 가래떡만 보면 눈물이 핑 도는 일이 제발 없었음 좋겠다.
딸이 좋아한다고 만들어 얼린 후 곱게 싸 오신 가래떡. 이 다음, 한참 후에라도 가래떡만 보면 눈물이 핑 도는 일이 제발 없었음 좋겠다. ⓒ 김윤주
'거울 보기가 점점 싫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게 요사이는 얼굴에 잡티가 늘어간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미국생활이 어느새 1년 5개월로 접어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정신 못 차리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3시간 비행기 타고 태평양 건너 딸내미 얼굴 보겠다고 날아오신 우리 엄마.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 나이는 서른여섯 어느 해에서 멈춰버렸는데, 내가 기억하는 엄마 얼굴도 그즈음 어디에서 멈춰버렸는데, 1년 만에 만난 우리 엄마는 엊그제 그 엄마가 아니었다.

내 나이 들어가는 걸 우울해할 줄은 알았어도 내 엄마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은 생각지 않고 지냈었나 보다. 아직도 곱고 여전히 순수하기만 한 엄마지만, 넘치고 넘치던 에너지는 전 같지 않음을 그만 눈치 채 버렸다.

오늘 우리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셨다. 이번엔 두 번째라 좀 낫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지난번보다 눈물은 더 쏟아지고, 아이들은 저녁 내내 외할머니 냄새 나는 베개를 서로 껴안고 자겠다고 칭얼거리는 바람에 결국 바닥에 누워 양팔에 안아 겨우 재웠다.'


작년 겨울, 잠깐 다니러 오셨다가 서울로 돌아가시는 친정 엄마를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끼적이다만 일기다. 엄마가 해다 주신, 얼려 놓은 가래떡을 꺼내들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보니 이 일기를 쓰던 때가 벌써 1년여 전의 일이고, 생각해 보니 엄마 얼굴 뵌 것도 벌써 한참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전화는 물론 화상 대화를 나누며 얼굴을 볼 수도 있게 되었지만 그나마도 낮과 밤이 반대인 시간을 맞추기도 불편하고, 애 둘 키우는 내 일상이 바빠 잊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미국에 와 살게 되면서 하루 세 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새삼 절감하고 있다. 다른 것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내 아이 둘과 남편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하루는 어찌나 짧고 은근히 힘은 또 얼마나 드는지, 동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장보고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인생 다 끝나는 거 아니냐며 웃기도 한다.

물론 쓸만한 한국 식료품점 하나 없는 미국 시골인 탓에 유난히 살림살이가 어설프기도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집안일 자체가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냉장고 문만 열면 좋아하는 과일이 늘 깨끗이 씻어 넣어져 있고, 김치며 밑반찬들 늘 준비되어 있고, 옷장만 열면 가지런히 계절에 맞게 옷가지들이 정리되어 있곤 했던 어린 시절. 그 아늑한 기억들이 엄마의 쉴새 없는 움직임 덕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세월 다 지난 이제야 마음이 뭉클해지곤 한다.

엊그제 전화통화는 유난히 우울했다. 아버지가 전에 없이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오셨다며 가뜩이나 안 좋은 건강 어찌되시기라도 하면 어쩌느냐며 속상해 하시는 엄마 목소리 때문이었다. 세상이 하도 험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험한 생각들이 스치며 지레 걱정이 되곤 한다.

빠듯한 월급으로 자식들 대학 공부까지 시키느라 얼마나 휘청거리셨을 것이며, 다 키워 놓고 돌아보니 머리는 하얗게 새 버리고, 마음같이 몸은 안 따라 주고, 세상은 이제 어딜 가나 나이 든 이들을 달가워하지 않으니, 자식 자랑 하나로 지탱해 오시던 아버지 어깨에 힘이 얼마나 빠져버리셨을지 짐작이 된다.

가까이 살며 보살펴 드려도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이 불안할 터인데 머나먼 남의 나라에 나와 두고 온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큰거리기 일쑤다. 그동안 못되게 굴었던 일들이 슬금슬금 떠오르고 어리석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고 속상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음 같아선 부모님과의 관계조차도 다시 시작해 보고픈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걸…

내 자식 생각하는 것 열에 하나라도 부모님에 대해 생각할 수만 있어도 사람 노릇을 흉내 내며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니 이제 내 곁에 머물러 주실 날도 많지 않다. 그저 하늘 아래 숨 쉬고 계신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되는 부모님께, 유치원생인 내 딸이 내게 하듯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부족한 지금의 내 모습조차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대로 사랑하는 이들이 내 부모님이 아니셨던가. 거창한 형식도, 적당한 시기도 무의미한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그저 사랑한다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만 주시라고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러면 분명 주저리주저리 쏟아내시게 될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어 드려야겠다. 무조건 우리 부모님 편을 들어가면서 말이지.

오늘은 바다 건너 먼 땅에 계신 우리 엄마랑 아부지 얼굴이 정말 보고 싶다.
#어버이날#어머니#효도#자식#수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