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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주차장에서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커다란 물레방아였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특이했다. 잔뜩 그을린 프라이팬, 찌그러진 주전자, 음식 찌꺼기가 달라붙어 있는 냄비와 깡통, 심지어는 고무장화까지도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받이 용기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는 물레방아에 연결되어 있는 철제인간 '터너(Turner)'씨가 펌프의 발판을 밟아서 물은 가느다란 관을 타고 위로 다시 올라가게 되고 물레방아는 계속 돌아가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참으로 재미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아담한 연못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약 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숲의 곳곳에 그리고 연못의 주변에 물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온갖 기발한 기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의 힘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 박스도 있었고 시계추에 거꾸로 매단 플라스틱 병들 속으로 분사되는 물의 압력을 이용해서 작동되는 물시계도 있었다.

ⓒ 정철용
그러나 40여종의 기계장치 중에서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일련의 자전거 시리즈였다. 먼저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폼나게 착용하고 연못 위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뼈대만 앙상한 이 아저씨를 좀 보자. 아니나다를까 안내판을 읽어보니 이 아저씨 이름이 '뼈(Bones)'라고 하는데, 칼라하리 사막을 자전거로 횡단하는데 실패했던 인물이라는, 진위가 아리송한 글이 적혀 있었다.

사막에서는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작은 관을 통하여 바퀴들 위로 뿜어져 나오는 고압 물줄기의 힘으로 하루에 40km를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뼈만 남을 만도 했다.

ⓒ 정철용
두 번째 자전거는 또 다른 작은 연못가에 설치되어 있는 물대포 자전거 두 대였다. 이 자전거들은 관광객들이 실제로 타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손잡이 중앙에 설치된 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딸아이와 함께 자전거 하나씩을 올라 타고 앉아 누가 더 멀리 물대포를 쏘아보내나 시합을 했는데, 엉뚱하게도 코흘리개 어린 시절 공터 담벼락에 누가 더 높이 오줌 줄기를 쏘아 올리나 시합을 하던 생각이 났다.

ⓒ 정철용
움직여도 제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이 자전거들과는 달리, 세 번째 자전거는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자전거여서 자전거가 아니라 비행기 타는 맛이 났다. 시소처럼 양쪽 끝에 달려 있는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으면 그 힘의 세기에 따라 자전거가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것이긴 했어도 허공을 날아가는 자전거를 보고 있자니, 영화 < E.T. >에 나왔던 아름다운 장면이 떠올랐다.

ⓒ 정철용
인공의 놀이기구로만 가득한 복잡한 대개의 놀이공원과는 달리, 자연의 품에 아늑하게 안겨있는 이 소박하고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놀이공원에서 우리는 1시간 30분 동안 동심을 즐겼다. 이곳을 다녀간 미국의 한 관광객이 입구에 놓아 둔 방명록에 남기고 간 소감처럼, 아내와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아이가 되어 몹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도 재밌었지? 그것 봐, 내가 여기 꼭 오자고 그랬잖아."

와이아우 워터웍스를 떠나면서 보란 듯이 뽐내는 딸아이의 말에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드라이빙 크릭 레일웨이에서 꼬마 열차를 타고 계곡 오르기

코로만델 타운의 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 우리는 딸아이가 고른 또다른 놀이공원인 드라이빙 크릭 레일웨이(Driving Creek Railway)로 향했다. 전날에는 신나게 자전거를 탔는데 이번에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산 기슭에 자리잡은 그곳에 도착해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기차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철로를 따라 가파른 계곡을 올라가 전망대까지 갔다 오는 일종의 산악열차 관광이었다.

ⓒ 정철용
그런데 1974년, 2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림지를 사들인 이곳 소유주 배리 브릭켈(Barry Brickell)씨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구입한 산자락 한 구석에 도예공방을 세우고,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점토와 가마용 목재들을 가파른 산골짜기와 정상으로부터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철로를 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역전이 되어서 산악열차 관광이 주사업이 된 것이다.

보통 시즌에는 하루에 두 차례(오전 10시 15분과 오후 2시) 열차가 운영되지만 방학이나 여름 휴가철 등 바쁜 시즌에는 두 번을 더 운영한다(오후 12시 45분과 3시 15분). 이것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허탕을 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해서 10시 15분에 떠나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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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라고는 해도 궤도의 간격이 40~50cm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놀이공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어린이용 꼬마 열차 수준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탄 3량 짜리 꼬마 열차 '뱀(snake)' 호가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열차는 가파른 계곡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정말 뱀처럼 기어 올라갔다. 워낙 가파른 곳은 지그재그로 선로를 놓았기에 고개에 올라설 때마다 열차의 진행 방향을 바꿔 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운전사가 내려서 뒷자리로 옮겨앉는 것이 우스웠다.

ⓒ 정철용
어쨌거나 그렇게 가파른 계곡을 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열차는 도예공방에서 직접 구운 벽돌로 만든 터널도 지나고 계곡 사이를 잇는 철교도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이 짧고 작은 것들이어서,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나 청룡열차를 탈 때와 같은 스릴이나 아찔함은 없었다.

그러나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온통 푸르른 녹색으로 물들었고 비할 데 없이 상쾌한 숲의 바람을 들이마신 우리의 폐는 돛폭처럼 한껏 부풀었다. 전망대까지 이르는 선로의 총연장은 3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였지만, 우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 정철용
꼬마 열차는 출발한 지 25분 정도 지나서 마침내 산중턱에 우뚝 솟아있는 전망대에 닿았다. 아이풀 타워(Eyefull Tower)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은 한눈에 가득 들어오는 장쾌한 모습이었다. 구릉 너머 멀리 보이는 바다의 푸른 색은 희미했지만, 바로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는 울창한 숲의 짙푸른 녹색은 장엄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이 지역의 산과 숲은, 광부들의 금광 채굴과 나뭇꾼들의 산림 벌채 그리고 뒤이은 농부들의 목초지 개발로 90퍼센트가 황폐화 될 정도로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숲을 가꾸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 정철용
이 산림지를 사들인 이후, 예전의 그 푸르고 울창했던 숲을 복원하기 위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뉴질랜드 고유수종인 카우리(Kauri) 나무, 리무(Rimu) 소나무 등 1만 5천 그루의 나무를 이곳에 심었다는 배리 브릭켈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딸아이 동윤이에게는 조금 심심하고 시시한 기차 타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차에서 그리고 전망대에서 내가 보고 들은 이곳의 풍경과 역사는, 여행정보 안내서에서 코로만델 반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형용사 중의 하나인 '장엄한(magnificient)'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코로만델 반도의 장엄미는, 자연이 펼쳐보이는 아름다움만도,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문화 유적만도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 둘이 함께 서로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약 3년 전인 2004년 9월에 다녀온 코로만델 반도 여행기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뉴질랜드#와이아우 워터웍스#드라이빙 크릭 레일웨이#가족여행#코로만델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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