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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유승희 국회의원/ 해피스토리(www.happistory.com) 편집부] 라이베리아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여성 국가수반 중 한 사람인 엘렌 존슨 설리프(69). 2006년 1월 라이베리아 제32대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 6년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그녀의 등장은 자유가 없는 자유의 땅 라이베리아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거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22명이나 되는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스타 조지 웨아를 제치고 최다 득표를 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남성 중심 사회인 아프리카 대륙에서 여성인 엘렌 존슨 설리프가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유권자들이 그녀가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췄고, 국정운영 경험이 풍부한 만큼 내전으로 피폐해진 라이베리아를 재건하는 데 적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는 14년간의 내전으로 모든 것이 피폐해졌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상수도며 유선전화망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고 주택문제도 심각하다. 내전으로 인한 피해 외에도 부정부패, 폭력, 질병, 가난 등 문제가 산재해 있다. 남성 중심의 정치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여성의 힘이 라이베리아의 고통을 치유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라이베리아 제2의 건국이라는 과제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한 엘렌 존슨 설리프. 그녀는 1938년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태어나서 몬로비아에 있는 서아프리카 대학에서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했다. 17살 때 제임스 설리프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뒤 위스컨신 대학, 콜로라도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밟았다. 그러나 그녀의 정치생활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부터 재무장관을 맡으면서 다양한 정치활동을 해왔다. 80년대에는 찰스 테일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쿠데타 정권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가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고, 97년 대선에 패배한 뒤엔 반역죄로 몰려 망명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고난이 훈장이 되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강인한 의지와 추진력으로 고비를 넘긴 그녀는 부패 척결과 경제 재건을 내세운 라이베리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대통령 취임 이후 그녀는 부드럽지만 강한 모성적 리더십으로 '민족 통합과 발전', '국가 재건과 여권신장'을 모토로 내걸고 라이베리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1990년대 초 세계적인 냉전 종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이 지역에서의 여성 정치참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사진은 아기를 안고 있는 라이베리아 여인.
1990년대 초 세계적인 냉전 종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이 지역에서의 여성 정치참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사진은 아기를 안고 있는 라이베리아 여인. ⓒ 우먼타임스
그녀는 취임하자마자 국가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부패 척결에 나섰다. 라이베리아 정부 재무부와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경제 전문가인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부패 청산이란 초강수로 재무부 직원 12명을 해고했다. 재무부는 2003년 과도정부 구성 이후 여태껏 해외 원조로 대부분 메워지는 1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멋대로 운영함으로써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왔다. 취임 20일 만에 취한 전격적인 조치였다.

다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여권신장. 자신의 내각이 적어도 30%는 여성으로 구성되길 바란 엘렌 존슨 설리프는 취임식 석상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라이베리아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고 취임 이튿날 '강간형벌'이라는 오랜 악습을 철폐하고 경찰청장에 여성을 등용하는 등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여성 유권자들의 기대에 화답했다. 또 내전 이후 구성된 새 군대에 여군을 모집했다. 이는 여권신장, 즉 남녀평등 달성을 위한 정부정책의 일환이었다.

남편을 잃은 네 아들의 어머니인 동시에 여덟 아이들의 할머니인 그녀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남성 지배 사회에서 출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프로로서 남성들과 겨룬다면, 당신은 그들보다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료로서 꼭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힘들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남성 지배 사회에 속해 있지요. 그들은 ‘오, 이제 저 여자도 남자들 중에 끼였군’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대선 캠페인 배지엔 "엘렌, 그녀는 우리의 남자"라고 적혀 있었다.

내전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해 그녀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내전과 혼돈의 암흑기에 저질러진 전쟁 폭력과 인권유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조치다. 그녀는 라이베리아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 같은 과정이 필수불가결하며 이 과정을 통해 지난 시절의 갈등과 상처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여권신장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어린 소녀들이 이제 나를 자신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모델로 봐주길 바랍니다. 나는 더 많은 라이베리아 여성들, 아프리카 여성들이 더 잘 살길 바랍니다. 세계 각국의 여성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전쟁, 빈곤, 질병 등 아직도 라이베리아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 앞에서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경제를 어떻게 살려나갈지,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아프리카의 여성지도자들
모잠비크·남아공등 여성지도자 봇물

빈곤, 기아, 질병, 내전, 폭력, 부패….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회색빛 절망의 땅을 연둣빛 희망으로 일궈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 각국에서 내각·의회에 진출한 여성 지도자들이다.

남성 정치인에 의한 부정부패와 내전이 빈곤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자, 새로운 대안으로 여성 리더십이 떠오르게 됐다. 특히 21세기 들어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가 연이어 탄생하면서 아프리카에 ‘여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비롯, 음람보 응쿠카 남아프리카공화국 부통령, 조이스 무주루 짐바브웨 부통령, 루이자 디오고 모잠비크 총리, 도라 아쿠닐리 나이지리아 국가식량마약통제국(NAFDAC) 국장이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들이다.

5월 2~4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음람보 응쿠카 남아공 부통령은 국회의원과 광물에너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경제 활성화를 최대 목표로 ‘비즈니스 외교’에 전력하고 있다. 도라 아쿠닐리 나이지리아 국가식량마약통제국 국장은 몇 차례 암살 위기를 넘기면서도 가짜 약 근절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여 80%였던 가짜 약 비율을 3년 만에 10%대로 낮췄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여성 지도자들은 강력한 추진력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부패 척결과 개혁에 나서는 한편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쏟고 있다.

한편, 여성 인구 비율에 따라 여성 쿼터제를 확대하는 적극적 조치로 여성 의원 수가 늘어나면서 의회에서도 여성의 힘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르완다 의회는 여성 의원 비율이 48.8%로 선진국들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 모잠비크, 부룬디의 경우도 여성 의원의 비율이 각각 34.8%, 32.8%, 30.5%에 달한다.

이외에도 탄자니아, 우간다, 레소토, 스와질란드, 짐바브웨, 나미비아 역시 20%대로 13.4%에 불과한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면 가족을 먹이고 자녀를 학교 보내는 데 쓰지만, 남성에게 돈을 주면 곧바로 쓸데없는 곳에 낭비한다."

아프리카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집권하면서 생긴 유행어다. 어머니처럼 부드럽지만 강한 여성 리더십이 아프리카의 오랜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되고 있다. / 주 진 기자

#여성#우먼#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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