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구라 삼국지> 1권 표지
<구라 삼국지> 1권 표지 ⓒ 소담출판사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5월 1일, 서울 혜화동에서 작가 전유성을 만났다. 사실 일찍부터 인터뷰를 부탁했지만 "제가 하는 얘기들이 워낙 말 같지 않은 얘기들"이라며 사양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책을 사 재밌게 읽었는데 저자의 사인을 받고 싶다고 우겨 겨우 이날 약속을 잡았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해 스쿠터를 타다가 넘어져(그는 아직 운전을 못 한다) 수술을 받았는데 약이 독해서 그런지 장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그 특유의 웅얼거리는 말투가 더욱 도드라졌다. 인사말로 먼저 시장 반응을 물었다.

"저도 몰라요. 전 사실 반응 안 물어봐요. 뭐 대단한 것 썼다고, 얼마나 팔려요, 묻는 게 쑥스러워서 궁금하지만 안 물어봤어요, 정말로. 앞으로도 안 물어볼 생각이에요."

'구라'일까. 어쨌거나. 책 제목은 그가 직접 지었다. 책의 내용에 앞서 '구라'란 용어가 걸렸다. 혹자는 구라가 일본말 구로이(黑ぃ, '검다') 또는 가라(空, '비다' '거짓')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러나 추천사에서 소설가 이외수는 구라의 어원(語源)을, '입나팔'을 뜻하는 한자어 구라(口喇)에서 찾았다. 그 역시도. 그리고 덧붙였다.

"예전엔 구라라는 말을 방송에서 쓴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이마를 마빡이라고도 못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구라를 예명으로 쓰는 개그맨 후배도 생기고, 격세지감을 느끼죠. 구라나 마빡이라는 말이 비속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음지에 있던 게 양지로 나온 거다, 이렇게 좋게 봐주시면 어떨까, 생각하죠."

집필에는 4년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두문불출했다. "2년이면 된다고 큰소리 빵 쳤는데" 본의 아니게 구라를 친 셈이 되고 말았다. 현재 마지막 500매를 쓰고 있으며, 이달 내로 끝낼 계획이다. 오는 7월까지 전체 10권을 완간할 예정.

"<삼국지>의 영웅시대는 끝났다"

ⓒ 오마이뉴스 김도균
책을 쓰기 위해 <삼국지>를 "대강대강" 읽은 게 20회 가량. 이전에도 서너 번 읽었다. '나도 언젠가는 삼국지를 한번 써보리라'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소담출판사 이태권 사장이 <삼국지>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부추겼다.

"처음엔 거절했죠. 감히 제가 어떻게 쓸 생각을 하겠어요. 그런데 하도 그래서, 술 마시다가 술김에 대답을 해버렸죠."

그리고는, 수많은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 혀를 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혀를 자를 것인가, <삼국지>를 쓸 것인가 고민하다 '혀를 자르고 평생 고생하느니 한 2~3년 고생하고 나머지 삶을 행복하게 살자'고 마음을 굳혔다.

<삼국지>는 정비석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번역 또는 평역했다. 거기에 만화 <고우영 삼국지>까지. 그는 당연히 "부담감을 무진장 느낀다"고 했다. 다만.

"그분들이 문장으로 승부했다면 저는 이야기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얘기처럼 풀었죠. 또 그분들이 쓴 게 고증이 확실하다면, 저는 고증보다는 어떤 전투에 나가서 1300명이 붙었는지 1700명이 붙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나, 붙은 사실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구라 삼국지>에서 황건적 소탕에 나선 유관장(그는 유비 관우 장비를 묶어 부른다)의 의병 숫자는 503명이고, 손견의 의병 숫자는 1494명이다. 또 이런 식의 현대식 고증도 시도했다.

예컨대 <삼국지>에서 관우의 청룡언월도 무게는 82근. 요즘 1근이 600g이니 50kg이다. 그러나 한나라 때는 1근이 약 200g이었다고 하니 사실은 16kg 정도. 프라이드 치킨 닭다리가 200개, 꽃게 큰 것 80마리, 새우깡 177봉지, 자장면 42그릇(그릇 무게는 빼고)의 무게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 얘기를 많이 집어넣어서, <삼국지> 상황을 제가 직접 겪었던 상황으로 많이 대치시킨 게 다른 거라고 생각하죠. 제 얘기를 댓글 달듯이 달아놓은 거죠." <구라 삼국지>에는 '추가 구라'라는 형태로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갖가지 경험이 퍼즐처럼 박혀 있다. 그 조각들을 모으면 마치 그의 자서전을 덤으로 읽는 느낌이다.

그의 경험은 대개는 웃기고, 때로는 슬프다. 이름 없는 개그맨 시절 다섯 끼니를 거르고 미아리에서 종로까지 걸어가 우여곡절 끝에 구한 돈으로 썩은 쌀 반 포대를 속아 사온 얘기를 들려줄 때는 가슴이 저리기조차 한다.

그 같은 경험 탓일까. 그는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 숱한 병사들의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을 과연 현대에도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영웅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서, 결국에는 뭉치면 헤어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 삼국통일을 하면 거기서 뭘 하겠느냐는 거죠. 그렇게 좋은 놈들이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웃음)."

이어지는 그의 현대 영웅론. "어떤 한 아이디어로 백성을 정말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예를 들어 아파트값을 정말 내려서 누구라도 집을 싸게 살 수 있게 하는, 또 어떤 제도를 잘 만들어서 혜택을 많이 보게 하는 사람이 요즘에 와서 진정한 영웅이죠." 그리고 "고생하는 할머니들이 학비를 내놓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영웅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예형을 닮고는 싶지만..."

개그맨 전유성씨가 소담출판사 이태권 사장과 <구라 삼국지> 광고문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소담출판사 이태권 사장과 <구라 삼국지> 광고문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도균
이외수는 추천사에서 전유성을, "예리한 비판과 거침없는 언행"이라는 측면에서 <삼국지>의 예형과 비교했다. 예형은 조조를 끊임없이 조소하다가 결국 혀를 뽑힌 채 죽임을 당하는 인물. 이외수는 그러면서도 "전유성은 그에 비하면 한결 지혜로우면서도 유연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그의 '내공'을 더 높이 평가했다.

"제가 예형보다 비겁한 거죠. 예형이란 친구가 조조한테 입바른 소리를 하죠. 당대 성역에 감히 도전을 한 거죠. 지금은 성역이 없어요. 개나 소나 다 씹어대니까. 그런데 그 성역을 건드렸고, 결국엔 죽게 되는데, 저도 그러고 싶죠.(웃음) 그런데 그건 뭐 이상이고. 저도 20대라면 더 용감했을지도 모르는데 점점 그렇게 안 돼가는 게,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저도 안타깝죠."

그래서인지 전유성은 <삼국지>에서 "참 마음에 드는 인물"로 예형을 꼽았다. "관우도 그런대로 남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한다"고 했다. 반면 "유비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유부단한 게 저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맺고 끊고 잘하는 줄 아는데, 결국 보니 우유부단하더라고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데, 세월이 지나가면 해결이 되겠지 하고, 알고도 넘어가고 모르고도 넘어가고."

- 그럼 스스로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다 닮았어요. 간교하고 교활하고 비겁하고, 어떨 때는 용감하고.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비빔밥 같은 삶을 사는 거죠."

- 대부분 그렇게 비빔밥으로 살지 않나요?
"그런데 비빔밥도 보통이 있고 특이 있더라고요.(웃음)"

- <삼국지>가 오늘에 주는 교훈이라면?
"9권인가? 그렇게 제목을 붙였어요, '교훈은 찾는 사람의 몫이다'. 물론 제가 여기서는 이런 교훈을 얻어라, 얘기를 하긴 해요. 그런데 결국 교훈은 자기가 찾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들의 몫이지, 교훈이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진짜 교훈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게 해야 할 게 그렇게 많은데, 이걸 읽으면서까지 교훈을 찾고 그러면…(웃음). 이건 그저 가볍게 읽고 시간 때우고 넘어가고 뭐 그러길 바라고 쓴 거예요."

그는 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 제목을 좋아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나는 베이스기타"

전유성이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코미디언이란 용어 대신 굳이 개그맨이란 용어가 왜 필요했는지 묻자 "수만 번 한 얘기라서 식상할 텐데…"라면서 그 까닭을 들려줬다. 이유는 허탈할 정도로 단순했다.

"코미디언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제대하고 오니까 극장무대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텔레비전으로 많이 들어오셨어요. 50-60분이 활동하는 데 제 존재가 눈에 띄려면 똑같은 걸 하더라도 이름을 좀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는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다. 서라벌고 시절 연극부 활동을 했고, 대학(서라벌예대)에서도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탤런트 시험을 네 번이나 봤다. 현재 그가 탤런트가 아니라 개그맨이니까 결국 네 번 다 떨어졌다는 얘기다. 당시 경험을 <구라 삼국지>에도 적어놓았다.

없는 돈에 양복까지 맞춰 입고 면접장에 들어섰는데, 심사위원들이 그에게는 한마디도 묻지 않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마디만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 한마디는 "야, 너 키가 몇 센치냐?" "네 178센치입니다." 그리고 질문 끝! 그는 이 일화에서 '될 놈, 안 될 놈, 탁! 보면 아는 거다'는 교훈을 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코미디언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유는 역시 단순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싶어서 찾은 게 코미디"였다. 그러나 코미디언, 개그맨이 된 뒤에도 그는 주연보다는 주로 조역에 머물렀다.

"어차피 제가 주연 되기는 어려웠어요. 다른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잰 웃긴다고 촉망받는 애들이었지만 전 그게 아니었잖아요. 내가 이걸 계속 하려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뭔가 해서, 다들 청춘물 주인공하고 싶어해서 '그럼 난 할아버지만 할 게' 했죠. 저는 옆에서 몇 마디 받쳐주는 베이스기타였지 퍼스트기타는 감히 꿈도 못 꿨죠."

그리고 "한 마흔 살 되던 해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했는데 제가 봐도 연기 드럽게 못 하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인터뷰로 바꾸자, 얼른 바꿨죠, 남들 많이 안 할 때. 그 다음부터는 연습해서 하는 거 안 하고 패널로 많이 다녔고. 패널도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하기 귀찮아서 잘 안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이란 영예로운 별명을 얻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웃음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그게 무슨 좋은 멘트냐구요? 내가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웃겼어야지 더 스타도 되고 더 명예도 생기고 했을 텐데,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 해 가지고, 그게 무슨 칭찬의 말인가요? 저는 욕먹는 거 같아요."

'코미디 한류'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

전유성, 그는 한때는 탤런트가 되고 싶었다.
전유성, 그는 한때는 탤런트가 되고 싶었다. ⓒ 소담출판사
그는 지난 99년 후배 김미화 백재현 등과 함께 <개그콘서트>(KBS)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시대를 열었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개그야>(MBC)가 그 뒤를 이었고, 현재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반면, 그에 따라 예전 <웃으면 복이 와요>와 같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유행이 있으면 그것만 모두 따라하는 풍토는 사실 별로 아닌 건데. 어떻게 보면 지금은 개그맨들이 해야 할 몫들을 탤런트들이 하고 있는 거 같아요.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나갈 뿐이지 희극이란 분야에서는 다 그런 것 같아요."

- 지난달 <웃찾사>가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외국(일본)에 수출됐다. '코미디 한류'의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는지?
"15-20년 전쯤에 그런 얘기했을 때는 사실 쪽 팔려서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우리가 일본 것을 답습한 게 많았기에 혹시 일본 것인지 모르고 하다가 망신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래 세대들, 백재현 이후 세대들은 독특한 한국적 특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3개 방송사가 비슷비슷한 건 안타까운데, 일본으로 가면 일본 코미디랑 다른 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차별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 요즘은 또 <무한도전> '무릎팍도사'와 같이 리얼 코미디를 내세우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리얼 토크가 바람직하죠. 지금까지는 그렇게 안 하고 예쁜 말만 골라서 하고, 그런 것들은 별로 안 좋았어요. 누구나 나와서 하는 얘기가 머리 큰 얘기, 머리가 크니까 뒤로 가야 한다는 얘기. 나이 얘기하면 어 그러면 누나네, 어 그러면 오빠네, 만날 프로그램마다 전부 다 하는 거는 참 못마땅하고, 그게 뭐 그리 웃기나 싶은 생각도 들고. 훈련받지 않고 막 나오는 애들 때문에 그런 거다 하는 생각이 들죠. 오프라 윈프리나 그런 사람들이 사실 리얼 토크 때문에 성공한 거거든요."

그 역시 한때 TV에서 리얼 토크로 '음주토크'를 시도한 적이 있다. "제가 하니까 온갖 신문에서 술 마시고 방송한다고 막 쓰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온갖 신문에 음주인터뷰 안 들어가는 데가 또 없더라고요. 야 이거 참, 먼저 한 건지 술 마시고 내가 헤맨 건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들 하는데 그때는 아이고, 욕 무진장 먹었어요."

처음부터 술 마시려고 했던 건 아니다. '왜 꼭 인터뷰는 차를 마시면서만 해야 할까. 이순재씨 같은 점잖은 분이랑 자장면을 먹으면서 해보면 어떨까.'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거리에 붙어있는 껌을 떼면서, 김장철에는 김치를 만들면서, 나아가 개헤엄을 치면서, 구두를 닦으면서…. "그런데 김민종인가 손지창인가 술 마시면서 해보자고 했는데, 괜찮다고 해서 정말 술 마시면서 했죠."

'안어벙' 안상태, '육봉달' 박휘순, '대빡이' 김대범...

ⓒ 오마이뉴스 김도균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코미디시장'이란 이름으로 개그맨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개그맨 되는 길이 방송밖에 없더라구요. 그런 게 좀 안타까워서 개그맨 제일 선배로서 나를 통해서도 데뷔할 수 있게 한번 해보자. 그래서 제가 교육을 시켰죠. 2년 동안, 무료로. 선착순으로 뽑았는데 백여명이 왔어요. 그래서 '내 입으로 관두라는 소리는 안 한다, 자연도태되는 건 막지 않겠다' 했더니 2년 수료할 때 다행히 15명이 남아서 그 아이들이 다 활동하고 있어요."

11명은 공채에 합격했고, 연극을 하고 있는 1명을 제외하곤 모두 개그맨이 되었다. '안어벙' 안상태, '튕김질' 신봉선, '육봉달' 박휘순, '대빡이' 김대범, 그리고 '희한하네' 팀의 이재형 등이 '코미디시장' 출신이다.

"코미디시장 하면서 돈은 많이 들였지만 결국엔 내가 뭘 배워야 할지, 뭘 가르쳐야 할지, 커리큘럼이 생긴 게 제 자산이면 자산이고. 다 방출했어요. 전속해서 가고."

그 같은 자신을 그는 또 현재 예원예술대 코미디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풀어내고 있다. 과목은 '아이디어 창작'과 '발상' 등. '타짱'의 양배추는 이미 다른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가장 존경했던 전유성 선생님이 학과장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 학생들이나 후배들을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점은?
"창의성이죠.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이죠. 창의성, 남들이 안 하는 거 하고, 늘 준비해야 한다, 그것만 강조해요. 그 얘기만 계속 해요, 좀 다르게 변주해서.(웃음)"

- 그렇다면 개그맨 맏형으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후배들한테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없구요. 후배들이 저한테 형님 이렇게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후배들은 제 이름을 다 아는데 제가 후배들 이름을 다 몰라요. 이름조차도 모르면서 후배들한테 이렇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일 있을 때 선배님 이렇게 좀 해주세요, 그러면 좋은 일이지, 잘하고 있는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그맨으로서의 직무 유기 경험

다만 개그맨의 활동 영역이 방송이나 일반적인 공연무대에 한정돼 있는 데 대해선 안타까워했다. 개그맨이라면 방송에서 벗어나, 무대에서 내려와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현장을 파고 들어 웃음을 전달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 자신이 일상생활에서의 즐거움을 위한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죽맛 죽이네'(죽집), '재즈나 칭칭'(재즈카페),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레게로 오라'(레게 카페) 등 가게 이름 지어주는 것도 그의 취미생활(?) 중 하나다. <구라 삼국지>에는 대구 어느 삼계탕집을 광고해주면서 닭 위령제를 제안해 성사시킨 얘기가 적혀 있기도 하다.

최근 후배 개그맨 박형준이 한 신문칼럼에서 소개한 고속도로 통행복권 아이디어도 그 같은 예의 하나.

"명절 때는 고속도로를 무료로 다니자는 거죠. 또 명절 때 아니더라도 통행권을 탁 뽑으면 거기서 복권이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은 공짜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얼마나 기분 좋게 다닐 것이며, 뽑히지 않은 사람도 '다음번엔 내가 뽑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겠죠.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하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

그의 말에 따르면 통행복권 아이디어는 "위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거참 재밌군 하고 끝났다고 하더라구요." 최근 계획하고 있는 또 다른 아이디어.

"제가 제주도에 갈 생각이 좀 있어요. 제주도에 가면 제주도 번호판을 바꾸자는 운동을 해볼 생각이에요. 제주도 번호판은 제주도 모양으로 하자, 돌하루방이 안녕하세요 하고. 그게 제주도에 온 사람들한테는 틀림없이 색다른 즐거움을 줄 거고, 그 차가 육지에 나오면 제주도를 선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번호판 샘플도 제가 만들어 놓고 그래요."

그는 관련해서 개그맨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했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12월 31일 노고단 가면 일출 보러 수천 명이 올라와요. 어느 해 갔더니, 일출 보러 무진장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눈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다들 '에이~' 하고 실망했죠. 저도 실망하고 한 10분 내려왔는데, 개그맨인 제가 '개그맨 전유성입니다'하고 밝히고 '일출은 못 봤지만 이왕 왔는데 '펄펄 눈이 옵니다'를 다 같이 다섯 번만 합창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내려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10분 내려온 게 귀찮아서 다시 못 올라갔어요. 지금이라도 올라가면 늦지 않을 텐데 하면서도 못 올라간 게 개그맨으로서 대단한 직무유기를 했다는 생각을 하죠."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코미디극장을 꿈 꾸다

<구라 삼국지> 집필에는 4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구라 삼국지> 집필에는 4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 소담출판사
그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DJ를 끝으로 현재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뭐 많이 나가고 싶지도 않고, 불러 줄 데도 없을 거고"라며 웃었다. 대신 꼭 이루고 싶은 다른 꿈 하나가 있다. 코미디를 전문으로 하는 극장을 만드는 것.

"제주도에 하나 만들었으면 해서 요즘 제주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공연장의 레퍼토리가 아니고 공연장 자체가 화제가 되는, 그런 공연장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그 동네 사람들이 같이 출연하는 공연장이 되어야 한다, 그 극장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 이상은 출연해야지 진정한 코미디, 그 지역사람들을 위한 코미디극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죠. 제일 어려운 게 그거라고 생각해요. 돈 끌어들여서 도와주시겠다는 분들은 많은데 제가 도움을 구해야 할 사람들은 출연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죠."

극장을 근거로 제주도 학생들을 주로 많이 뽑아서 '코미디시장' 2기도 키울 계획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무료로 진행할 생각이다.

"전에 울릉도 가서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물어봤어요. 개그맨 하고 싶은 아이들은 많은데 길이 없고 너무 막막하고 어렵게 생각하더라구요. 제주도에 가서 중고등학교 다녀봐 하고 싶은 사람들 있으면 선발하고, 거기에 육지 학생들을 같이 섞어서 해볼 생각이에요."

- 대략 오픈 시기는 언제쯤?
"이제 겨우 장소만 보고 주인한테 막 '이거 하면 됩니다' 하고 꼬시고 있는 중인 걸요. 사실은 자신있게 얘기 못하는 게 그걸 해서 돈 못 벌거든요. 그러니까 막 꼬실 수는 없어서 살살 꼬시고 있어요."

덧붙여 다소 조심스럽게 현재로선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구상도 털어놨다.

"공연장이 만들어지면 조영남씨한테 가서 부탁을 하죠. 형은 지금까지 무대에서 노래만 불렀지 한 번도 표 받아 본 적이 없지 않느냐, 형 우리 극장에 와서 표 받는 것 좀 해줘. 양희은한테 가서도 자리 안내 좀 해봐, 티켓에 도장 좀 찍어봐, 포스터 붙이러 다닐 때 같이 좀 가봐. 이런 거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동지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죠."

마지막으로 개그맨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서 지금 시기 개그맨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정의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개그맨은 자기 주위에 여러 가지 형태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라는 바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1 - 조심하라, 첫인상은 영원하다

전유성 지음, 김관형 그림.사진, 소담출판사(2007)


#전유성#개그맨#코미디#구라삼국지#삼국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