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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큰개별꽃
ⓒ 김민수
별꽃 중에서 제가 만난 '개'자가 들어간 별꽃은 개별꽃, 숲개별꽃, 큰개별꽃입니다. 개별꽃과 숲개별꽃은 이미 만났기에 큰개별꽃을 만나고 싶었지요.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큰개별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말이죠.

꽃산행을 나선 날 길가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피어난 하얀 꽃무리가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꽃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한숨에 달려갔습니다. 개별꽃을 닮았는데 그에 비해 상당히 커보였습니다. 생육조건이 좋으면 더 실하게 피어날 수도 있는 것이 꽃이니 그러려니 했지요.

그런데 꽃박사들에게 물어보니 그게 바로 '큰개별꽃'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선개불알풀꽃을 만난 후에야 작기만한 큰개불알풀꽃이 정말 크다는 것을 알았던 어느 봄날이 떠올라 웃었습니다.

▲ 개별꽃보다야 크긴 크지만 그리 큰 꽃은 아니다.
ⓒ 김민수
진짜를 보면 진짜라고 믿었던 가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진짜를 본 사람들은 아직 진짜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까지도 보게 되는 법입니다. 아직 진짜 바다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주의 바다를 본 이후에는 동해도 서해도 모두 밋밋했습니다.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를 본 탓이겠지요. 그 바다가 그 바다인 것 같은데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바다에 당황을 하기도 했지만, 진짜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으니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꽃도 그렇습니다. 식물도감을 보면서 만나고 싶은 소망을 간절하게 품고 있다가 실물을 보면 실망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었구나!' 감탄을 합니다.

실물과 눈맞춤을 하지 않고서 그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와 조우를 할 때의 느낌, 그 느낌들이 고스란히 마음에까지 맺혀져야 그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지요.

▲ 옹기종기 모여 봄숲을 노래하고 있다.
ⓒ 김민수
삶이 진지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이 단지 이론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허위의식에 가득한 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허위의식 속에 살아가는 군상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탄식을 하기도 합니다.

나도 진지하게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면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물론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활력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비로소 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지요.

▲ 순백의 꽃이 아름다운 수수한 꽃이다.
ⓒ 김민수
진짜가 실종되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세상인 것 같아도 결국에는 진짜가 있어 세상은 살 맛 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을 만나면 진실한 사람에게 끌리듯 진짜 꽃다운 꽃을 만나면 아무리 작고 못생긴 꽃이라도 그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그것이 어쩌면 원예종 꽃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야생의 들꽃에게만 눈길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진짜 꽃, 그들을 만나고서야 그들을 알았고, 그들을 통해서 나의 인생을 반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수업>이라는 에세이집 한 권 집어들고는 읽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책날개에 '이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때문이지요. 화두 같은 질문 앞에서 내 안에 죽어 있는 그 어떤 것들이 무엇일까 돌아보니 상실한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 홀로 외로이 피어있는 꽃도 있다.
ⓒ 김민수
사람들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이 행복해 보여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들꽃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우러져 피어 있어도 아름답지만 홀로 보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도 활짝 웃고 있어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가 봅니다.

큰개별꽃, 올해 처음으로 눈맞춤을 했습니다. 그를 만나고나서야 그를 알았고, 그와 사촌관계인 개별꽃과 숲개별꽃이 어떻게 다르고 닮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를 만나고서야 그뿐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도 알게 된 것이지요.

우리의 삶,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올해의 들꽃이 지난해의 꽃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 들꽃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길지 않은 삶,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활짝 피우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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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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