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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직 난 못 받았지만, (탄원서 용지가) 오게 되면,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직장인들은 뭐 그럴 수밖에…."(한화 A계열사 K과장)
"그룹에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기자)
"그래요?"(K 과장)"


2일 낮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인근서 나눈 대화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직원들에게 다가가자,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일부는 '기자'라고 밝히자, 아예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한 직원은 "언론이 한화를 죽이려는 것 같다"고 하자, 또 다른 직원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모두가 손해 아니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자신을 계열사의 과장이라고 밝힌 K씨는 "회장 개인 일 때문에 회사 직원들도 일손이 잘 안잡히는 등 너무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 개인 일 때문에 회사가 영향 받으면 그것이 더 문제 아닌가"라고 되묻자, "우리 재벌기업이 다 그렇지 않느냐. 그러니까 언론이 좀 신중하게 다뤄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혼란 속 한화 직원들 "탄원서 내키지 않지만" - "언론이 원망스러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파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회사 임직원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대부분 총수 개인의 일 때문에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룹차원에선 총수의 구속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계열사에선 김 회장의 사법처리에 대비해 직원들을 상대로 한 탄원서가 나돌았다.

한화 계열사 L 과장은 "따로 제목이 있지는 않았고, A4용지 크기에 이름과 주소, 서명란만 있는 종이가 돌았다"면서 "따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다 그렇게 하는 줄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현대자동차도 하지 않았나"고 전했다.

현대차는 작년 4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을 때, 그룹 계열사 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까지 동원해, 탄원서를 작성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한화의 또 다른 직원은 "개인적으로 (서명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너무 세세한 것까지 기사화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 사건이 아직 경찰에서 수사중인데…"라며 "그룹 차원에서 탄원서를 돌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일부 계열사에서 자체적으로 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룹 변호사들, 총수 개인 범죄 방어?

지난달 30일 새벽 3시 20분경 보복폭행과 관련해서 11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남대문경찰서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벽 3시 20분경 보복폭행과 관련해서 11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남대문경찰서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룹 법무팀 소속 변호사들이 김 회장 사건에 동원되는 것도 마찬가지.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선 "총수 개인문제에 회사 변호사 참여는 위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화는 김 회장 사건이 장기화될 것을 대비해 김 회장쪽에서 개인변호사 3명을 선임하고, 여기에 회사 법무실 변호사 10여명이 협조해 대응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연합뉴스>는 한화 사장단 회의 내용까지 전하면서, 법원의 구속적부심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곧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불러왔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2일 "김승연 회장이 회사 업무와 전혀 무관하게 발생한 개인적인 법률 문제 해결을 위해 회사의 인적 물적 자원을 유용하는 것은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회사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김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룹 법무팀 변호사들이 동원되는 것 자체가 회사입장에선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

현행 형법 제356조(업무상 횡령과 배임)는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김 회장의 변호인단에 선임된 '김앤장'의 변호사 비용도 회사에서 부담할 경우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이어지자, 그룹에선 이날 오후 "변호인단은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외부 변호사를 선임해 구성됐다"면서 "한화 법무실 변호사는 변호인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변호사 비용도 김 회장 개인이 부담한다고 밝혔다.

한화의 '김승연 구하기'... 등 돌린 여론

한화쪽의 뒤늦은 해명이 이어졌지만, 그룹차원에서 '김승연 구하기'에 나서면 나설수록 여론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화는 김 회장의 경찰 출두에 앞서 A4용지 10매 분량에 김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와 경영 능력을 담은 보도자료를 뿌렸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여기다 지난달 30일 김 회장의 둘째아들 동원(22)씨의 공항 입국과정에서의 과잉 경호에 이어, 탄원서 돌리기 등이 보도되자 여론은 더욱 악화되는 실정이다.

'푸른바다'라는 아이디의 한 누리꾼은 "김 회장이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 처벌받으면 끝나는 일을 스스로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kiss74' 아이디의 누리꾼 역시 "김 회장 부자가 부인하면 할수록, 그룹 직원들이 온몸으로 회장일가를 막으면 막을수록 국민들의 불신은 그만큼 커진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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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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