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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국악관현악단 24회 정기연주회에서 정대석 작곡의 수리제를 협연하는 한양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유림
ⓒ 김기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하면 떠오르는 일이 참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고민 없이 누구나 맞이할 수 있는 기념일들이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5월의 첫날은 노동절로 열게 되고, 한국 현대사를 우울하게 장식한 5·16과 5·18이 5월을 마냥 푸르게만 지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 앞에 험산준령도 키를 낮추듯이 20세기의 암울한 기억도 이제는 점차 먼 기억이 돼가고 있고, 여전한 것은 정치 사회적 이슈와는 거리 둔 푸른 5월의 상념들뿐이다. 세월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오월은 푸르고 볼 일이다.

5월의 첫날 저녁 무렵. 국립국악원 예악당은 온통 푸름으로 장식된 화원 같았다. 24회를 맞은 서울국악관현악단(단장 김정수)의 정기 연주회 '청출靑出'이 열렸다. 변함없이 지휘대에 선 이는 서울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김성경 교수.

서울국악관현악단의 봄 정기연주회는 협연의 밤으로 구성되었다. 협연을 주로 하더라도 한 곡 정도는 협연자 없이 순수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날 연주된 다섯 곡 모두가 협연자와 함께 하였다.

최세화가 거문고 협주곡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정동희 편곡)'를, 최세윤이 가야금 협주곡 '춘설(황병기 작곡, 김희조 편곡)'을, 김보경이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이상규 작곡)'를 순서대로 연주했다. 이어 박유림이 거문고 협주곡 '수리제(정대석 작곡)'를, 김혜민이 해금 협주곡 '상생(조원행 작곡)'을 서울국악관현악단과 연주해냈다.

▲ 서울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김성경 교수와 연주를 마치고 함께 포즈를 취한 5명의 푸른 연주자들.
ⓒ 김기
협연자로 무대에 선 5명은 모두 현재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들로 신분으로 무대에 섰지만 앳된 모습은 더러 남아 있어 첫 번째 푸름의 조건이 되었다. 거기에 5월이 본연적으로 가진 푸름과 솔리스트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을 배려하는 스승의 마음 또한 본래의 푸름이기에 서울국악관현악단의 '청출'이 그저 쉽게 '청출어람'이 아닌 줄인 듯하나 더 넓은 의미인 '청출'이 된 것이다.

푸름의 주인공들은 약간의 나이차가 있긴 하지만 모두들 긴장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협연자가 다섯이나 되니 그에 따라 객석의 청중도 평소보다는 좀 더 많아보였고, 연주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 그만큼 높았다. 또 대견한 것은 무대에 서기까지 설레고 떨리는 심정이야 프로 솔리스트인들 다를 수 없는 일이지만, 막상 연주에 들어서는 모두들 혼신의 힘으로 자기 몫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서울국악관현악단이 직업단체는 아니지만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었고, 정기연주회도 24회정도 가진 정도면 이미 국악계에 자리는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린 낙숫물에 주출돌이 패이듯이 대중성에 영합하지 않고 순수한 음악을 고수하면서 의외로 고정 청중을 확보하고 있다. 지휘자 김성경 교수는 연주 전부터 공연관람문의가 예년에 비해서 무척 늘었다고 말하면서 애써 즐거운 모습을 감추려 했다.

그렇게 관심을 보여주는 순수 국악팬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소위 박수부대의 편파적인 박수는 없었다는 점도 또한 이날의 푸름에 큰 몫을 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연주에는 우열도 존재하고, 선호하는 연주자도 구별되기 마련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들 열심히 연주했지만 청중은 짧은 시간이고 익숙지 않은 연주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심전심 마음이 모아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 이 날 연주된 곡 중 가장 젊은 작곡가인 조원행의 '상생'을 연주하는 김혜민. 젊은 감각의 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힌 김혜민은 가장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 김기
전문연주단체인 서울국악관현악단이 이렇듯 어린 연주자들을 협연자로 매해 무대에 세우는 까닭은 그들 중에 누군가는 미래 국악을 이끌어 갈 동량이 있기 때문에 미리 경험을 쌓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 크다.

국악은 지난 수십 년간 대중화를 외쳐왔다. 그 외침이 이제는 어느 정도 메아리로 돌아오는 현상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되는데, 대중을 국악으로 유인하는 데에는 한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아무래도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소위 스타급 국악인들이 탄생한 일이 될 것이다.

천재는 태어날지 몰라도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음악에 천부적 재질을 타고난 사람이 스타가 될 가능성이 다소 높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천재적 재질을 갖고도 스타가 되지 못한 경우는 국악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스타가 만들어지기 위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스타 탄생을 위한 가장 큰 환경은 아마도 무대일 것이다. 연주자가 무대가 아닌 곳에서 스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5명 중 누가 스타가 될 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모두가 될 수도 있고 한 명도 스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다수에게 마련해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기에 서울국악관현악단이 매해 어린 협연자들을 무대에 세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거기다가 이젠 고정 청중들마저 형성이 됐으니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기성무대가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갖게 된다. 그 경험과 자신감이 향후 더 큰 기량으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서울국악관현악단이 마련한 5월 첫날의 음악회는 다시 '청출'이 되는 것인가 보다.

음악회를 마치고 로비에서 만난 지휘자 김성경 교수는 "다른 때보다 이번 협연자들은 연주에 대한 욕심과 열의가 특별했다"면서 "이런 기회를 통해서 어린 후배들이 진지한 연주자세를 다시 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며, 개인적으로는 기량 높은 연주자들과 협연한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연주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그랬다. 간만에 여러 의미들이 무겁지 않고 오히려 듣는 이를 가볍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말 그대로 푸른음악회였다.

▲ 왼쪽부터 거문고 최세화, 가야금 최세윤, 대금 김보경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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