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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 도서출판 <책이좋은사람>
참살이를 돕는 음식엔 뭐가 있을까?

옛적에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언로가 막힌 독재시대의 웃지 못 할 촌극들이지요. 독재시대에 차마 공론화 되지 못하고 입에서 입으로, 시중에서 은밀하게 떠도는 이야기들을 옮기고 귀띔 받던 입소문들을 일컫던 말 '카더라' 통신.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유비통신이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식에 관한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 가면 무슨 음식을 잘 하더라, 무슨 음식은 어디 가서 먹어야 제 맛이야, 등등. 이미 맛을 보고 온 사람들이 '너 여태까지 살면서 그런 곳도 안 가보고 그런 음식 맛도 못 봤느냐'라는 듯 입에서 침이 마를 세라 선전하는 말을 듣고 나서 막상 찾아가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맛에 실망하고 돌아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맛 칼럼니스트니 음식평론가니 하는 분들의 소개말을 듣고 찾아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당 부분 전하는 이의 '오버스러움'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동산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에도 일정한 거품이 있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얘기지요.

<한겨레신문> 편집기자인 이병학씨가 쓴 맛 기행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땅 참맛>은 일단 그런 류의 과장과는 거리가 있는 책이 분명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맛보았던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담담하게 풀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처음부터 맛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 겠다거나 하는 작위적인 의도 없이 그냥 여행을 다니다가 자주 접한 먹을거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나라 제 땅, 제 철에 나는 음식이 최고

책은 저자가 우연히 맛보고 당기면 또 찾아가서 먹고 하다가 맛을 들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춘하추동 계절별로 4장으로 나누고, 그 음식들을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집을 찾아서 경향 각지로 발품을 팔았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음식들을 굳이 철에 따라 나눈 것은 제 철에 난 음식이 제일 맛나기 때문에 제철에 따른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저자 나름의 배려가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먼저 책의 첫 장인 봄철 음식에는 풋풋하고 쌉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봄나물과 더불어 봄철 입맛의 대명사인 주꾸미, 굴 구이, 대게, 키조개 요리와 맛 집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장인 여름 음식에선 더위를 피해가며 즐기기 좋은 메밀 막국수, 메밀 묵밥, 김치말이 국수 등이 나오지요. 이 장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인상 깊은 음식 하나를 꼽는다면 영동지방의 한정식인 '못밥과 질상'을 들 수 있습니다. 못밥이란 모내기 현장에서 먹던 밥을 말하며 질상은 못밥보다 한 길 정도 높은 음식인데 모내기에 지친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의 별식이었다고 합니다. 아참, 여름철의 별미인 찰옥수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3장인 가을 철 음식에는 식욕의 계절답게 뻘낙지로 끓이는 박속밀국낙지탕, 짱뚱어탕, 소갈비와 낙지가 동거하는 갈낙탕, 참게탕, 빠가사리 어죽, 민물매운탕 등 손질이 많이 가는 본격적인 음식이 소개됩니다.

마지막 4장인 겨울철 음식에선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음식들이 소개됩니다. 김치와 곰치가 만나는 곰치국, 미식가들이 애호하는 매생이, 황태와 대구, 새조개와 고막 등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고향의 맛을 지닌 메주와 한과도 말석에 살짝 끼어 있습니다.

맛과 소통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면 금상첨화

이 책에는 모두 42가지의 음식이 소개돼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도 여럿 있더군요. 반면에 된장백반이나 장터 백반, 해산물 백반 등 우리의 추억을 부르는 음식도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진정한 참살이는 우리 고유의 먹을거리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가 황석영은 맛과 추억에 대해서 쓴 어느 책에서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라고 시간의 의미를 과도하게 규정짓기도 했지만 사실 인간에게 있어 음식이란 단순히 삶을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데 어느 것보다 유용한 수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음식을 철에 따라 나누어 제 철 먹을거리를 찾기 쉽게 했다는 점과 주변의 볼거리까지 꼼꼼하게 챙겨 여행을 갔을 때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전라도 벌교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욕과 함께 짱뚱어탕을 먹는 장면이겠지요.

"이런 니기미 씨벌 좆겉애서 장사 못해먹것네이. 벨 작것들이 다 짱떼이를 찾고, 그래. 어디 한 번 주뎅이가 찢어지게 쳐먹어 봐라. 씨벌놈들아."

욕 한 그릇에 짱뚱어탕 한 그릇이라. 욕먹어 마음이 배부르고 음식은 덤으로 먹어도 되는 그런 곳에 가고 싶은 날, 이 책 한 권 달랑 배낭에 넣은 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땅  참맛/사진.글 이병학/ 도서출판 <책이좋은사람>/ 2007,4,20/1,3000원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땅 참맛

이병학 지음, 책이좋은사람(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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