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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있는 풍경>
<자전거가 있는 풍경> ⓒ 아침이슬
자전거에 관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반응들이다. 사람들은 자전거가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엔 주저한다. 위험한 차도, 유명무실한 자전거도로, 언덕이 많은 지형, 곳곳에 도사린 자전거 도둑 등 곳곳이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대기 오염, 도시온도 상승, 자동차 사고, 에너지 고갈이란 문제도 이런 현실과 맞닥뜨리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자전거는 아직까지는 현실이 아닌 가능성에 머무르고 있다. 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어려운, 아니면 아주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으로서 말이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아침이슬)은 자전거의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책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소설가 공선옥, 국회의원 박찬석, 환경부장관 이치범, 헌책방지킴이 최종규 등 18명의 저자들이 쓴 이 책엔 자전거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구는 자전거를 전혀 타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누구는 한 때 자전거를 탔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타겠다고 말한다. 위험한 자전거 도로, 자전거 도둑과 같은 이유들이 나온다. 누구는 그래서 더욱 타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어떻게 하면 좀더 사람들이 많이 탈까 고민한다. 어떤 이는 자전거에 얽힌 행복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자전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백 근 돼지와 쌀가마니 실어 날랐던 '짐바리' 전성시절

차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자전거 도로.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다닌다.
차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자전거 도로.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다닌다. ⓒ 오마이자전거 이원영
60~70년대 자전거 전성시대를 지나 지금 자동차 전성시대가 된 것은 우리 삶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더 빠른 삶을 원하고, 좀더 편리함에 기울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문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책에도 나오지만 그 시절 대한민국은 참 가난했다. 오죽하면 자전거만 있어도 부유하다고 했을까. 가장 주요한 수송수단인 자전거를 몰고 서울에서 군포로, 용인에서 서울로 짐을 옮기던 '성국이 삼촌' 이야기가 책엔 나온다.

일제시대 뛰어난 혁명가인 이관술은 짐자전거에 항일 유인물을 싣고 대구, 마산, 함흥, 청진까지 내달렸다. 이관술에 대한 추억을 꺼낸 이는 소설가 안재성이다. 그는 이관술과 경제성장기 짐자전거 하나로 청계천을 누비던 노동자들의 삶을 대비시킨다. 안재성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부와 인권의 밑거름이 된 노동자들의 땀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단어는 '짐바리'다. 커다란 방석 한 개를 철판으로 짜 놓은 듯한 안장 뒤 뒷좌석이 있는 '짐바리'는 짐자전거의 애칭이었다. 몸체의 삼각 구조물은 팔뚝만큼 굵은 강철 파이프였고, 바퀴 휠이나 살도 굵고 무거웠다. 여기에 사람들은 쌀가마니를 얹었으며 200근이 넘는 돼지도 실었다.

당시 '짐바리'는 지금의 트럭이었으며, 아이들 둘 셋은 거뜬히 실어 나르는 자가용이었으며, 아픈 환자 긴급히 옮기는 앰뷸런스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무지막지한 짐바리를 어린 꼬맹이들이 타고 다녔다는 점이다. 단 이 때는 기술이 필요한데, 왼발만 왼쪽 페달에 걸치고 타다가 속도가 붙으면 재빨리 안장 위에 올라탄 뒤, 오른발을 넘겨야 한다. 멈출 때는 자전거를 기울이면서 재빨리 한쪽 발로 지지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꽈당'이다. 아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던 시절이 바로 짐바리 전성기다.

저자들에게 아무래도 자전거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것이다. 자전거에 관한 아름답고 행복한 경험은 대부분 옛 일이다. 지금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 이들은 대부분 공포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 때 탔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타겠다'고, '아이한테 차마 타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과거 자전거는 낭만이었지만, 지금 자전거는 '전투'다.

그 점에서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자동차와 전투에 나서기보다는 과거 자전거가 도로를 누볐던 시절의 '추억'에 기댄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이란 제호에서 '추억'의 냄새가 '폴폴' 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답이 없는 것인가. 자전거는 '추억'이 되어 아름답게 퇴장하면 되는 것인가.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 어떻게 해야 하지?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과연 자전거 시대에 비해 행복해졌을까.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과연 자전거 시대에 비해 행복해졌을까. ⓒ 오마이뉴스 안홍기
최종규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자전거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이야기하며 '그래도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권한다. 54만원짜리 접이식 자전거를 타는 그는 반 년만에 자전거값을 뽑았다. 이후엔 남는 돈이다.

그 돈으로 그는 마음껏 책을 산다고 자랑하고, 나날이 몸이 튼튼해져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기름 씀씀이를 줄이면 미국 눈치와 석유 걱정 때문에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짓도 안 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는 '전도사' 역할도 열심이다.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난 사람을 만나면 땀 흘리며 수리를 해준다. 땜질용품을 자신의 자전거보다 다른 사람 자전거에 더 많이 썼을 정도다.

권지예 작가의 아들은 숱하게 자전거를 잃어버리면서도 자전거에 대한 사랑을 끊지 않고 있고, 구효서 작가는 중랑천 자전거 도로를 알면서 자전거를 즐기기 시작했다. 김선옥 시인은 안양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면서 다시 자전거와 친해졌다고 말한다. 하천변 자전거 도로를 집중 건설한 서울시가 보면 즐거워할 일이다.

하지만 레저형 자전거만으론 자동차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윤호섭 국민대 교수가 '생활 자전거 문화 정착'을 위해 털어놓는 고민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윤 교수는 자전거와 함께 진화하는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그는 처음에는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공해 문제에 위협을 느낀 그는 2000년 정월 초하루 '에너지 독립선언'을 한 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전기 자전거를 구입했다.

언덕이 많은 길에 전기 자전거는 아주 유용했다. 그러나 삼년 뒤 충전식 배터리 수명이 다하자 20kg의 폐기물이 발생했다. 결국 윤 교수는 발로 젓는 자전거로 방향을 바꾼다. 그와 함께 2004년엔 집에 놔두었던 자동차를 폐차한다.

윤 교수는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탈까'가 그의 고민이다. 그래서 내놓은 안이 바로 '자전거 전용 터널' 건설이다. 미아리 고개, 불광동 고개, 망우리 고개 등 서울 교통 요충지에 터널을 만들면 자전거 인구가 대폭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게 어렵다면 경사면에 지면 케이블이라도 설치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고갯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자전거가 레저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그는 '미아리 고개 밑에 터널이 뚫리는 꿈을 매일 꾼다'고 고백한다.

자전거를 단지 '타느냐 마느냐'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지금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전거는 '삶'과 '행복'의 차원에서 다가서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질문하는 것들이다. 소설가 하성란씨가 우리의 전철을 밟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뒤 느낀 소감이다.

"십여년 전 찾아갔던 하노이의 해질녘 길거리는 눈이 부셨다.…신호등도 교통경찰도 없었지만 마주치는 자전거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하고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행렬은 복잡한 네거리에서 줄어들지도 끊어지지도 않은 채 매스 게임을 하는 아이들처럼 서로 교차했다.…그로부터 5년 뒤 다시 하노이를 찾았다.…급격히 늘어난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밀려 자전거의 모습은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현대화는 피할 수 없고 그것은 이방인이 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늘어난 도로 위에서 사람들의 삶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라는 점에서는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하노이의 공기는 더 이상 맑지 않다.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

덧붙이는 글 | 저자 명단 : 공선옥(소설가) 구효서(소설가) 권지예(소설가) 김선옥(시인) 김연수(소설가) 김진경(시인) 박경철(의사) 박찬석(국회의원) 방현석(소설가) 안재성(소설가) 윤호섭(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이상대(교사) 이치범(환경부장관) 정성일(영화평론가) 최용원(문화방송 PD) 최종규(헌책방지킴이) 탁정언(카피라이터) 하성란(소설가)


자전거가 있는 풍경

구효서.박경철 외 지음, 아침이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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