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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강 / 코리아 소사이어티 시니어 디렉터(뉴욕)
소피아 강 / 코리아 소사이어티 시니어 디렉터(뉴욕) ⓒ 여성신문
“아시아계 이민자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지난 50년간 한·미 우호의 가교 역할을 해온 ‘코리아 소사이어티’에 이번 참사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답지하고 있다. 이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뉴욕에 거주하는 교민 1.5세대 여성들의 반응이다.

남한에서 1975년 입양돼 미국으로 온 이화영(미국명 홀리 맥기니스)씨는 무엇보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결속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등 아시아계는 미국인들 눈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기에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인들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로빈 문씨는 한인사회가 최선을 다해 깊은 애도의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아시아계를 포함한 소수민족 등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한·미 양국의 2030세대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룬 워싱턴DC 소재 ‘세종 소사이어티’는 “가해자의 국적문제가 한·미 양국 국민들 사이에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지 않길 바란다”며 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한층 더 한·미 양국의 이해증진과 우호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손목자 / 워싱턴D.C. 가정상담소 이사, 나라사랑 어머니회 이사
손목자 / 워싱턴D.C. 가정상담소 이사, 나라사랑 어머니회 이사 ⓒ 여성신문
‘존중’과 ‘배려’ 키우는 커뮤니케이션 교육돼야

‘승희 조’를 ‘조승희’로 한국식으로 부르는 것을 듣는 순간 한국인이 범인이구나, 직감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국 역사상 최초… 최악…” 등의 수식어를 들으면서 이번 사건이 상당히 오래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한국인이 관련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즉각 이번 사건을 상기할 것 아닌가.

다들 우려하듯 혐오범죄나 테러공격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통 한국인에 대해서도 은연중 생길 수 있는 반감이 더 두렵다.

우리 가정상담소에선 4월 한달간 매주 화요일 2시간가량 20여명의 한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자녀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1.5세대 30대 여성이 강사인데, 그 자신의 체험을 들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경계를 지어주고, 그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교육을 시키라”며 무조건적 애정이나 지원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부모 자식간에도 “내 아이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속에 존중과 배려가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인들 사이에선 “아이가 공부 잘 하고, 순종적인 모범생이라고 안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김붕회 / 위스콘신주립대(메디슨) 대학원 한인학생회장
김붕회 / 위스콘신주립대(메디슨) 대학원 한인학생회장 ⓒ 여성신문
“중부권 대학들과 연대해 희생자 모금운동 펼칠 것”

이번 사건은 대형 교통사고나 사망사건처럼 모두에게 정신적 공황을 안겨줬다. 그런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한인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낮은 포복자세로 관망하고 성찰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4월30일 한인학생회가 주축이 돼 교민들과 관련 단체들이 어우러져 ‘한국인의 밤’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어 이곳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홍보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번 총격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 행사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비록 미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앞으로 우리 학생회에선 사태가 진정 되는대로 중부권 대학들과 연대해 대대적인 모금운동 물결을 일으켜, 버지니아 공대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성의 표시를 하고, 지역내 홈리스나 불우이웃 등을 지원하는 행사와 캠페인을 전개해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씻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유미 / 아가페 한글학교 교장, 존-뮈어(John-Muir) 초등학교 PTO(Parents & Teachers Organization) 선출위원(위스콘신주 메디슨)
고유미 / 아가페 한글학교 교장, 존-뮈어(John-Muir) 초등학교 PTO(Parents & Teachers Organization) 선출위원(위스콘신주 메디슨) ⓒ 여성신문
‘인종 차별·공격’대처법 한인 아이들에 가르쳐야”

범인이 ‘아시아계’라고만 보도되다가 ‘남한 출신 학생’이란 표현이 30초간 세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들으며 학부모 입장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부터 걱정됐다. 아이 학교에서 6월에 대대적으로 학예회가 열리는데, 사건이 터지자 몇몇 한국 엄마들이 “분위기가 이런데 우리 아이들을 무대에 세웠다가 우~ 하고 야유라도 터지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며 학예회 포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난 “한 정신병자가 이번 사건을 저질렀지 우리 아이들은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희생을 강요하며 갑자기 ‘자숙’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한인 아이들에게 자칫 일어날지도 모를 인종적 편견에 의한 모독이나 공격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차근차근 이번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고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어디든 마음이 아파 이상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야. 혹 미국 아이들이 너보고 ‘한국의 정신병자’라고 놀리면 ‘이번 사건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미국엔 그런 사람 없니’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가르쳐줘야 한다.

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여성신문
“후유증 치유, 미국에게 한 수 배우자”

이번 사건은 한국, 미국을 따질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울증, 자괴감 등이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극단적 폭력행동으로 표출된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폭력행위가 폭발하기 전 상당히 오랫동안 특정인을 스토킹한다든지, 연쇄살인을 꿈꾼다든지 하는 행위가 지속됐을 수도 있다. 이같은 사건은 어느 정도 먹고 살 것이 보장된 나라에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극빈국에선 오히려 우울증이나 이로 인한 병적 폭력현상은 없다.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처럼 분명한 적대감에서 ‘전쟁’의 형태를 띤 공격적 폭력을 자행할 뿐이다.

그런데 사건 후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 과정에선 한국과 미국의 방식에 분명히 차이가 난다.

우선, 미국에선 이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기본적으로 이것이 어떤 사회적 과제를 남겼고, 심리적 충격은 어떻게 극복하고, 총기문제는 물론 학교공동체에서 다른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등등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까지 끊임없는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같은 이슈들에 대해 어마어마한 지원 아래 수많은 연구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그 결과물로 논문 수십편이 발표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선 어떨까? 처음 일주일간은 열렬히 떠들다가 슬그머니 종적을 감출 것이다. 물론 연구작업도 병행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흐지부지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영대 / 국제변호사
이영대 / 국제변호사 ⓒ 여성신문
총기소지 ‘기본권’…참사에도 규제 어려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역시 총기 소지와 규제에 대한 논란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후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해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 재직시 총기규제법안을 두차례나 제출했지만 위헌판결로 끝나 결국 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여기엔 근본적으로 미국의 수정헌법 2조에 개인이 무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기본권이라 명시돼 있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어떤 정치인도 이 산을 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4조엔 민병대를 설치할 수 있는 권리까지 명시돼 있다. 국가가 최종적으론 개인의 안전을 100% 담보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결론이기에 이 기본권을 침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에선 전통적으로 낙태, 총기 소지,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바로 정치적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즉,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르는 잣대다. 민주당은 오래 전부터 총기 소지를 반대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내년 대선에서 좀더 유연해졌다는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기존 강경입장을 탈피해 총기 소지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한편으론, 아직 여기선 체감을 충분히 못하고 있지만 폭발적 후유증이 우려된다. 공식적으로 한인에 대한 인종편견, 비자 면제논의 중단 등의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간접적 제한이나 제약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일지
33명 사망… 9·11 이후 美 최악의 참사

▲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이 17일 블랙스버그 캠퍼스에서 벌어진 철야촛불 집회 중 임시제단을 만들어 총기난사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17일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최대의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한국 태생의 미국 영주권자인 조승희(23)씨로 밝혀졌다.
조씨의 1차 범행은 오전 7시15분쯤에 일어났다. 그는 5주 전 블랙스버그 인근 로아노케의 총기상에서 571달러를 주고 구입한 권총을 소지한 채 존스턴홀 기숙사에 들어가 에밀리 제인 힐셔(19)와 기숙사 상담원 흑인 학생인 라이언 클라크(22)를 살해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기숙사에서 북쪽으로 800㎞ 떨어진 공학부 건물 노리스홀에 들어가 강의실 출입구를 쇠사슬로 걸어 잠그고 독일어 수업을 받던 교수와 학생을 비롯해 30명을 사살했고,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조씨 외에 총 32명이 숨지고 29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당국은 조씨의 방에서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You caused me to do this.)고 쓰인 메모를 발견, 이번 사건을 여자친구와의 갈등으로 인한 ‘치정살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씨의 여자친구로 추정되고 있는 첫번째 희생자 힐셔의 측근은 “내가 아는 한 조승희와 그녀는 무관한 사이”라고 말해 정확한 범행동기 여부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8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조씨는 현재 버지니아 공대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평소 사람을 멀리하는 외톨이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미국 한인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기금 조성, 조문단 방문 등을 마련하고 있고, 주미 한국대사관은 사건 직후 비상대책반을 구성해 현지에 영사와 행정직원을 급파, 한국 학생들과 대응책 협의에 나섰다.
한편, 이번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33명의 희생자 가운데에는 한국계 혼혈인 메리 리드(19)가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 여성신문 기자 · 20주년 기념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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