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고가 있은 후 정확히 1주일이 지난 23일, 버지니아텍 캠퍼스 한가운데 드넓은 잔디밭, 드릴필드에서는 침묵의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풍선 날리기(Balloon Release)'라고도 이름붙여진 이 행사는 노리스홀의 사고가 발생한 시기와 같은 월요일 오전 9시 45분에 거행돼 숙연함을 더했다.
버지니아텍의 하늘은 가슴시리게 파랗고
1주일 만에 정상 등교한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전 9시 30분쯤 도착해 보니 벌써 잔디밭 위는 오렌지색, 적갈색 옷을 입은 학생과 교직원 시민들로 가득했다.
바로 1주일 전 오늘은 끔찍한 사고를 암시하기라도 하듯 그렇게도 스산한 바람이 불어대고 때아닌 눈발까지 휘날려 마음을 산란하게 하더니, 이 날은 거짓말처럼 햇살이 따스하고 하늘은 가슴시릴 만큼 파랗기만 하다.
버레스홀(Burress Hall) 앞에 마련된 희생자의 추모석에는 하나하나마다 32명의 학생들이 하얀 풍선을 하나씩 들고 서 있고, 버지니아텍을 상징하는 오렌지색과 적갈색 풍선 1000여개는 또다른 학생들의 손에 나뉘어져 들려 있었다.
잠시 후 무거운 종소리가 20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한 번씩 울리고, 한 번의 타종마다 한 개의 하얀 풍선이 하늘로 힘없이 날아올라갔다.
행사를 안내하는 어떤 안내 방송이나 추모의 글귀 낭독도 없었다. 그저 가슴을 저미는 듯한 무거운 타종 한 번, 힘없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풍선 하나….
버지니아인들이여, 힘을 내자!
그렇게 서른 두 개의 풍선은 하늘 높이 하나둘 사라져 갔고, 잠시 후 파란 하늘은 뒤따라 올라간 오렌지색, 적갈색 풍선 1000여 개로 가득했다.
푸른 잔디밭 위에 남아 있는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과 파란 하늘로 사라져가는 수많은 오렌지색, 적갈색 풍선이 어우러진 사이, 군중 속 어디선가 "호키들이여, 힘을 내자(Let's go Hokies)!"를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 여기저기서 함께 외치는 "Let's go Hokies!"가 울려 퍼졌다.
추모석 앞에서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짓는 이들, 잔디밭 곳곳에 마련된 추모의 편지들을 읽으며 서성이는 이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 중인 취재단만을 남겨두고, 잔디밭을 메웠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하나둘 강의실로 연구실로 집으로 돌아갔다.
버지니아텍은 희생자들의 추모석 사이에 조승희씨의 추모석도 함께 세워두었고, 그로부터 며칠 후엔 애도의 편지 몇 장과 꽃송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일부 여론에선 가해자마저 감싸안는 '선진국다운 미국민의 소양' 운운하며 성급한 감동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 허망한 억울함과 남아있는 이들의 가슴 깊은 슬픔을 날려보내는 숙연한 자리에는 '가해자 조승희'가 설 곳이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아픔을 부둥켜 안고라도 어서 빨리 정상을 회복해 보자고 안간힘을 써보는, 남아있는 이들의 처절한 몸짓과 외침, 가슴깊은 곳에서 나오는 한숨과 눈물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윤주 기자는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에 살고 있는 두 딸의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