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왕문에서 본 무량사 전경
천왕문에서 본 무량사 전경 ⓒ 김정봉
성주사터에서 성주천을 따라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석탄박물관이 보이고 좀 더 가면 화개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은 웅천, 왼쪽은 부여로 가는 길이다. 무량사로 가려면 부여 길을 택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성주천을 버리고 웅천천을 따라간다.

웅천천은 이름까지 예쁜 아미산을 곁에 두고 흐른다. 그리 크지 않은 내이면서도 풍광이 수려하다. 만수산과 아미산이 감싸고 있는 무량사 가는 길은 험하지 않은 포근한 산길이다. 얼마가지 않아 외산에 닿는다. 보령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부여에 속해 있다. 외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무량사.

아직 이른 시간이고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오가는 이가 거의 없다. 몇몇 가게만 버섯을 내놓고 팔고 있어 절 입구도 어수선하지 않다. 정갈한 마을은 마음 또한 차분하게 한다.

절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만수산무량사'라 적힌 일주문. 만수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소리가 가볍고 또랑또랑하여 듣기에 상쾌하다. 내 정신도 초롱초롱하고 또렷해진다. 마음은 어떠한가? 잡스럽고 탁한 것이 없어지고 환해지면서 깨끗해진다. 다리를 건너 휘돌아 가면 천왕문이 반기고 오른쪽 담 앞에서 당간지주가 기개를 자랑한다.

무량사의 하일라이트는 극락전

만수산무량사 일주문
만수산무량사 일주문 ⓒ 김정봉
무량(無量)이라. 무엇을 셀 수 없다는 말인가? 천왕문에 들어서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이다. 천왕문 한가운데에 서면 적절한 조명시설을 갖춘 곳에서 석탑과 석등, 극락전의 정경이 담긴 컬러슬라이드를 보는 것 같다.

천왕문, 천왕문에서 보는 무량사 광경이 무량사 제일경이다
천왕문, 천왕문에서 보는 무량사 광경이 무량사 제일경이다 ⓒ 김정봉
무량사는 천왕문에서 보는 맛이 제일이고 절집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나이 든 느티나무 뒤에서 머리를 돌려 가며 탑과 석등, 극락전 그리고 범종각, 천왕문을 보는 것이 두 번째다. 파릇한 이끼, 나이 든 느티나무, 여러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 등, 명장면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나무와 함께 본 범종각과 천왕문
나무와 함께 본 범종각과 천왕문 ⓒ 김정봉
무량사는 9세기에 범일국사가 창건했고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창건에 관련된 유물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고려시대에 중창된 흔적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천왕문 오른쪽에 있는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이 절의 사력(寺歷)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그리 크지도 않은 것이 다부지게 생겼다. 별 다른 장식 없이 안쪽을 파내고 바깥에 테를 두르는데 그쳐 수수해 보인다.

극락전 앞에 있는 오층석탑 또한 고려시대 것이다. 기단이 넓어 안정되고 장중하게 보인다. 전체적인 인상은 점잖다고 할까? 정림사터 오층석탑을 본받아 만든 탑이다. 그리 급하지 않는 상승감은 주변 산세와 아주 닮아 있다. 노릇노릇한 살결은 왜이리 정감이 가는지? 천왕문, 느티나무, 극락전 그리고 영산전 등 사방에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나무와 함께 본 오층석탑과 극락전
나무와 함께 본 오층석탑과 극락전 ⓒ 김정봉
탑 앞에 있는 석등도 고려 때 만들어진 것이다. 상대석이 좁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늘씬하게 보인다. 장중한 석탑과 늘씬한 석등이 조화를 잘 이룬다.

무량사의 하이라이트는 극락전이다. 무량사는 임란 때 불탄 뒤 인조 때 중창하였는데 극락전도 그때 지은 것이다. 겉모양이 2층이어서 눈길을 끈다. 위엄있고 장중해 보인다.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과 마곡사 대웅보전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겉모양은 2층으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뚫린 통층으로 되어 있다.

절은 절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당대의 문장가 혹은 정치가와 인연을 맺어 더욱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다산과 인연을 맺은 강진의 백련사가 그렇고 추사와 연을 맺은 해남 대륜사가 그렇다. 무량사 가까이 있는 마곡사는 김구 선생과 인연이 있다.

무량사는 김시습과 인연이 있다. 어려서 총명하여 신동 소릴 듣고 자랐으나 그의 나이 21세 때 세조의 왕위찬탈로 방랑의 길을 택한 뒤 결국 무량사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손수 그렸다는 초상화가 영정각에 모셔져 있고 무량사 입구 왼쪽 언덕에 그의 부도가 있다.

부도 앞에 서서 만수산을 보며 그를 생각해 본다. 만수산은 여전히 비구름에 휩싸여 있고 잠깐 개었다가 비는 다시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김시습이 세상을 한탄하며 지은 시도 이런 분위기에서 지었을 것 같다.

사청사우(乍晴乍雨) 잠깐 개었다 다시 또 비 내리네
사청사우우환청(乍晴乍雨雨還晴)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다시 개었다 비 내리니
천도유연황세정(天道猶然況世情) 하늘의 이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중략)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이야 알 리 없고

청양은 장승의 고장답게 장승들이 많다
청양은 장승의 고장답게 장승들이 많다 ⓒ 김정봉
무량사에서 청양 장곡사로 가려면 606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외산은 부여, 청양, 보령으로 갈 수 있는 교통의 교차점이다. 외산에서 청양까지는 대략 20분 정도면 당도하는 가까운 거리다.

장곡사는 청양 칠갑산에 자리하고 있다. '콩밭 메는 아낙네…'로 시작하는 노래가 먼저 떠오르는 칠갑산. 산중에 일곱 군데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칠갑이라 하기도 하고 일곱 성인의 '칠'과 십이간지의 '갑'이 합쳐져서 칠갑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기도 한다.

청양 사람들은 칠갑산에 기대어 삶을 꾸려 왔다. 칠갑산 언저리에 있는 마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을어귀에 장승을 세워 놓아 청양은 장승의 고장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장승의 고장답게 장곡사 입구엔 여러 장승들을 세워 놓았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 김정봉
장곡사는 규모로 보면 그리 크지 않지만 옹골지다. 일주문을 지나 처음 대하는 것이 운학루.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장곡사를 제법 품위있게 해준다. 밑에서 보면 이름처럼 학이 양 날개를 펴고 오는 이를 반갑게 맞아 주는 듯하다.

운학루를 돌아가면 선방건물인 설선당이 보이고 그 옆에 설선당과 거의 비슷한 시기(조선중기)에 지어진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하대웅전이다.

장곡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웅전을 두 개 두고 있는 절이다. 위에 있는 것이 상대웅전, 밑에 있는 것이 하대웅전이다.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개의 절이 합쳐져서 대웅전이 두 개라는 설이 있다. 대웅전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그도 그럴 듯하다.

하대웅전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상대웅전이 있다. 상대웅전 언덕배기에 서면 아름다운 장곡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안으로 절 전체를 볼 수 있는 절이 드물기도 하지만 정경(情景)으로 따지면 장곡사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상대웅전 가는 길
상대웅전 가는 길 ⓒ 김정봉
설선당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운치가 있는데다 맞배지붕의 옆 라인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지붕선이 너무나도 깔끔하다. 일부러 눈 맛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모든 건물을 맞배지붕으로 한 것 같기도 하다.

상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경관
상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경관 ⓒ 김정봉
장곡사에 있는 많은 유물들, 하대웅전과 하대웅전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 상대웅전과 상대웅전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 좌상과 광배, 철조약사불 좌상과 광배, 석조대좌 등은 보물과 국보급의 유물이다.

이런 유물들이 눈에 중요하게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상대웅전에서 내려다보는 경쾌한 장관 때문이다. 나는 이 훌륭한 경관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은 보물로 정하였다.

또 하나 마음 속 보물은 상대웅전 맨 왼쪽에 있는 소조아미타여래다. 옆에 있는 불상은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있는데 이 불상만은 감투가 없다. 이 불상과 성주사터의 세 개의 탑 중 감투가 없는 오른쪽 탑이 오버랩 되면서 애틋한 정이 간다.

감투 없는 불상,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이야 알리 없고...
감투 없는 불상,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이야 알리 없고... ⓒ 김정봉
감투를 써야 더 예쁘고 귀하게 봐주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지만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이야 알 리 없듯이 봄은 가만히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더 난리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