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0

손번(巽幡)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미 운중보의 지형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는 들어왔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법이다. 낯선 곳에 들어오면 무엇보다 지형지물을 자신의 눈에 익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경비의 위치도 파악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형지물을 사전에 조사해 둠으로써 안전한 잠입로와 퇴로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의 몸은 팔번 중 가장 빨랐지만 그의 행동은 언제나 답답할 정도로 신중해 이런 일을 맡기에 적합했다.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인물이어서 천과가 팔번 중 손번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무각은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다른 쪽보다 인적이 드물어 행동하는데 보다 나은 듯 보였고, 손번은 자신이 데려가야 할 대상을 의외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방안에 홀로 남겨진 채 혈도를 짚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저 계집이 홍교란 년이 분명하였다.

그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훌쩍 창문 위 처마 아래에 몸을 숨기고는 박쥐처럼 몸을 거꾸로 매단 채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은 좌우 양쪽의 황촉불만 밝혀져 있어 그리 밝지는 않았는데 계집은 매우 불안한지 자꾸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군. 혐의가 있는 계집을 데리고 왔으면 지키는 사람이라도 있던가, 아니면 데리고 식사를 할 일이지.’

문을 하나 두고 다른 방에서는 식기가 부닥치는 소리와 말소리가 두런두런 새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함곡 일행은 식사 중인 것 같았다.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방안의 움직임을 살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창문의 위쪽을 잡고 몸을 회전시키며 소리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슈우욱----!

헌데 그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뭔가가 그의 미간과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것은 아주 적어 한 순간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는 일단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

그의 신형은 창문 안으로 들어오다 말고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나갔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두 개의 작은 물체는 창틀에 미세한 소리를 내며 박혀들었다.

타탁---!

손번은 놀랐다. 정말 놀라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다. 분명 계집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확인하고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사혈을 노리고 두 개의 물체가 날아왔으니 혼비백산할 노릇이었다. 날아온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창틀에 깊숙하게 박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굴까? 무엇이지?’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갑자기 방해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두 개의 물체를 날린 놈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상대가 방안 천정 모퉁이에 숨어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날아온 물체의 각도를 고려해 내린 판단이었다.

‘어째 저 년의 눈빛이 이상하더라니......’

홍교의 눈빛이 매우 불안했던 것은 아마 다른 자가 방안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날아온 물체가 빠르고 위력적이어서 오히려 창틀에 박히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식사를 하고 있는 함곡 일행이 뛰어 들어왔을 것이 뻔했다.

‘그럼 안에 있는 놈 역시 저 년을 데려가려 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안에 있는 방해자 역시 자신의 존재를 감지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것이었고, 자신이 들어가려하자 부득이하게 손을 썼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홍교란 년이 불안한 눈빛과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이유 역시 방안의 방해자가 함곡 일행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 자가 함곡 일행이었다면 모습을 드러내거나 소리라도 질렀을 터였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임무를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함곡 일행이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때쯤 되어서는 이미 뒤쫓지 못할 상황이 되도록 아주 순식간에 처리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홍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철한이 명칭도 야릇한 연근참맥법이란 고문을 하겠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함곡 일행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한 믿음은 확신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곳에 붙잡혀 있다가 자칫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밝혀지면 안 되는 여러 가지 사실이 노출되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더구나 꺼림칙한 것은 혈녹접 소유향의 태도였다. 유심히 살피는 그녀의 시선은 왠지 부담스러웠고, 어쩌면 자신의 신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더구나 그녀는 속사정은 모른 체 자신의 혈도를 제압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헌데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정말 불안하게 만든 것은 함곡 일행이 방 안을 나가자마자 창문을 넘어 들어와 방 안 천정 구석에 박혀있는 낯선 중년인이었다. 보기에도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인상이었다.

짧고 빳빳해 보이는 수염이 구레나룻을 덮고 얼굴 피부는 시커먼 듯 보였지만 창백한 것도 같았다. 게다가 다 찌그러진 검은 유생건(儒生巾)에 검은 도포를 입고 있어 어찌 보면 저승의 판관(判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무엇 하러 방 안으로 기어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생각했다면 이미 데리고 갔어야 했지만 그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한쪽 구석 천정에 달라붙어 자신을 향해 씨익 웃었던 것이다. 그 웃음은 너무나 소름기치는 것이어서 그녀는 마치 벌레가 자신의 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그렇게 불안스러워 하던 그녀의 눈에 갑자기 창문 위에서 회의(灰衣)를 입은 인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저승의 판관 같은 인물의 손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두 개의 물체가 쏘아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마 들어오려는 인물을 제지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무지 저 기분 나쁜 작자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헌데 저승의 판관 같은 중년인은 눈짓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보라고 손짓을 하더니 소리 없이 천정의 보를 잡으며 다른 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회의를 입은 인물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면서 그 중년인이 있던 곳을 향해 지풍을 날리는가 싶더니 자신을 향해 달려든 모습이었다.

자신을 노리고 온 인물이 분명한데, 일면식도 없었던 인물이니 그 짧은 순간에도 좋은 의도로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긴 중년인을 향했다.

이미 자리를 옮긴 중년인의 입가에 그 소름끼치는 미소가 떠오르며 자신을 향해 쏘아온 인물을 향해 또 다시 반짝이는 물체를 하나 던지고 있었는데 의외의 방향에서 날아온 공격에 들어온 인물은 매우 당황하는 듯했다.

“흡...!”

그것도 잠시 짧게 호흡을 내뱉은 회의의 사내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쏘아온 물체를 간신히 피하는 듯 하더니 방향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뒷목덜미를 잡으려 들었다. 아마 반드시 자신을 잡아 데려갈 모양이었다.

허나 검은 도포를 입은 중년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신형은 어느새 천정에서 떨어져 내리며 사내의 등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사내가 끝까지 홍교를 잡아채려고 시도한다면 꼼짝없이 등짝에 발길질 세례를 받을 터였다.

사내의 몸이 방바닥과 수평이 된 상태에서 빙글 누운 자세를 돌려지며 쌍장을 번갈아 내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중년인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장풍은 소리가 없는 듯 했지만 매우 위맹한 것 같아 맞으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보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