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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백인영. 1995년 경주신라문화재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날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사진은 마지막 전체 연주에서 아쟁을 연주하고 있는 백인영 명인.
가야금 명인 백인영. 1995년 경주신라문화재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날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사진은 마지막 전체 연주에서 아쟁을 연주하고 있는 백인영 명인. ⓒ 오마이뉴스 김대홍
환갑을 훌쩍 넘긴 흰 두루마기의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왔을 때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그가 연주할 곡은 가야금 산조. 악보 없이 연주하는 즉흥곡이다. 객석엔 젊은 연인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법한 아이도 있었다. 주름 가득한 어르신과 외국인도 있었다.

관객들은 방금 전 가야금 합주단이 연주한 인어공주의 주제가 '언더 더 씨(Under the sea)'와 비틀즈의 '오브 라 디 오브 라 다(ob ra di ob ra da )'라는 대중적인 음악의 유쾌함에서 체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연주자가 장구 반주에 맞춰 가야금을 뜯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조금씩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연주자가 조금씩 손놀림에 변화를 주다가 어느 순간 손이 빨라지면서 가야금 호흡이 빨라지자 객석에서 갑자기 박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두루마기의 연주자가 가볍게 미소를 짓자 박수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것을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것일까.

김해시는 수로왕 서울행차를 하면서 시민들이 수레를 타보는 체험행사를 마련했다.
김해시는 수로왕 서울행차를 하면서 시민들이 수레를 타보는 체험행사를 마련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야외무대인 탓에 분위기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무대 근처 실내야구장에선 '깡깡'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엔 자동차와 사람이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주 중간엔 갑자기 무대가 까맣게 어두워지는 일도 있었다. 거대한 쓰레기차가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주자가 곡에 집중을 하자 객석의 혼란함도 곧 수습됐다.

21일 서울 인사동 문화거리에서 열린 '수로왕 서울행차'에서 가야금 명인 백인영은 이렇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큰 박수에 그는 후속곡 '목포의 눈물'을 연주했다. 그의 고향이 전남 목포인 까닭에 아주 즐겨 연주하는 곡이다.

이날 행사는 제31회 가야문화축제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맛보기 행사다. 김해시장 등 200여명이 가야복식으로 가장행렬을 하고, 가야복식 체험, 가야 수레 체험, 외국인들이 연주하는 가야금 연주, 김수로왕 허황후 혼례 가장행렬 등과 같은 행사들이 열렸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는 '가야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음악회가 열렸다.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는 인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인도음악이 등장한 이유다. 사진은 사로드를 연주하는 바르가브 미스트리.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는 인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인도음악이 등장한 이유다. 사진은 사로드를 연주하는 바르가브 미스트리. ⓒ 오마이뉴스 김대홍
백인영 명인을 비롯,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단장 문재숙), 인도 사로드(Sarod) 연주자 바르가브 미스트리, 타악 연주자인 임원식과 제로파워, 여성 보컬리스트 장군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사회를 맡은 이는 음악평론가 김진묵. 월드 퓨전 그룹 '쌍깃프렌즈' 음악감독으로 이번 가야문화축제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날 저녁 행사는 가야금의 다양한 맛을 보여줬다. 가야금연주단은 25현 가야금을 들고 나타났다. 12줄 가야금에 비해 13줄이 더 많다. 백인영 명인이 들고 나온 가야금은 12줄 전통 가야금. 가야금과 신디사이저, 기타, 인도 현악기 사로드와 함께 하는 무대도 마련됐다. 가야금에서 전통과 함께 현대의 이미지를 주려는 주최측의 의지가 잘 드러났다.

"가야금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21세기를 리드할 악기입니다. 서양에 피아노가 있다면 한국엔 가야금이 있죠. 서양의 소나타에 앞서는 음악이 바로 가야금 산조입니다. 우리는 전통음악이라는 아주 강력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자부심 가지셔도 좋습니다."

사회자 김진묵은 여러 차례 가야금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서울 홍보행사는 성공, 축제 내용은 '글쎄'

전통 타악 그룹 임원식과 제로파워.
전통 타악 그룹 임원식과 제로파워. ⓒ 오마이뉴스 김대홍
가야문화축제는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과 수릉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가 31회로 1962년 처음 열렸다. 지금까지 5일간 열리다 올해 8일로 행사 일정이 대폭 늘었다.

6가야 행진, 가락국기 가무극, 6가야 농악경연대회, 가야병영놀이 전국가야금 경연대회 등 모두 50여개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눈에 띄는 행사는 해외예술단 초청 연주. 중국이 마련하는 변검과 용춤을 비롯, 에콰도르, 필리핀, 인도, 우즈베키스탄, 몰도바, 네팔,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공연을 맛볼 수 있다.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가 인도인이라는 점에 착안 가야의 국제성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다. 이외에 이주외국인한마당이 곁들여진다.

장군 밴드. 보컬인 장군은 판소리를 전공한 락 싱어다.
장군 밴드. 보컬인 장군은 판소리를 전공한 락 싱어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장유화상 추모제, 마당극 '여의와 황세', 구지봉에서 열리는 고유제, 토기 철기 공방전, 전시체험 등은 가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행사다. 장유화상은 허황후의 오빠로 설화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여의와 황새'는 가락국 숙왕 시절에 있었던 여의 낭자와 황새장군에 관한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이다.

김해시가 가야문화축제를 열고, 서울에서까지 관련 행사를 여는 이유는 21일 행사장을 찾은 류재만 사무국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김해가야는 김수로왕이 이도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하면서 시작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교과서에서조차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1000년에 가까운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가야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류 사무국장의 말이 아니라도 서울 행사는 꽤 성공을 거두었다. 이날 낮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8시간 동안 행사가 열리는 동안 내내 빽빽하게 관중들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관중들 호응도 좋았다.

개별 공연이 끝난 뒤,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가 나와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다. 앞에 나선 이는 진행자 김진묵.
개별 공연이 끝난 뒤,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가 나와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다. 앞에 나선 이는 진행자 김진묵. ⓒ 오마이뉴스 김대홍
이제 남은 문제는 4, 5월에 열리는 축제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것. 그런데 이 점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한 눈에 잡히는 주 프로그램이 없다. 주무대에서 열리는 행사는 걸립치기, 황금실버공연, 국악의 향연, 민속놀이경연대회, 유진박콘서트, 연합무용, 세계악기기행 등 너무 다양하다. 제각기 화려할 뿐 '이것이다' 싶은 게 보이지 않는다.

탈을 내세운 안동탈춤축제, 머드를 내세운 보령머드축제, 유등을 내세운 진주유등축제처럼 요즘 축제는 단일한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진주시가 60여년 역사를 가진 개천예술제의 연등행사를 떼 내 '연등축제'로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백화점식 행사를 이제 지양하는 추세다.

'가야금'이라는 확실한 콘텐츠를 갖고 있음에도 그 대목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해외예술단' 행사가 주 행사처럼 보이게 만든 게 아쉽다.

게다가 전국웅변대회, 영남탈춤제, 읍면동농악경연대회, 헤어쇼, 요들송, 뮤지컬 '시스터 엑트' 등은 김해나 가야역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

성공리에 진행한 서울 행사와 축제 프로그램을 비교하면서 즐거움과 씁쓸한 기분이 엇갈리는 이날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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