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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박물관 모습.
노벨박물관 모습. ⓒ 강병구
노벨상의 도시 스톡홀름

지난번 기사에서 스톡홀름이 조용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렇다고 스톡홀름에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 500년이 넘은 북유럽 중심도시로서 그간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엽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엽서. ⓒ 강병구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스웨덴이 낳은 위인인 노벨의 뜻이 머무는 노벨박물관이었다. 스톡홀름의 중심인 감라 스탄(Gamla Stan)에서, 또 그 중심에 있는 대광장 앞의 증권거래소 건물이 노벨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2001년 노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이곳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메시지와 기념품, 노벨상의 역사와 수상 내역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평화상을 제외한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된다) 모든 노벨상은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수상된다고 한다. 세계최고의 석학들을 수상하는 자랑스러움이 스웨덴 사람들에겐 자부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인지 그런 상을 제정한 노벨에 대한 평가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노벨 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여러 전시물들이 보였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아인슈타인 특별전으로 그의 논문과 이론들에 대한 설명, 관련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시적으로 전시되는 전시물들도 보였다. 주로 역대 주요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과 그들이 기증한 기증품들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소개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소개글. ⓒ 강병구
그런데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기증품과 내용이 있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소개와 그가 옥중에서 부인에게 보냈다는 빽빽한 엽서편지였다. 유리벽 안으로 보이는 내용은 너무 촘촘한 글씨 때문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지난 시절 김 전 대통령이 겪었다던 고생의 일면이 작은 글씨만큼이나 촘촘하게 다가왔다. 지지 여부를 떠나 한국 사람으로서, 지난 아픔을 딛고 이런 곳에 알려질 만한 세계적 명사와 한 나라 사람이란 것이 왠지 뿌듯했다.

오래된 향기가 가득한 감라 스탄

감라스탄으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감라스탄으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 강병구
노벨박물관에서 시작한 감라 스탄(Gamla Stan) 둘러보기는, 구석구석을 돌아볼수록 북유럽의 오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참, 감라 스탄에 대해 낯설 독자들에게 소개를 하자면, 감라 스탄은 스톡홀름의 쇠데르말름 섬과 스톡홀름 본토 사이에 있는 연결된 작은 섬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에는 왕궁을 비롯해 앞에서 소개한 노벨박물관이 있는 증권거래소와 유서 깊은 대성당과 교회 등이 위치한 곳이다. 아마 쉽게 비유를 하자면, 경복궁과 인사동이 여의도에 있는 식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왕궁 앞 광장의 오벨리스크.
왕궁 앞 광장의 오벨리스크. ⓒ 강병구
이런 감라 스탄이기에 세계 각국에서 스웨덴을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감라 스탄을 찾게 된다. 왕궁도 볼거리이지만 왕궁이 지어지던 300여 년 전부터 같이 발달한 이곳의 골목골목은 정말 특별한 매력이 있다. 차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사람도 둘이 걷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골목에 예쁜 북유럽풍의 장신구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들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하나쯤 사고 싶어진다.

골목골목을 지나 왕궁 앞에 도착하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유서 깊은, 한때는 러시아와 다투며 북유럽을 호령하던 스웨덴 왕이 살았다는 궁전이 좀 규모가 큰 단독 건물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식 경복궁을 생각하거나, 혹은 베르사유 궁전처럼 뭔가 화려한 여러 채의 건물이 즐비한 궁궐을 생각했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모꼴의 딱딱하고 육중해 보이는 것이, 왕을 지키는 튼튼한 성의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에서, 화려함 보다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스웨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고도 생각했다.

왕궁을 지키는 근위병의 모습.
왕궁을 지키는 근위병의 모습. ⓒ 강병구
티켓을 끊으면 왕궁 내부의 일부 방들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하는데, 특별히 끌리지 않아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왕궁 매표소 앞에 왕궁만큼이나 듬직한 모습의 근위병이 더 인상적이었다. 연방 관광객들의 사진세례에도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는데, 근위병 앞에 둘러쳐진 테두리를 넘어 다가가려고 하니 "넘어오지 말라"는 간단한 말로 위압감을 주었다.

오페라극장 근처에서 본 왕궁의 모습.
오페라극장 근처에서 본 왕궁의 모습. ⓒ 강병구
나중에 알고 보니 현재 스웨덴 왕은 스톡홀름의 교외에 있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에 살고 있다고 한다. '북유럽의 베르사유'라는 별칭이 있다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한번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북유럽 최고의 대학

웁살라 기차역.
웁살라 기차역. ⓒ 강병구
스톡홀름에서 교외선 기차를 타고 40여 분을 가면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웁살라대학이 있는 웁살라에 도착한다. 과거에는 스웨덴의 수도이기도 했다는 웁살라는 스웨덴 왕가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스웨덴을 세계최고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육성하려는 목표로 왕가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1477년에 창립되었다고 하니 500년이 훨씬 넘은 역사를 지닌 대단한 학교이다.

현재의 웁살라는 웁살라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도시에 가까운 모습이다. 인구 20만의 작은 곳이지만, 거주자의 대부분이 학생 등 대학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학 외에도 웁살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은 북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1260년 축조를 시작해 완공에 175년이 걸린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웁살라 성과, 웁살라 출신으로 식물 분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카를 린네의 박물관 등이 주요 볼거리이다.

북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대성당의 모습.
북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대성당의 모습. ⓒ 강병구
유명한 대학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습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여러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대학의 모습과 웁살라대학을 비롯한 북유럽의 대학 모습은 분명 달랐다.

도시 전체에 여러 건물들이 산개해있는 모습으로, 특별한 대학의 태두리가 없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서쪽에 대학 본부 건물이 있고 거기서 좀 내려오면 대학 도서관이 있다. 또 얼마만큼 걷다 보면 연구실들이 나오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 건물 사이사이에 일반 상점과 집들이 있는 모습이 대학이 도시에 스며든 느낌을 주었다.

구스타비아눔이라는 이름의 웁살라대학의 역사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이름을 따왔다는 이 건물은, 스웨덴의 고대부터의 역사 유물들과 웁살라대학 출신 유명인들의 작품들, 그리고 고대 이집트 유물까지 전시되어있다. 특히 맨 위층 돔에 가면 과거 인체 해부 강의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가운데 수술대를 중심으로 원형의 계단형 강의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웁살라의 거리를 걸으며, 스톡홀름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다시 향했다. 저녁엔 재미없는 곳일지 몰라도 스톡홀름과 그 주변의 유서 깊은 도시의 오래된 향기를 맡으며 돌아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스톡홀름도 웁살라도 인공적이지 않은 전통이 사람들의 삶 면면에 스며들어있는 느낌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서울의 끔찍한 고층건물들과 그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궁궐을 비롯한 소수의 전통건물들. 그리고 그나마도 이어진 전통이 아닌, 우리의 허위로 강제적인 느낌의 인공전통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고층빌딩만이 도시의 절대적인 볼거리가 아니라는 점을 스톡홀름과 웁살라에서 다시 배운다.

웁살라대학 본관.
웁살라대학 본관.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예고된 날짜에 기사를 계속 올리 못하는 점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4월 23일(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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