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3월 미국 거주 한인들이 다른 소수인종 시민들과 함께 워싱턴 미국의회 앞에서 "미국 이민법의 악법적 요소 때문에 고통받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며 이민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거주 한인들이 다른 소수인종 시민들과 함께 워싱턴 미국의회 앞에서 "미국 이민법의 악법적 요소 때문에 고통받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며 이민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여러 나라에서 이민온 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이민자들을 구분하는 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전체 그 민족이 처음으로 이민한 세대를 1세, 그자녀들 세대를 2세로 나누기도 하고 나이에 따라서 50대 이상은 1세대, 30대 이상 40대까지는 1.5세대, 그 이하는 2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후자는 논리적이지 못한 경우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게 분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한인 사회에서는 그렇게 분류를 하여 필자의 경우에는 유학생으로 도미하여 영주권을 취득한 1세임에도 불구하고 한인 사회에서는 1.5세로 분류되는 경향이 많다.

가장 합리적인 구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개인의 이민 목적에 따른 분류인데, '유학' '취업' '투자 이민' 등 본인의 목적으로 도미를 한 사람들을 1세로 미성년자 시절에 자신의 의지와는 별도로 가족들과 함께 이민온 1.5세, 그리고 이민 1세의 자녀로 미국에서 태어난 2세로 분류할 수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2세의 자녀들인 3세들도 많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서는 세 번째의 분류를 따르기로 한다. 즉,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을 따라 정든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 미국으로 온 경우의 1.5세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5세대, 어렵게 노력해서 전문직 됐지만

처음 뉴욕으로 유학왔던 시절부터 필자는 교회에서나 한국학교에서 중고등학생들과 생활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한 학생들 중에는 1.5세들이 많이 있었는데 일부 학생들은 미국 학교에서 적응도 빠르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며 한국학교에서 보조교사로서 다른 학생들을 돕기도 했던 반면, 다른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쁜 학생들과 어울려 가출을 일삼고 담배에 마약까지 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또한, 자신들에 대한 부모나 사회의 기대치가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만난 1.5세 한인 학생들은 부모님이 바라는 의대나 치대 법대를 가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미국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미국 학교를 다닌 한인 2세 친구들보다는 영어 실력이 떨어져서 힘들어하는 것을 여러차례 봐 왔다.

한인 사회에서 활동하는 1.5세 한인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렇게 어렵게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부모님이 바라는대로 공부를 하여 전문직을 가졌지만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계층은 어쩔 수 없이 한인들이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한인 사회의 한인회 혹은 평통 등 한인 단체에 들어가려 하고 그 단체를 통하여 자신의 비지니스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

사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 하고 한국 문화 미국 문화를 모두 잘 알고 있으니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모두 기대하지만, 사실 그들의 실력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

또한 한인 1세들과 어울리면서 한국 사람들의 안 좋은 점들을 여과없이 배우고, 또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 사람들의 안 좋은 점들을 배워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은 미국 사람이 되고 어떤 때는 또 자신을 한국 사람으로 생각한다.

한 예로, 변호사가 된 A씨는 초등학교때 미국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전형적인 1.5세이다. A씨는 변호사이지만 미국 법정에서 영어로 변론을 하는 것이 힘들어 변론 없이 서류로만 처리하는 교통사고법 등만 관여한다고 한다.

그러한 A씨가 한인 1세들 앞에서는 영락없는 미국 사람인 양 처신한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미국 시민이다'라는 식으로 영어만 쓰기도 하고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의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한국 이름을 쓰고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그것이 그 사람의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일 수 있다. 박쥐를 동물도 새도 아닌 것이라고 욕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박쥐가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1.5세 한인들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예로 본교에서 가르치는 SAT 한국어 시험준비반에 등록한 두 1.5세 한인 학생들을 들고 싶다. B와 C는 모두 6년 전인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와서 지금 9학년에 재학중인 고등학생들이다.

B는 미국에 와서 바로 미국 문화를 따라하고 영어만 사용하고 미국 사람인 것처럼 살았다. 반면 C는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 드라마를 섭렵하고 한국 미니홈피를 가지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면서 살았다. 그러니 당연히 C는 미국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고 영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두 학생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두 학생 모두 한국어나 영어에 모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모두 2세 한인 학생들에게는 열등감을 갖는 듯 했다. 특히 2세 학생들이 'FOB(Fresh off the Boat)'이라고 하여 한국에서 갓 건너온 학생이라는 뜻으로 그들의 영어 발음에 대해서 지적을 할 때에는 상당히 불쾌해하기도 한다.

조승희를 보면서 내가 반성하는 이유

버지니아텍(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의 범인이 한인 1.5세라는 보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쩌면 이러한 조승희를 길러낸 것이 우리 미주 한인 사회는 아니었는지'하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물론, 조승희라는 사람이 한인 1.5세를 대표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의 총격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무조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게 최고라는 식의 부모님들의 압박이 한창 민감한 시기의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학교만 가면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조승희도 고등학생 때는 우수한(honor) 학생이었고 버지니아텍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이라면 부모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한국어도 영어도 모두 잘 하고 한국 문화도 미국 문화도 두루 섭렵하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우리 1.5세 한인 자녀들을 한국어도 영어로 모두 어눌하고 한국 문화도 미국 문화도 나쁜 점만 배우고 이쪽 저쪽 눈치봐서 여기에도 붙었다가 저기에도 붙었다가 하는 정체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이민 100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덧붙여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힘들고 부모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힘든 청소년 시기를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타국에서 홀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2, 제3의 조승희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부모님과 교사 한인 사회가 모두 1.5세들의 어려움을 돌아봐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