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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감과 옥청문도 관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상만천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불길한 느낌과 함께 여러 가지 상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누굴까? 누가 빼내간 것일까? 아직도 운중선에 남아있을까?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추 태감이나 옥청문이 빼돌려 관 속에 넣어 들어온 것일까?'

상만천은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겁한 짓이었지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함곡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함곡을 움직이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그의 아내를 수중에 넣는 일이었다.

헌데 다된 밥에 누가 재를 뿌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지 않은 것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만약 함곡의 아내를 함곡 쪽에서 미리 알고 빼내갔다면 함곡과는 이미 건너지 못할 강을 넘은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함곡이 아닌 제 삼자가 그녀를 빼돌렸다면 기껏 수고만 해준 셈이고 그녀를 이용해 함곡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었고, 최소한 자신이 함곡의 아내를 납치하려 했다는 사실만 함곡에게 전해도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닥칠 것이다.

"빌어먹을… 일이 최악으로 꼬였군."

그의 입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이번 일의 실패는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쪽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았다.

"속하들이 책임지겠습니다."

흑의를 입은 백룡(白龍)이 마디마디 끊어지는 말투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음성과 말투는 매우 특이해 아주 듣기 거북했다.

"어떻게? 자진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갈라진 목소리에는 노기가 잔뜩 섞여있었다.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상만천이었지만 이번 일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 날이 새기 전까지 계집을 반드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빌어먹을… 너도 아래 아이들하고 움직여봐. 최소한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 만이라도 알아내야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일접에게 명령했다. 상만천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정말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 정도만이라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손을 내밀든, 아니면 아예 죽여 입을 막든 할 것이 아닌가? 상만천이 허공을 향해 짤막하게 불렀다.

"오위(五衛)!"

"예. 대인 하명을 기다립니다."

어디선가 나직하면서도 울리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음성은 결코 한 사람의 대답이 아니었고, 몇 명이 아주 정확히 동시에 한 대답이었다.

"자네들과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도와줘."

"존명(尊命)!"

다섯 명의 대답치고는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상만천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는 오위였다.

"주인어른… 이곳을 오위가 비게 되면…."

"괜찮아… 이군(二君) 만으로 충분해…."

상만천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추에게 가봐야겠어. 아무래도 내일은 금포를 입어야겠군."

그 때였다. 밖에서 한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호조수께서 대인을 뵙겠다고 찾아오셨습니다."

"호조수가?"

이슥한 저녁시간에 호조수 곽정흠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중대한 뭔가를 가지고 왔을 것이다. 마음은 급했지만 상만천은 일접과 흑백쌍용에게 나가보라는 듯한 눈짓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들어오시라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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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삼재 세 사람의 눈빛이 빠르게 교환되고 이윽고 천과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현 운중보의 형세는 용담호혈(龍膽虎穴)의 형국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서열화 한 것은 아니지만 중원무림의 백대고수를 꼽아놓고 따져본다면 아마 절반 이상이 현재 이 운중보 안에 집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절대적 고수라 할 수 있는 동정오우가 이곳에 있고 운중보 내의 고수들 면면이 또한 어디를 가도 손을 꼽을 정도의 고수들이다. 뿐이랴! 각 문파의 수장들도 대부분 들어와 있고, 동창의 고수들이 총집결해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함부로 먼저 움직인다면 먼저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매우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참는 것도 지금까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온 흉수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추 태감이 약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의자에 편안하게 기댔다. 그것은 약간 지루하긴 하지만 말을 끝까지 해 보라는 뜻. 그것을 천과가 모를 리 없다. 좀 더 짧게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처한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참을성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나서느냐?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들어 흉수가 스스로 기어 나오게 하느냐 하는 겁니다. 첫 번째 방안의 경우 너무 시간이 지체될 수 있고, 자칫 손을 쓰기도 전에 당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 운중보에 난마처럼 얽혀있는 중요 인물들을 포섭해야한다는 전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미 추 태감의 몇 마디나 행동, 눈짓만으로도 추 태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이다. 또한 그들의 대답이 아무리 간략하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추 태감이다. 상만천과도 협조가 되어야 하고 철기문의 인물들도 다독거려야 한다. 추 태감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미 태감어른께서는 두 번째 방안을 생각하고 계신 터라 두 번째 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추 태감은 벌써 두 가지를 시켰다. 상만천의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광나한으로 하여금 내일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고 전했고, 곽정흠에게 복을 죽인 인물이 옥기룡임을 넌지시 알려주라고 했다. 그러한 지시를 미루어보면 이미 추 태감은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보이지 않는 흉수는 보주로 가정하겠습니다. 제 삼자가 보주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일을 꾸밀 수 있는 인물은 보주밖에 없고 설사 보주를 이용하는 자가 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같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지금 보주의 명령에 의해 이런 상황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누가 하느냐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지금 천과가 말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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