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991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끌었던 가수 변진섭에겐 '희망사항'이란 큰 히트곡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 곡은 원래 부록 곡이었다. 변진섭은 이 곡을 앨범 마지막에 '재미삼아' 수록했다. 프로듀서였던 작곡가 하광훈은 아예 앨범에 수록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하지만 이 곡이 변진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997년 대박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안재욱은 원래 차인표와 최진실을 빛내주기 위한 조연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시청자의 관심은 안재욱에게 쏠렸고, 드라마는 안재욱-최진실 구도로 급격히 재편성됐다. 그리고 이후 안재욱은 한류스타의 길을 걷게 됐다.
이처럼 감상자들은 기획자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다른 선택을 내리곤 한다.
그룹 '천지인' 보컬 출신으로 '청계천8가'를 부른 가수 손현숙의 첫 싱글 음반 '노래이야기1-문답무용'을 들으면서 든 생각이다. 문답무용(問答無用)은 이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바위처럼'을 작곡한 유인혁이 글을 쓰고 곡을 만들었다. 1990년대 초 유인혁은 대단했다. 당시 노래그룹 '꽃다지'의 합법음반 1집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바위처럼'을 작곡했으며, 그 곡이 대학가 유행가가 되었다.
그런 그의 노래가 타이틀곡이라니 기대가 컸다. 이 곡은 '노래로 엮는 수필집'이란 음반 성격에 맞게 '가장 소중한 것'을 묻고 답하는 내용의 곡이다. 그런데 별로다. 세 번을 들었지만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시인 정호승의 시에 곡을 붙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 손현숙이 직접 글을 쓰고 곡을 붙인 '자화상', 김은수가 글과 곡을 맡은 '사랑의 노래' 등 나머지 곡도 전체적으로 지난 1, 2집과 비교하면 실망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들어도 느낌이 없었다. 음악 감상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준다면 이번 음반은 1, 2집에 비해 울림이 적었다. 뭔가 제대로 버무려지지 않은 느낌이랄까.
오히려 손현숙이 번안한 버마 음악 '어머니의 집'이 어울렸다. 이 곡은 버마의 국민작곡가 후티엔팅의 곡이다. 이주외국인밴드 '스탑크랙다운'과 몇 차례 공연을 펼치기도 한 손현숙은 버마 등 아시아 국민가요를 잘 소화했다. 쓸쓸한 듯하면서 감성적인 목소리가 그곳의 감성과 잘 어울렸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못한 이번 음반에서 귀를 사로잡은 게 바로 '어머니의 집'이었다.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우고 '아시아 노래' 음반으로 꾸몄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감상은 어차피 주관적. 판단은 감상자의 몫이다. 단 내가 이렇게 느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다음은 손현숙씨와 나눈 대화 내용 일부다.
- '청계천8가'가 상당히 유명한 노래이긴 하지만, 벌써 10년 전 일이다. 아직도 '청계천8가'의 가수로 불려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세… '천지인' 보컬 출신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좋다 싫다기보다는 아직 뭘로 딱 표현할 수 있는 게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싱글 음반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내게 됐나.
"요즘 음반시장이 참 빠르게 변한다. 그런데 내가 작업하는 속도와 요즘 풍토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보통 3-4년, 길게는 5년에 한 번씩 만들곤 했으니. … 2.5집과 같은 어정쩡한 형태보다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손현숙씨는 1집을 1998년, 2집을 2004년에 발표했다.)
- 이번 음반에선 직접 작사 작곡('자화상')을 하고 번안(어머니의 집)을 하는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 2집은 김현성씨('이등병의 편지' 작곡자)가 디렉터를 맡았다. 이번에는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사실상의 독립이다. 의욕을 부렸다."
- '어머니의 집'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론 1, 2집보다 못하다. 본인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무래도 처음 디렉터를 맡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과정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앞으로 '노래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계속 음반을 만들어낼 계획이다. 이번 음반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올 음반과 함께 봐줬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21일 서울 홍대앞 클럽 '타'에서 '노래이야기1' 발매기념 콘서틀 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작곡가 유종화 시인이 초대손님으로 나온다. cafe.daum.net/liveclubta. 02-2658-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