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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에 찾은 일산 킨텍스 ‘서울모터쇼’ 전시장에는 행사 마지막 날을 맞아 많은 시민들로 붐볐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는 ‘레이싱 걸’들이 환한 미소로 관람객들을 맞이했고,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그녀를 향해, 연신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졌다. 이번 행사에서 그녀들은 전시된 차들 못지않은 ‘모터쇼의 주인공’이었다.

세련된 옷차림,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 작고 갸름한 얼굴, 동그랗고 촉촉한 눈, 뽀얀 피부, 머리카락 밑 가는 목덜미, 미니스커트 밑으로 매끄러운 다리.

카메라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 속에 그녀들은 ‘2007년형 미인’의 구성요건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옷차림과 장신구, 머리 스타일들은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고 있었고 보는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들의 겉모습만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있을 뿐,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상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본질이 사라지고 유행과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을 전파하는 하나의 ‘상품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 그녀의 '화려한 아웃핏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 손기영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라마와 잡지 등 패션의 발원지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가씨(Girl)’들은 유행을 선도하면서 주변의 온갖 사람들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전파하는 ‘유행의 전도사’다.

또한 그녀들에 의해 이식되어 자리잡게 된 유행은 대중문화로 널리 퍼지면서, 사회 각층으로 번져나간다. 즉 어느 틈엔가 그녀에게 침투한 자본주의는 ‘소비문화의 환상’을 통해, ‘걸어 다니는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새로운 유행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를 평가받기 위해 그녀들을 ‘시선의 노예’로 만든다.

즉 포장은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포장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달려있다. 따라서 그녀는 항상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타인의 인정여부를 확신할 수 없을 때는 불안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들의 취향이 바뀌면 그녀들은 불안한 마음에 얼른 지금까지의 포장을 바꾸고, 또 다른 유행 새로운 상품을 끝없이 쫓아다니게 된다.

이처럼 유행이 걸어놓은 ‘시선의 마법’은 그녀를 시대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데 몰두하게 만들고, 겉모습만을 문제 삼는 ‘감각적 인간’이 되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목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며, 부단히 변화하는 표면의 세계가 주도권을 잡는, 다시 말해 ‘이미지'가 본질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의 저자 강심호는 이러한 현상이 “도시적 삶의 감각적이며 피상적인 소통관계 속에서 비롯되며, 이를 위해 상품이나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한 끊임없는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내면의 자아는 그대로 둔 채 겉모습만을 멋지게 포장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획득하려는 시도이고, 이는 본질과는 무관하게 분리된 표면들의 조합이 다시 본질을 재구성해,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즉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 본질을 재구성하는 '이미지의 효과' ”라고 주장한다.

며칠 전 뮤지컬 배우 박해미가 자신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혀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얼짱. 몸짱’ 열풍, ‘명품족’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외적 이미지와 소비문화에서 찾으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요즘, 내면의 가치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그녀의 커밍아웃은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고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내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등등 자신의 삶에 있어 중요한 내면의 목소리를 지금 이 순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유행이 걸어놓은 마법에 빠진 세상의 백설공주들에게 묻고 싶다.

내 자신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삶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매몰되어 살아가는 것은 분명 다르다. 유행이 창출한 감각적인 이미지로 세상과 소통해 온 나머지 당신의 목소리를 잊어버렸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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