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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있는 작은 화분들
거실에 있는 작은 화분들 ⓒ 정현순
몇 개의 꽃 화분을 사왔다. 오래 전부터 화초 키우기를 좋아했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조금 소홀하게 되었다. 잘 자라던 화초도 겨울이 지나고 나면 몇 화분씩 죽어 빈 화분이 쌓여가고 있었다.

정은 하나라고 하더니만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후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던 화초가 죽어도 그전처럼 미안한 마음이 덜 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다. 그런 내가 다시 꽃 화분을 사들고 오게 된 것은 남동생의 변화 때문이었다.

지난주 남동생 집에 갔었다. 동생은 베란다에서 화분갈이를 하고 있었고, 운동기구가 놓여 있던 거실에는 처음으로 보는 삼단으로 된 앵글에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이게 다 웬 거야?"
"내가 술 끊으려고 취미로 키우는 거야."
"술을 끊다니? 왜 술 끊을 생각을 다했니? 조금씩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적당히가 안돼. 그리고 술 깰 때 기분이 영 안 좋더라고…."

그러면서 화초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이것은 실내공기를 좋게 해주고, 저것은 부자되는 화초, 이 꽃이 피면 향이 기가 막히게 좋고…" 그동안 공부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화초 키우기야?"
"지난번에 동서가 관음죽, 동백등 큰 화분을 보내왔는데 그것들을 보면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

난 올케에게 "그럼 동생은 요즘 술 아예 안 마셔?" 하고 물으니, "아주 안 마시지는 않아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조금씩 마시고 밖에서는 안 마시고 들어와요. 자신이 소문을 냈대요. 술 끊었다고" 한다.

동생은 5년 전에 담배를 끊고 아직까지 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술을 끊는다니 사람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생존에 계실 때 화초를 참 좋아하셨다. 그땐 집에 무슨 화초가 있고, 빨간 꽃이 피었는지, 노랑꽃이 피었는지, 어떤 화초가 죽어나가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내가 화분을 사가지고 가도 전혀 몰랐던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키우던 화초도 분갈이를 해서 화분 앵글에 올려놓았고 이름표도 모두 달아주었다. 동생의 그런 변화가 정말로 신선하게 보였다. 올케는 "술은 덜 마셔서 좋은데 화분갈이 할 때는 옆에서 도와주어야 해요" 하면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생은 "누나 내가 잘 키워서 분양해줄게" 하며 웃는다. 난 "그래 기다릴게"라고 말한다.

화분들을 둘러보면서 "정말 이 화분 네가 다 산 거니?" 하고 다시 물었다. 동생의 새로운 변화가 진짜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응 내가 샀지. 인터넷에서" 동생은 아직 화초 길러 본 경험이 없어서 작은 화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화초 기르기 이력이 생기면 '선인장과 난'을 키워볼 계획이란다. 또 집안에 초록의 화초가 많으니 공기도 좋아졌다고 한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화초한테 인사하고 말도 하니?" "아니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고…" 하며 멋쩍어 한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화초를 키우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병이 들어 비실비실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잘 이겨 나가기를 희망해 본다. 하여, 선인장과 난도 키우고 나한테 분양도 해줄 만큼 성공했으면 좋겠다.

동생 덕분에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내 취미를 되찾은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새삼스럽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세히 보니깐 혈색도 좋아지고 어딘가 여유로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새로 사온 화분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보니 괜스레 마음이 풍요로워진 것 같다.

음주 대신, 화초 기르기를 선택한 동생. 술을 다시 마신다 해도 나이 들어가는 동생에게도 화초 기르기는 정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좋은 취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다는 금연에 성공을 했으니 이번에도 꼭 성공할 것이란 믿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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