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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우리 회사 옥상정원 전경
ⓒ 정학윤
저희 회사는 대구 범어동에 있는 어떤 5층 건물의 제일 위층에 입주해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신축 빌딩에서, 약 4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그곳에 비하면 너무 낡은 건물인지라, 화장실이며,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공조 시설과 오후 6시 30분경이면 운행을 중단하는 엘리베이터 등 이것저것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매년 4월경 임대기간이 만료될 즈음이면 오너를 포함한 전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좀 더 편리한 건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100평 정도의 공간을 쓰고 있는 우리 회사의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고, 주변과는 상대적으로 싼 편인 이곳의 임대료가 주는 혜택과 고객들이 감당해야 할 불편 그리고 인테리어 등 투자한 금액 또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 늘 구두선에서 그치고 맙니다.

올해도 '회사 이전 작전(?)팀'이 꾸려져서 이사할 만한 적당한 건물이 있는지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포기했습니다. 대구 범어동에 있는 어떤 공공기관에 들락거려야 하는 회사의 특성상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의 반경 1㎞ 이내에서 골라야 하는데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특히나 올해에는 재건축 재개발 붐으로 인해 주변에 있던 기존 건물들이 많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 정원석 틈에 난 돌나물
ⓒ 정학윤

▲ 라일락이 한창입니다. 여름이면 이곳에 매미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맴맴 거립니다
ⓒ 정학윤

▲ 향나무 사이에 핀 민들레
ⓒ 정학윤

▲ 정원에 구석에 있는 홍매화(3월 29일 촬영)
ⓒ 정학윤

▲ 정원에 구석에 있는 홍매화(3월 29일 촬영)
ⓒ 정학윤
사실,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낡긴 했어도 도심 가운데 있는 것치고는 비교적 주차 여건도 좋고, 탁 트인 옥상정원이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늘 위안을 삼는 부분이지요.

옥상정원은 약 15평 정도 됩니다. 건물 제일 위층에서 우리가 입주해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공터로 남겨두었고, 그곳의 일부를 정원으로 꾸며 두었습니다. 비싼 땅값에 수익을 내기 위하여 빈 공간 없이 촘촘히 건물들을 지어대는데, 오래 전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이렇게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탁 트인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한 일입니다.

옥상 정원은 정원석으로 치장한 구식입니다. 그곳에는 향나무, 장미, 홍매화, 라일락, 철쭉 등이 심겨져 있고 새들이 날아오는가 하면 여름이면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들 사이에는 민들레 돌나물 등 여러 가지 식물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 은행에서 나누어준 상추씨. 여섯 봉지에 든 것을 꺼내 놓음
ⓒ 정학윤

▲ 상추밭에 물을 주고 있는 동료 여직원
ⓒ 정학윤

▲ 출입금지. "상추가 자라고 있어요"
ⓒ 정학윤
지난 금요일, 직원 한 명이 은행에 갔다가 은행에서 나누어주는 '상추 씨'를 얻어 와서는 정원 구석에다 상추밭을 만들자고 하더군요. 점심시간이 지나서 장난삼아 직장 동료 몇 명과 상추밭을 만들었습니다.

장비가 마땅치 않아서 손으로 흙을 일구었지요. 음… 흙냄새. 손으로 흙을 만져본 지가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허어~ 참! 손톱 밑에 흙이 들어서 새카만 손톱이 되었습니다.

"올 여름에는 여기서 난 상추로 삼겹살 파티나 열자"며 흐믓해 하고 있는 우리. 성급하게시리 삽겹살을 살 사람까지 정해두었습니다. 아마 내년 즈음이면 이 건물에 정이 더 많이 들어서 이사를 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낡은 건물이 싫다지만 낡은 불편함보다는, 그곳 정원으로 날아드는 새들과 매미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관리하지 않아도 제멋대고 피고 지는 꽃들에 눈이 더 쏠리고, 팍팍한 일상에서 오히려 느슨한 여유를 가지게 하는 이 구닥다리 건물이 주는 풍요가 더 좋아지는 요즘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만한 건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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