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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으로 만든 꽃반지, 꽃반지에는 풀향기가 가득하다.
제비꽃으로 만든 꽃반지, 꽃반지에는 풀향기가 가득하다. ⓒ 김민수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린다. 만개한 도심의 벚꽃들이 이제 봄을 다 몰아왔으니 꽃비가 되어 내리겠다고 작은 바람에도 애써 피운 꽃잎을 미련 없이 놓아버린다. 그것이 꽃의 마음이리라.

서울 하늘, 조금이라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들꽃들이 만발하다. 워낙 생존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다 보니 귀한 대접을 받지도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피어나고 그래도 그 누군가는 따스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통해 많은 추억들을 떠올리고, 추억들을 만들어간다.

민들레, 줄기의 양끝을 잘라 불면 풀피리가 된다. 풀피리 소리에는 풀향기가 가득하다.
민들레, 줄기의 양끝을 잘라 불면 풀피리가 된다. 풀피리 소리에는 풀향기가 가득하다. ⓒ 김민수
막내와 산책하는 길에 꽃반지를 만들어 고사리 손가락에 끼워주고, 민들레 줄기를 뽑아 풀피리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와 누나들에게도 하나씩 만들어 주겠다며 기술(?)을 전수받는 아이를 보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이 뭐 그리 먼 곳에 있나?

선괭이밥, 노란빛의 이파리가 아름답다(강원도).
선괭이밥, 노란빛의 이파리가 아름답다(강원도). ⓒ 김민수
어제는 지천에 있는 꽃들을 뒤로 하고 좀 특별한 꽃을 만나겠다고 왕복 400km가 넘는 길을 다녀왔다. 만나고 싶은 목록에 들어 있는 꽃, 그러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계곡 양편을 노랗게 물들인 선괭이밥 군락지를 만났다. 막내가 좋아라 계곡 사이를 오가며 봄꽃들과 눈맞춤을 한다.

조팝나무, 꽃눈이 온 산을 하얗게 물들여간다.
조팝나무, 꽃눈이 온 산을 하얗게 물들여간다. ⓒ 김민수
4월, 꼭 이맘때 피어나는 꽃들이다. 요즘은 20여 년 전과 비교해 보면 대략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개화시기가 앞당겨진 것 같다. 지구온난화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연들에게 미안하다.

우리의 경우도 배고픔이야 옛날 같지 않지만 아직도 하루 세끼를 건사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조팝나무를 보며 이팝(쌀밥)을 생각하는 아픔이 없어야 할 터인데 생각하니 바라보면 조금은 마음 아픈 꽃이기도 하다.

산자고, 아침햇살을 가득 머금고 피어날 준비를 한다.
산자고, 아침햇살을 가득 머금고 피어날 준비를 한다. ⓒ 김민수
지금쯤 나가면 화들짝 피어 있을까?

공교롭게도 올해는 이들이 활짝 핀 모습을 보질 못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한 연유다. 시간을 맞추면 날씨가 협조를 하지 않아 잔뜩 웅크린 모습만 보았다. 한두 송이 만나는 것으로도 행복했는데 공원둔덕에 군락지가 있다. 서울 하늘에 산자고 군락지, 애써 가꿔주지 않았어도 그렇게 넉넉하게 존재함이 고맙다.

꿩의밥, 양지바른 무덤가와 언덕에 피어난다.
꿩의밥, 양지바른 무덤가와 언덕에 피어난다. ⓒ 김민수
그런데 어디 그들뿐일까?

지금 서울 하늘에서 꽃잔치를 벌이고 있는 그들 모두가 자기들 스스로 피어나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기들의 모습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산자고뿐 아니라 꿩의밥, 꽃마리, 민들레, 씀바귀, 냉이, 꽃다지, 개불알풀꽃에 이르기까지 많은 군락지들이 있다. 인위적인 군락지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군락지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단풍나무와 꽃등에, 단풍나무의 꽃은 작아서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단풍나무와 꽃등에, 단풍나무의 꽃은 작아서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 김민수
서울 하늘에는 꽃만 피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면 곤충들도 하나 둘 깨어나 서울 하늘을 날고 있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언제 올라오나 싶었는데 봄비 두어 번에 꽃과 함께 피어나고 있다. 작은 꽃등에 한 마리, 그가 오니 단풍나무의 작은 꽃이 더 예쁘게 빛난다. 함께 있음으로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것, 그것이 자연이다.

큰개불알풀꽃,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큰개불알풀꽃이란다. 그러나 선개불알풀꽃에 비하면 얼마나 큰지 모른다.
큰개불알풀꽃,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큰개불알풀꽃이란다. 그러나 선개불알풀꽃에 비하면 얼마나 큰지 모른다. ⓒ 김민수
봄까치꽃이라는 이름도 만들었다는데 나는 여전히 큰개불알풀꽃이 맘에 든다. 씨앗이 맺히면 영락없이 개불알을 닮았는데 얼마나 멋들어진 이름인가? 사람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정겨운 우리 이름들도 불경스럽게 여겨서 '봄까치꽃'이라고 포장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봄맞이꽃, 이미 봄꽃들이 화사할 때 피어나는 늦잠꾸러기 봄맞이꽃이다.
봄맞이꽃, 이미 봄꽃들이 화사할 때 피어나는 늦잠꾸러기 봄맞이꽃이다. ⓒ 김민수
봄맞이를 하려면 좀 일찍 피어날 것이지, 봄꽃들 다 피어날 무렵에 피어나 봄맞이를 하면서도 봄맞이꽃이란다. 나는 출근길에 꼭 이들과 먼발치에서 눈맞춤을 한다. 송파에서 잠실대교를 건너 동부간선도로로 진입하는 곳 잔디밭에 냉이, 꽃다지, 민들레, 봄맞이꽃이 한창이다. 하필이면 그곳에 피어 모델이 되어주지도 않는가 싶다가도 사람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그곳에 피어난 지혜를 보는 듯하다. 그래,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았다.

벚꽃, 나무꽃들이 앞다퉈 피어나자 벚꽃은 꽃비를 내리며 내년을 기약한다.
벚꽃, 나무꽃들이 앞다퉈 피어나자 벚꽃은 꽃비를 내리며 내년을 기약한다. ⓒ 김민수
이렇게 봄꽃들이 꽃잔치를 벌일 무렵이면 벚꽃들이 꽃비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잔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흙을 바라보자. 그러면 그곳에 피어난 꽃들이 화사하게 웃으며 꽃잔치에 초대할 것이다. 잔치는 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덧붙이는 글 | '선괭이밥'을 제외한 꽃들은 모두 서울하늘 아래서 요즘에 만난 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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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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