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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의 <스승의 옥편>
ⓒ 마음산책
한문학자인 지은이 정민은 두 분의 스승을 이야기한다. 한 분은 대학 4학년 때 만난 이기석 선생이고 또 한 분은 김도련 선생이다. 이기석 선생의 유품을 말한다. 하도 많이 보아 말려들어가고 너덜너덜해진 <한한대자전>과 <한화대사전>이다.

사모님의 분부로 선생님의 손때 묻은 그 책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접착제로 붙이고 수선해서 책상맡에 곱게 모셔두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중략)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 (중략) 가까이에 여쭤볼 스승이 안 계시니, 오늘도 나는 사전을 찾고 또 찾는다. (16~17쪽)

어쩌면 학문이란 사전에서 시작해서 사전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씨앗과 결실에 비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결실을 이루는 것은 아닐 테지만 공을 들인 학문은 사전에 어떤 흔적을 남겨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전을 선물한다는 것, 선물 받는다는 것은 각별한 뜻이 있고 지극한 의미가 있다. 예컨대 학문의 출발이나 정진을 대신하여 나타내는 사물일 수 있겠다. 예전 졸업식 때 사전을 선물 받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한다.

지은이는 '선인들의 독서법'이라는 글을 통하여 '문리(文理)를 깨우친다는 것'의 의미,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의미를 들려준다. 문리를 깨우친다 함은 '한문 문장의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고, 박람강기라 함은 '박람'이 '이 책 저 책 많이 읽었다'는 뜻이고 '강기'는 '읽은 글들을 다 기억하고 외운다'는 뜻이라 풀어준다.

선인들의 독서법 '초서(鈔書)'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초서란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에 밑줄 긋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베껴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초서는 말하자면 메모를 해가며 읽는 독서다. 처음에는 그냥 책 내용을 발췌해서 베껴 쓰다가, 이것이 익숙해지면 다시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중략) 이른바 주견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212쪽)

그렇다면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사물을 이해하는 안목'을 세우기 위한 '식견(識見)'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식견이 생겨야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정약용의 독서법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이른바 '구슬을 꿰는 독서법'이다. 즉 갈래와 체계를 세워 읽어나가야 그 읽은 내용들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책을 읽다가 어느 하나가 걸리면 계속 관련 자료를 찾아나가는 방식의 독서법도 듣는다. 이참에 '문장론'도 배워보자. 신완이라는 사람의 말이다.

문(文)이라는 것은 말이고, 장(章)이라는 것은 법이다. 사람은 반드시 뜻이 있은 뒤에야 말할 수가 있고, 말은 반드시 법이 있은 뒤에야 글로 지을 수가 있다. 그런 까닭에 글은 뜻에 바탕을 두고 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49~250쪽)

정민의 <스승의 옥편>은 선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리하여 "독서는 푹 젖는 것"이라고 한 이덕수의 말, "책을 덮은 뒤 책 속의 내용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면 산 독서"라고 한 김창흡의 말 등을 되새기게 한다.

선인들의 삶도 돌아보게 한다.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독서 텍스트로 삼았다고 하는 공명선의 일화가 인상 깊다.

지은이는 말한다. 좋은 글은 결이 있다고. 또 좋은 책은 알려주는 대신 일깨워준다고. 그리고 책을 제대로 읽으면 중심이 잡힌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내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사람이 늙어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서의 힘 때문이다. 독서는 남들이 다 보면서도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준다. (중략) 독서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이다. 촉수를 다듬어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다. 안테나를 세우면 그전에 걸리지 않던 신호가 다 잡힌다. (205쪽)

밑줄을 많이 치게 하는 책이다. 인용문에서 읽을 것이 있고 그 인용을 풀이한 것에서 또 읽을거리가 생겨나는 책이다. '책읽기와 글쓰기'편이 특히 그러하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정민 / 펴낸날: 2007년 2월 20일 / 펴낸곳: 마음산책 / 책값: 1만원


스승의 옥편 - 한문학자의 옛글 읽기, 세상 읽기

정민 지음, 마음산책(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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