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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이 목격한 백구의 모습
여고생이 목격한 백구의 모습 ⓒ 동물사랑실천협회
지난 1월 한 동물단체에 전주에 사는 한 여고생의 제보가 접수됐다. 그 여학생은 보충수업이 끝나고 가는 길에 두개의 철장이 실려 있는 중형트럭 주위에 학생들이 몰려 있어 이상해서 다가갔더니 그 안에 백구 한 마리가 다리가 철사에 묶여 꺾인 채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친구가 이미 등교시간부터 개가 그런 상태로 있었다고 말했다. 등교시간은 오전 9시. 그때가 오후 2시였으니 5시간 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고생의 증언에 따르면 개는 완전히 탈진 상태로 입도 벌어지고 눈만 껌벅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평상시에도 유기견으로 보이는 개들이나 애완견들이 3∼4마리씩 갇혀 있었다는 그 트럭의 주인은 근처에서 식용견 농장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흘 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회원이 백구를 찾으러 전주에 찾아갔으나 돌아온 것은 백구가 도망갔다는 농장주의 답변.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이 사건을 동물학대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경찰은 '혐의 없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하고 사건을 넘기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경찰 측은 "당시 그 개가 너무 사나워 묶을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동물단체는 누가 봐도 동물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이 분명한데 '혐의가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 6조 2항에는 '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유없이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주형 인천광역시 수의사협회 회장은 "사진만 보고서도 엄청난 학대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네 발 달린 동물은 열중쉬어 자세를 할 수 없는데, 아마 저 자세였다면 골절이나 탈구 중 어느 한 증상이 일어났을 것이 확실하다"고 수의학적 조언을 내놓았다.

동물보호 의식수준 높지만 법적 제도적 장치는 매우 미비

지난 2006년 11월, 40대 주부가 아파트 17층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지체장애 3급인 김씨가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남편이 집에서 키우던 새끼 고양이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자 이에 충격을 받은 김씨가 뛰어내린 것.

남편 강아무개씨는 "평소 옆집에 들어가 말썽을 피우던 새끼 고양이를 홧김에 던져버렸다"고 말했다(<쿠키뉴스> 2006년 11월 5일자 기사 참조). 그런데 2007년 1월 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가족이 갈등을 빚은 사례 중 하나로 다루자 다시 논란이 일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측은 당시 고양이를 던져 죽인 행위가 동물학대죄이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남편의 심적 부담을 고려해 고발조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이 죽은 아내를 단순히 애완동물에 집착하여 돌발행동을 한 것으로 치부하자, 이 사건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즉결심으로 넘어가 5만원의 벌금을 무는 것으로 끝났다. 동물보호법 6조 1항에는 '누구든지 동물을 합리적인 이유없이 죽이거나 잔인하게 죽이거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방법으로 죽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동물보호과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민을 대상으로 동물보호의식을 조사했다.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동물학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83.8%에 이르러 동물보호 의식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동물보호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낮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71.4%였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동물보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대다수(89.2%)가 동의하고 있었다.

또 동물 소유자가 동물을 심하게 학대할 경우 동물을 소유자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에 대다수(92.8%)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은 높지만 그에 따른 법적 제도적 장치는 매우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동물학대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이유 3가지

우리나라에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1991년. 그러나 이제까지 동물학대로 처벌된 사건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동물학대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3가지 경우다. 첫째 경찰과 일반시민들이 어떤 것이 학대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둘째 무엇이 학대인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아 흐지부지되는 경우, 셋째 동물학대가 명확한데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경우이다.

고양이를 베란다에서 던져 죽인 행위가 학대임이 분명한데도 이것이 미약하게 처벌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종종 우리는 동물에게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접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학과 교수인 제임스 서펠은 <동물, 인간의 동반자>라는 글에서 "개와 고양이에 미친(?) 인간을 다룬 기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의 속성상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특이하거나 별나거나 과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선정적인 기사를 원하는 언론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의 모순 하나를 지적한다. 한쪽에는 경제적인 공헌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보살핌을 받는 반려동물들이 있지만, 한쪽에서는 오직 인간의 살코기를 위해 좁은 우리에서 물건처럼 취급 당해 죽는 가축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 가장 부담이 적은 해결책을 취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기르는 동물을 잔인하게 착취하는 행위를 비판하기보다 반려동물 기르기를 어떤 식으로든 얕보거나 흠잡는 태도를 선택한다는 것.

간디 "한 나라의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뒤로 꺾여 묶인 백구를 보면서 고문으로 파괴된 인권의 중요성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고양이를 따라 죽은 이상한 아내가 부각되면 홧김에 고양이를 떨어뜨려 죽이는 행위는 괜찮은 것일까.

까뮈가 닭을 죽이는 모습을 본 이후 단두대 폐지에 관한 글을 썼고, 그것이 프랑스의 사형제폐지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연쇄살인범의 범죄행위가 동물학대에서 시작된다는 조사보고는 전혀 무의미한 것일까? 동물학대와 가정폭력의 상관성을 다룬 기사들도 자주 접한다.

스위스와 독일은 1992년과 2002년 각각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한 헌법조항에 동물을 포함시켰다. 많은 동물보호운동가들은 "사람들은 흔히 '밥 먹고 살기 편해지니 동물까지 걱정한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화 될수록 인간에 의해 이용당하는 동물들이 많아지게 되고 따라서 동물보호에 대한 사회적 의무도 더 절실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초의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1876년 영국에서였고, 이는 우리나라보다 115년 앞선 것이었다. 영국사람들이 동물을 더 많이 사랑해서가 아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무분별하고 잔인한 동물실험이 자행됐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성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간디의 말처럼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선하고 윤리적인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기준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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