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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욱의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 창비
김상욱의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은 일명 '시 에세이'다. 시에 대한 논리적 접근이 아닌 정서적 접근을 시도한다.

책은 네 개의 시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의 말 속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전제조건 두 가지를 발견한다. 하나는 '그리움'이고 또 하나는 '쓸쓸함'이다.

지은이 자신이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를 재미있게 풀어놓는다. 경상도 남자라 '거리움'과 '설설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란다. 농은 농이라 하더라도 '그리움'과 '쓸쓸함'으로 시의 바탕에 있는 정서를 잡아채는 눈은 남다르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몸을 돌려 준 방향으로 하늘을 보니/ 산맥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라고 노래하는 나희덕의 '초승달'은 '배려'의 의미로 읽어낸다. 그렇다면 시 속의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이나 '굽은 손등 말고는 제 몸을 보여주지 않는 초승달'은 '배려'의 이미지라 할 것이다.

좋은 시도 좋지만 좋은 시를 찾아주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좋은 시들을 찾아서 좋게 읽어주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 안을 거니는 즐거움을 준다. 읽는 중에는 의외의 시들도 눈에 띈다. 굳이 예를 들면 윤제림의 '굴-해우소' 같은 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이 시와 친해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언어 자체를, 혹은 그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아는 것은 시 읽기의 첫 걸음마를 뗀 것과 다를 바 없다. (중략) 시 읽기에서 걷는 연습은 시가 지닌 마음의 결을 쓰다듬는 일이다. 이 마음의 결을 일상의 언어는 감정이라고 부르고, 또 시라는 특별한 놀이에서는 정서라고 말한다. (중략) 그 차이는 정서가 감정에 비해 잘 다듬어진 마음의 결이며, 한소끔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46쪽)

시의 정서에 대해 차근차근 잘 풀어놓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인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의 배경 즉 삶을 읽는 것, 이것이 시 읽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요의 노랫말도 함께 실어다 준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다. 지은이의 도움을 받아 읽고 보니 뭉클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나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런 구절들이 특히 그렇다.

최두석 시인은 '노래와 이야기'라는 시에서 아포리즘 같은 시 한 구절을 펼친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라는. 이 구절을 두고 지은이는 한 바퀴 풀어 "노래는 마음을 울리고 이야기는 생각 속에 박힌다. 감성과 이성으로 각기 달리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들려주는 조향미의 '함양 군내버스'는 새롭다. 노년의 나이와 노인의 삶을 읽는 눈이 새롭다. "일찍 차에 오르니 할머니만 다섯 먼저 타고 계시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노친네들은 서로 거리낌없다/ 할매는 올해 나이가 몇이오/ 나는 아직 얼마 안 돼요 칠십서이/ 아직 젊구마 한참 농사짓것네" 현장이 생생하다.

지은이는 '노인'을 일컬어 '조금은 느린 사람들'이라 지칭한다. "조금 더디게 걸으며, 조금 천천히 일어서고, 조금 굼뜨게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 옳은 말이다.

처음엔 그저 흔하디흔한 해설서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포근히 와 닿아 쌓이는 어떤 것들이 생겨남을 감지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김상욱 / 펴낸날: 2007년 3월 5일 / 펴낸곳: 창비 / 책값: 9800원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김상욱 지음, 창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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