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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을 제기한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을 제기한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이미 지난달 고위급 협상 과정에서 미국 협상단이 노동 분야 등에 대한 추가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후, 미국 쪽에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여전히 "미국과의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전문가들은 내주 초에 노동과 환경분야 등에 대한 미 행정부의 추가협상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는 11일(미국시간) 워싱턴 헤리티지재단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노동과 다른 조항들에 대해서 미 행정부와 의회간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한국 쪽에도 이런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의들이 끝나면 향후 방안을 한국 쪽과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 의회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기존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 행정부는 페루 등과 FTA를 체결하고도 의회의 요구에 따라 이들 부분에서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환경·분쟁해결... 연이은 미국의 재협상 요구

지난해 중간선거로 다수당이 된 미 민주당은 행정부와 새로운 무역정책 도입 여부를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미 행정부 입장에선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 의회가 통상협상 권한을 위임해준 무역촉진권한(TPA)법이 오는 7월 1일 끝나기 때문이다. TPA 기간 연장을 받기 위해서라도 민주당 요구를 최대한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새로운 통상정책은 '노동과 환경기준 강화' '자국 노동자 보호' 등을 담고 있다.

노동 분야에서는 "FTA 상대국이 자국 노동법이 아닌 국제적 노동 기준을 따르도록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노동·환경 분야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특별분쟁 해결절차가 아닌 통상적 분쟁해결 절차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미FTA는 각각 자국의 법을 준수토록 돼 있고, 분쟁시 특별분쟁 해결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

따라서 미 행정부가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이 부분이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웬디 커틀러 대표도 "미 의회와 노동조항 및 FTA 관련 다른 조항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공화당인 미 행정부 입장에선 TPA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따라서 노동과 환경 등이 강화된 민주당의 새 무역정책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재협상 없다", 그러나...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덕수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덕수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커틀러의 발언 소식이 전해진 12일에도 정부 쪽에선 여전히 "재협상은 없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하고 나온 후 "재협상을 안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난 10일에도 국회에서 "정부는 미국 정부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제1차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FTA) 타결 이후 새로운 제안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미국 정부에도 이를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대신 다른 FTA처럼 최종 서명 전까지는 양측이 법률 검토 기간이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문안조정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현안보고를 통해 "미 행정부와 의회의 협의결과에 따라 노동·환경 분야의 추가협상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장관도 곧 "협상 타결 이후 더이상 추가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미국측에 분명히 밝혀뒀다"며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쪽에서 재협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면서 '비준동의 거부' 카드로 압박 강도를 높일 경우 정부의 '재협상 불가'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미지수다.

"변형된 형태의 재협상 또는 '협상 계속'으로"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과 멕시코 등이 체결한 나프타에서도 노동과 환경 등은 별도로 협상을 진행한 경우가 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미국쪽의 재협상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우리 정부가) FTA를 못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결국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물론 국민에겐 재협상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타결된 자동차 등 각 분야에 대한 미국 민간 자문단의 평가보고서가 나오는대로 의회 차원의 수정요구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 송 변호사는 "업계차원의 보고서 결과에 따라 미국에서 내용 수정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FTA 협정 타결 이후 득실을 놓고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미국과의 재협상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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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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