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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에서 시를 줍고 숲에 가서 낳는다. / 숲 속에서 아기를 낳던 옛 인디언 여인들처럼. / 매우 뼈아픈 삶이 시를 만들고 / 깊은 시름이 노래가 된다. /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로 인한 허망함이여. / 나를 흔들지 마라.” - '길 위에서 시를 줍다' 중에서

▲ 양성우 신작 시집 <길에서 시를 줍다>
ⓒ 랜덤하우스
암울했던 1970년대, 한 시인이 시대를 부정한 '겨울공화국'이란 시를 낭송해 교직에서 파면당한다. 이 사건을 가리켜 ‘겨울공화국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의 주인공 양성우 시인이 열두 번 째 시집 <길에서 시를 줍다>(그림 강연균, 랜덤하우스)를 펴냈다.

한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문학을 떠나 정치적 행보를 걸었던 그였기에 그가 다시 시인의 자리로 돌아와 펴낸 이번 시집에 문단의 친구들은 반가워했다. 10일(화)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자리에는 그가 다시 시인으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 마다않고 모인 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구순을 넘긴 이기형 시인을 비롯해 구중서, 강민, 서정춘, 강형철, 이경철 선생 등이 자리를 함께했으며,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 강영균 화백, 여운 화백, 이혜경 수리무용단 대표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그밖에도 원경 스님, 류연복 화가, 오우열 시인, 홍일선 시인, 이승철 시인, 정토 시인, 강기희 소설가 등이 참석했다.

어제의 오래된 나를 오늘 버린다.
들 끝에 산비탈에 나를 버린다.
바람에 날려서 물 위에 뿌려서
나를 버린다.
가슴 깊이 상처입고 일그러진 나.
먼지였던 것, 모래였던 것.
바람이었던 것까지도 버린다.
- '나를 버린다' 중에서


이번 시집에서 펼치면 시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시와 함께 면면을 채우고 있는 강연균 화백의 수채화다. ‘남도의 리얼리즘 화가’로 불리우는 강 화백은 양 시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벗이다. 강 화백은 이번 시집에 수채화 21점을 채워줬다. 다들 배가 차고, 술이 걸쭉해질 즈음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던 강연균 화백이 시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꺼냈다.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어. ‘나 성우야’하는데 하도 오랜만이라 처음엔 못 알아들었지. 근데 이놈이 ‘너를 좀 만나야 겠어’하는 거야. 순간 이놈이 나하고 뭐 정치하려고 그러나 했는데 글쎄 시를 쓴다는 거야. 그래서 영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웃음)

▲ 10일 인사동 한 음식점에 마련된 출판기념회 자리에는 양성우 시인을 아끼고 기억하는 많은 문인들이 참석했다.
ⓒ 컬처뉴스
양 시인이 정치판에 있는 것이 내내 못마땅했던 친구는 그가 문단으로 돌아온 것이 영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양 시인이 시와 함께 넣을 그림을 부탁할 때도 서슴없이 “알았다”고 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작가들도 강 화백의 이야기에 “껄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 한쪽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강민 시인은 할 말이 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오래전 양성우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 냈다.

“난 말이지. 양성우가 그냥 좋은 사람인데. 잊을 수 없는 모습이 있어. 지금으로 보면 20년도 전이지. 아마 '겨울공화국' 발표하고 쫓겨 다닐 때 인가봐. 하루는 명동에서 백기완이하고 나하고 양성우하고 셋이나 만나 술을 먹는데 이 놈이 시퍼런 눈으로, 정말 눈이 시퍼랬어. 우리를 쳐다보면서 ‘형님들, 비겁하게 처자식을 위해 나서지 않고 이렇게 있어도 됩니까?’하고 호통을 치는거야. 그때 봤던 시퍼런 눈을 잊을 수가 없어. 정말 대단했던 친구야.”

유신정권 시절 눈에 독을 품고 시로써 저항을 몸소 실천했던 시인. 그의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작가들이기에, 그가 외유 끝에 시단으로 돌아온 것이 반갑고 또 반가웠다. 술자리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어제에서 오늘로, 또 내일로 왔다갔다하며 질펀하게 이어졌다.

길에서 시를 줍다. 이번 시집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무릇 ‘시’란 머리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뼈아픈 삶이 시를 만들” 듯 우리의 핍진하고 고달픈 삶의 길을 함께 걸으며 시를 쓰겠다는 것이 아닐까? ‘시인의 마을’로 돌아온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양성우 시인은 - 1941년 전라도 함평에서 내어나 1970년대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중등교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07년 문예지 <시인>에 시 '발상법'과 '증언'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77년 시집 <겨울공화국>을 출간한 이래 <북 치는 앉은뱅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노예수첩> <5월제> <사라지는 것은 하늘일 뿐이다> 등을 펴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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