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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만들고 있는 북한의 학부모들
ⓒ LA 기윤실 제공

▲ 빵을 받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
ⓒ LA 기윤실 제공
1996년부터 북한에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을 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아래 LA기윤실) 유용석 공동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떤 계기로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시작은 1996년 7월이에요. 제가 무역사업 관계로 외국을 자주 드나들거든요. 중국, 특히 연변자치주에 자주 들러요. 그곳에 가서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주 생활 상태가 비참하더라고요. 1995년에 북한에 큰 자연재해가 있었잖아요. 겨울인데도 먹을 것이 없어서 벼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파다가 삶아 먹거나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옥수수를 삶아서 아이들에게 먹이면 저항력이 없어서 그대로 토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북한에 수해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1995년 10월에 관심 있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단체들이 모여서 북한을 돕는 운동을 해보자고 했어요. '옷을 모아서 보내자'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보낸 옷이 직접 수요자한테 가느냐 하는 문제를 논의하다가 그만 흐지부지되었어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직접 가서 주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배고픈 아이들에게 직접 빵을 만들어서 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빵 보내기 운동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진행시켜 나갔는지요?
"1996년 5월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전국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을 비롯해서 한 300-400명이 호응을 해주었어요. 그게 도화선이 되어서 1996년 7월에 사랑의 빵 보내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 빵을 받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
ⓒ LA 기윤실 제공
처음에는 중국에서 빵을 만들어 강 건너 회령지방의 학생들에게 나눠주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빵을 만들어 북한에 보내는 것은 수출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수송비, 통관비, 상품검사비 등 돈이 꽤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1997년 10월에 북한 회령에 직접 빵 공장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한 60t씩 밀가루를 지원했습니다.

탁아소, 유치원은 취사시설이 있어서 국수 재료 일인당 100g을 주면 그걸 요리해서 아이들에게 먹였습니다. 나중에 국수를 못하게 되어서 다 빵으로 주게 되었어요. 북한에 인민학교 학생들에게는 공장에서 직접 만든 빵을 나눠 주었어요. 점심 한끼 50g 빵 3개씩을 주었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북한이 1997년, 1998년에 가장 어려운 때였지요. 북한에서는 그 시절을 '고난의 행군' 시대라고 불러요. 우리가 빵 공장을 시작한 게 바로 그 시기예요.

그때 당시, 회령 지방에 탁아소부터 소학교까지 다니는 학생이 총 1만8000명 정도 있었어요. 처음에 빵 공장을 시작할 때 먹지 못하니까 힘이 없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거의 반수도 못 나왔어요. 그런데 빵을 준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 나왔다고 그래요. 빵 3개 중 하나는 자기 부모 갖다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빵 공장을 북한의 회령과 무산지역에 짓게 되었나요?
"회령은 반 광산 농업지역이에요. 탈북자가 제일 많이 났던 곳이기도 하고요. 무산은 회령에 인접한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광지역이에요. 철광지대라 식량사정이 더 어렵지요. 탄광지역인 무산에서는 한참 식량난으로 힘들어서 기계까지 다 중국에 팔아서 먹을 것을 구했대요.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지역에서 기계까지 다 팔아먹었으니 탄광 생산량이 많이 줄어 들었겠지요.

▲ 북한 빵공장 내부 모습
ⓒ LA 기윤실 제공
▲ 유용석 LA기윤실 대표
ⓒ 서재진
무산 지역 사람들은 주로 나물을 중국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합니다. 규모로는 무산이 회령의 절반 정도라서 밀가루를 20t씩 지원해주고 있어요. 그러면, 한 6천~7천명 먹을 수 있지요.

회령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즉 김정일의 생모가 난 곳으로 평양 다음으로 성역화가 된 곳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많이 발전이 되어가고 있어서 회령보다는 무산 쪽에 더 지원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지금 빵 공장을 회령과 무산 두 군데에서 하고 있지만 이제는 회령보다는 무산에서만 운영하려고 합니다."

유용석 LA기윤실 대표 인터뷰를 마치고 빵 공장 사진을 보면서 1996년부터 시작해 2007년 7월로 11년째 되는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근래 모 신문에서 빵공장, 국수공장 모두 사기라는 탈북자의 진술을 사실 여부를 가려내지도 않은 채 여과 없이 기사로 내보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 일로, 10여년 동안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을 해온 이들에게 후원과 격려는 하지 못할망정 사기를 꺽진 않았는지. 팔순이 넘는 나이에도 변함없이 지속된 북한 어린이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아니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북한 아이들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 빵을 배분해주고 있는 탁아소 선생님
ⓒ LA 기윤실 제공
▲ 빵을 보급받고 있는 북한 무산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
ⓒ LA 기윤실 제공
▲ 빵을 보급받고 있는 북한 회령 인민학교 정경
ⓒ LA 기윤실 제공
▲ 함경북도 종성학원 선생님과 학생들
ⓒ LA 기윤실 제공
▲ 중국 연길에서 북한으로 이송될 밀가루 트럭 앞에서 LA 기윤실 유용석 대표와 관계자
ⓒ LA 기윤실 제공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와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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